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 최초로 ‘보탄’역 맡은 사무엘 윤
동양인 최초로 ‘보탄’역 맡은 사무엘 윤
“독일인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바그너 오페라, 그것도 가장 유명한 <니벨룽겐의 반지>에서 주역을 맡게 돼 각오가 큽니다.”
바그너 스페셜리스트로 이름 높은 성악가 사무엘 윤(37)이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독일 신화 속 신들의 왕 ‘보탄’이 된다. 포르투갈 리스본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9월 말부터 10월 중순까지 열리는 <니벨룽겐의 반지> 공연에서 보탄 역으로 뽑힌 것이다. 독일에서 활동하며 오랫 동안 지녀온 소망이 마침내 실현된 것이다.
보탄은 바그너의 4부작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에 등장하는 주신으로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베이스 같은 저음에서 테너에 가까운 고음까지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보통 오페라보다 편성이 2배나 되는 오케스트라의 음을 뚫고 관객들에게 우렁찬 목소리를 전해야 하는 부담도 크다. 그래서 보탄 역을 소화할 수 있는 남성 성악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파리에서 <니벨룽겐의 반지>를 공연하다가 보탄을 맡은 성악가가 아프면, 대타를 프랑스가 아니라 독일이나 미국에서까지 찾아야 할 정도”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독일의 1급 오페라 극장인 쾰른 오페라극장 전속 바리톤인 그는 2002년 쾰른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 <니벨룽겐의 반지> 4부 ‘신들의 황혼’에서 도너 역을 맡아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그를 눈여겨 본 크리스토프 발만 극장장이 포르투갈 리스본 국립 오페라극장장으로 옮겨가면서 보탄 역을 맡은 성악가가 건강 문제로 하차하자 지난 2월 그를 기용한 것이다. 2004년부터 바이로이트 바그너 오페라 축제에 서며 ‘보탄’의 꿈을 키워왔던 그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2012년까지 꽉 차 있는 공연 일정을 조정해가면서 보탄 역을 맡았다.
“자칫하면 성대에 무리를 줄 수 있어 충분히 무르익었을 때 하라고 주변에서 말렸던 역입니다. 바리톤으로서는 누구나 꿈꾸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역이니까요. 그렇지만 바로 그래서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요즘 독일인이 아니면서 처음으로 보탄을 맡았던 미국 성악가 토머스 스튜어트의 노래를 듣고 있다. 공연까지 6달이나 남았지만 그는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6시간에 이르는 긴 공연을 이끌어야하므로 배역 연구가 그 어떤 작품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첫 ‘한국인 보탄’은 그런 철저한 준비 과정 속에서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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