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음반 ‘열흘 나비’ 내놓은 김두수
새음반 ‘열흘 나비’ 내놓은 김두수
6년만의 앨범 한·일·미서 발매
낯선 느낌·친숙한 멜로디 묘한 조화
‘생은 영원한 방랑’ 시처럼 노래 시디를 넣고 플레이 버튼을 누른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숨이 가빠지고 두 눈은 뜨거워졌다. 저 밑바닥에서 끌어올리는 묵직한 저음의 떨림, 날렵한 고음. 난생 처음 접해본 새로운 아우라, 그러나 아주 친숙한 멜로디. 김두수(49)의 5집 음반 <열흘 나비>는 차라리 당혹스러웠다. 이토록 아름다운 모순이라니. 대체 누구인가, 김두수라는 가객은. 김두수는 망토 같은 검은 외투에 검은 모자를 쓰고 신문사에 나타났다. 예상대로 말수는 적었지만, 뜻밖에도 살가운 느낌이었다. 스스로 데뷔 음반이라 부르는 4집 <자유혼>(2002년) 이후 무려 6년만에 새 음반을 냈다. “원래 속도가 느린 거죠. 숙제처럼 한다면 1년에 한장도 낼 수 있겠지만. 제 리듬이 그런가보죠.” 노래를 시작한 건 대학 때였다. 무교동과 명동의 ‘음악살롱’에서 노래 아르바이트를 했다. “시간 대비 수당이 제일 센 일거리”였다. 1986년부터 2년 터울로 1~2집 음반을 냈지만 스스로 가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결핵 3기의 사경을 딛고 3집 <보헤미안>을 냈지만, 부산의 한 팬이 이 음반을 듣고 자살을 기도했다는 소식에 아예 음악을 접어버렸다. 개발광풍이 불어닥친 양평을 떠나 대관령의 숲속으로 숨었다. 그렇게 10년동안 자연을 벗삼아 지냈다. “사람 모이는 곳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가 가수가 된 것은 ‘거대한 농담’ 속에 들어앉아있는 거죠.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긴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학교가는 게 정말 싫었던” 그는 “그저 떠돌고 싶어서” 이곳저곳을 걸어서 방랑했다. “저한테는 삶의 순례 같은 것이었어요. 학교는 다니는둥 마는둥 했죠.” 간신히 대학을 졸업해서 취직도 해봤지만 반나절만에 때려치웠다. “넥타이를 매고 있었는데, 이건 정말 아니라는 느낌”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김두수는 ‘발없는 새’(영화 <아비정전>) 같다. 발이 없어 늘 공중을 떠돌아야 한다던. 자유와 방랑에의 갈망은 음반에 가득 차 있다. “내/먼 길을 걸어/자유에 목축이고/돌아와/가만히 내 꿈을 만지리(<자유로운 마음>)” ‘바람’은 거의 모든 노래에 출몰해 쓸쓸한 소리를 낸다. 음반의 끝에 이르면, 지구의 반대편으로 ‘바람처럼’ 긴 여행을 다녀온 듯 싶다.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그에게 ‘소멸’은 이웃처럼 가깝다. “시간은 소멸을 불러오리/바람이 시간을 데려간다네/시간은 집이 없네, 저 영원의 별처럼/떠도는 유랑자”(<길 없는 시간의 노래>) 그리고 “우리의 그 뜨겁던 도취의 날도 어김없이 사라져”(<시대는 전사(戰士)를 거두지 않는다>)갈 것을 비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수많은 저녁이 찾아”올 것이다. “새들 흩어지는 언덕 위에/내 천 개의 가슴에”(<데자 앙땅뒤>) 어쿠스틱 기타와 첼로, 아코디온과 반도네온, 피아노와 하모니카가 어울려 포크도 록도 아닌 새로운 열매를 맺었다. 세상은 바뀌어서 월드뮤직이란 장르가 생겼다. 김두수는 월드뮤직으로 분류돼 세계적으로 팔리고 있다. 4집 <자유혼>이 미국에서 라이선스 제작으로 발매됐고, 일본, 터키 가수와 함께 낸 옴니버스 형식의 음반(<인터내셔널 새드 히츠>, 2006)이 영미권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번 음반 <열흘 나비>는 일본 음반사가 일본에서 제작했다. 일본과 미국 유통을 위해서다. “월드뮤직이 한국에 많이 들어오는데 이제 나가기도 해야죠. 대신 한국어 표지 그대로 나갑니다. 가사는 한국어, 일어, 영어 순이고요.” 그는 2월 18일 도쿄에서 앨범 발매 공연을 한다. ‘발 없는 새’의 비행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낯선 느낌·친숙한 멜로디 묘한 조화
‘생은 영원한 방랑’ 시처럼 노래 시디를 넣고 플레이 버튼을 누른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숨이 가빠지고 두 눈은 뜨거워졌다. 저 밑바닥에서 끌어올리는 묵직한 저음의 떨림, 날렵한 고음. 난생 처음 접해본 새로운 아우라, 그러나 아주 친숙한 멜로디. 김두수(49)의 5집 음반 <열흘 나비>는 차라리 당혹스러웠다. 이토록 아름다운 모순이라니. 대체 누구인가, 김두수라는 가객은. 김두수는 망토 같은 검은 외투에 검은 모자를 쓰고 신문사에 나타났다. 예상대로 말수는 적었지만, 뜻밖에도 살가운 느낌이었다. 스스로 데뷔 음반이라 부르는 4집 <자유혼>(2002년) 이후 무려 6년만에 새 음반을 냈다. “원래 속도가 느린 거죠. 숙제처럼 한다면 1년에 한장도 낼 수 있겠지만. 제 리듬이 그런가보죠.” 노래를 시작한 건 대학 때였다. 무교동과 명동의 ‘음악살롱’에서 노래 아르바이트를 했다. “시간 대비 수당이 제일 센 일거리”였다. 1986년부터 2년 터울로 1~2집 음반을 냈지만 스스로 가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결핵 3기의 사경을 딛고 3집 <보헤미안>을 냈지만, 부산의 한 팬이 이 음반을 듣고 자살을 기도했다는 소식에 아예 음악을 접어버렸다. 개발광풍이 불어닥친 양평을 떠나 대관령의 숲속으로 숨었다. 그렇게 10년동안 자연을 벗삼아 지냈다. “사람 모이는 곳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가 가수가 된 것은 ‘거대한 농담’ 속에 들어앉아있는 거죠.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긴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학교가는 게 정말 싫었던” 그는 “그저 떠돌고 싶어서” 이곳저곳을 걸어서 방랑했다. “저한테는 삶의 순례 같은 것이었어요. 학교는 다니는둥 마는둥 했죠.” 간신히 대학을 졸업해서 취직도 해봤지만 반나절만에 때려치웠다. “넥타이를 매고 있었는데, 이건 정말 아니라는 느낌”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김두수는 ‘발없는 새’(영화 <아비정전>) 같다. 발이 없어 늘 공중을 떠돌아야 한다던. 자유와 방랑에의 갈망은 음반에 가득 차 있다. “내/먼 길을 걸어/자유에 목축이고/돌아와/가만히 내 꿈을 만지리(<자유로운 마음>)” ‘바람’은 거의 모든 노래에 출몰해 쓸쓸한 소리를 낸다. 음반의 끝에 이르면, 지구의 반대편으로 ‘바람처럼’ 긴 여행을 다녀온 듯 싶다.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그에게 ‘소멸’은 이웃처럼 가깝다. “시간은 소멸을 불러오리/바람이 시간을 데려간다네/시간은 집이 없네, 저 영원의 별처럼/떠도는 유랑자”(<길 없는 시간의 노래>) 그리고 “우리의 그 뜨겁던 도취의 날도 어김없이 사라져”(<시대는 전사(戰士)를 거두지 않는다>)갈 것을 비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수많은 저녁이 찾아”올 것이다. “새들 흩어지는 언덕 위에/내 천 개의 가슴에”(<데자 앙땅뒤>) 어쿠스틱 기타와 첼로, 아코디온과 반도네온, 피아노와 하모니카가 어울려 포크도 록도 아닌 새로운 열매를 맺었다. 세상은 바뀌어서 월드뮤직이란 장르가 생겼다. 김두수는 월드뮤직으로 분류돼 세계적으로 팔리고 있다. 4집 <자유혼>이 미국에서 라이선스 제작으로 발매됐고, 일본, 터키 가수와 함께 낸 옴니버스 형식의 음반(<인터내셔널 새드 히츠>, 2006)이 영미권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번 음반 <열흘 나비>는 일본 음반사가 일본에서 제작했다. 일본과 미국 유통을 위해서다. “월드뮤직이 한국에 많이 들어오는데 이제 나가기도 해야죠. 대신 한국어 표지 그대로 나갑니다. 가사는 한국어, 일어, 영어 순이고요.” 그는 2월 18일 도쿄에서 앨범 발매 공연을 한다. ‘발 없는 새’의 비행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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