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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이사람] “나도 당신도 노숙자될 수 있잖아요?”

등록 2008-01-22 19:02

알브레히트 빌트
알브레히트 빌트
‘서울 노숙자 풍경’ 설치작품전 연 알브레히트 빌트
국립현대미술관 창동 미술창작스튜디오 1층 전시장. 반 칸막이 안쪽 구석마다 낯선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다. 한사람은 깔종이 위에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벽을 향해 누웠고, 또다른 한 사람은 풀어진 자세로 벽에 기대 앉았다. 하룻밤 취침용 종이상자 집과 비닐봉지가 주렁주렁한 카트리지도 있다.

미술관 쪽에서 전시공간을 노숙자들한테 개방한 것인가?

국립현대미술관 초청 3개월간 작업
사회에서 튕겨져 나온 사람들 ‘포착’
독일 돌아가 같은 작업 전시할 계획

전시장 앞쪽 명함갑과 배지 상자. “제가유 이렇게 될 줄은… 여러 선생님께서도 안전한 생활 속에서 항상 건강하시길 빕니다!” “merci svp jai fam, aidez moi.” “bitte ich habe hunger gottes-segen.”과 같은 문구가 인쇄돼 있다. 한쪽 벽에는 ‘배가 고파요, 도와주세요’라는 삼색 소형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아차, 또 있다. 종이상자 집 위쪽에 걸린 전광판. 문구가 끊임없이 흐르는…. 아무래도 좀 수상쩍다.

창동 미술창작스튜디오 국제 교환입주작가인 알브레히트 빌트(49)의 개인전 ‘제가유 이렇게 될 줄은…’(25일까지)에 전시된 설치작품들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입주해 석달동안 작업한 결과를 선보이는 곳이다.

“이렇게 하면 그들에게 한번 더 눈길이 가지 않겠는가?”


알브레히트가 서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각종 전단지, 광고간판, 플래카드.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자영업자들. 무한경쟁에 노출된 이들이 어떻게든 소비자들에게 더 알리려는 필사적인 노력. 외국인한테는 금방 눈에 띄는 현상이라는 게 스튜디오 매니저 정재원씨의 귀띔이다.

“땅바닥 종이에 쓰인 노숙인 문구를 명함에 새겨 사람들의 손에 전달하면 전혀 다른 반응을 얻지 않을까.” 알브레히트는 일본에서 공항리무진을 기다리면서 목격한 일본인들의 명함교환 장면도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많은 악수를 하고 건네는 명함이 두툼하더란다.

하위문화 콘텐츠와 상위문화 형식의 생뚱한 결합. 명함과 소형펼침막은 애교로 봐줄 수 있지만 엘이디는 그 격차가 너무 크지 않은가. 기업도 아닌데?

“정상적으로는 결합되기 어려운 콘텐츠와 형식의 결합은 당연시 여기는 사회현상을 전혀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그는 정책을 세우는 정치인도, 많은 돈을 가진 부자도 아니어서 직접 노숙자 문제를 해결할 처지가 아니지만 예술가로서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시스템에서 튕겨져 나오는 사람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에너지와 변화속도가 높을수록 많은 것 같다.”

28일 독일로 돌아가는 그는 베를린 지하철 환승역의 전광판에서 비슷한 작업을 할 계획이다. 당국에 지원신청을 해 놓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가 탐내는 자리는 더 많다. 백화점 건물 전면, 영화관 간판자리, 버스 광고판, 국회의원 후보 입간판 옆 등.

“노숙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나도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글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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