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퓨전 해금주자의 선두주자 꽃별. 꽃별은 “처음 해금을 시작했을 때 해금이 마치 사람 목소리처럼 나를 불렀다”고 한다. 사진은 9인조 퓨전국악 밴드 ‘그림’.
바야흐로 ‘퓨전 국악’ 춘추전국시대다. 젊은 국악인들은 너나 없이 퓨전국악으로 국악의 중흥기를 이끌고 있다. 전통민요를 재즈로 편곡해 가야금을 뜯고, 판소리 창법으로 록을 부르는 등 뒤섞음에 한계가 없다. 일본에 진출해 ‘국악계의 보아’로 불리며 크로스오버 바람을 몰고왔던 꽃별(28ㆍ본명 이꽃별), 2000년대 초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퓨전국악이란 장르를 앞장서 이끌었던 퓨전국악 밴드 ‘그림’. 여전히 국악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는 최전선에서 활동 중이다. 6월에 차례로 정동극장 무대에 서는 이들을 만나봤다.
넓어지는 폭만큼 관심 이어졌으면
■ 신세대 크로스오버 보여준 꽃별
“지금 수많은 퓨전 국악인들이 나오고 있지만 기억되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요?” 해금주자 꽃별은 스스로에게 질책하듯 되물었다. “국악이 퓨전으로 넓어지고 있지만 대중들의 관심으로 제대로 이어지지 못한 것 같아 속상해요.”
대학 재학 중 소리꾼 김용우 밴드의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했다가 현지 음악 관계자의 권유로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한 꽃별은 발랄한 연주로 주목받으며 신세대 국악인의 아이콘이 됐다. 2003년과 2004년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발매한 1, 2집 모두 국악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했고, 2006년 3집 <플라이 플라이 플라이>를 발표한 뒤 단독콘서트를 열며 활발한 활동을 계속해 왔다.
“개인적으로는 ‘퓨전국악’이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아요. 장르를 구별하면 할 수 있는 게 제한된다는 생각 때문이죠.” 그는 “100년이 지나도 살아남는 음악이면 그것이 전통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며 “대중과 괴리되지 않게 다리를 만들고 살아남는 것이 지금 음악인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해금과 쿠바·아프리카 민속음악 접목하고 싶어 당연한 얘기 같지만 공연에선 항상 라이브다. “요즘 퓨전국악하는 분들 중에는 녹음한 음원을 틀어놓고 공연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녹음 연주를 틀면서, ‘이 때 긴 머리를 한 번 휘날려줘야지’라고 보여주려고만 하는 건 문제죠.” 다양한 음계를 표현할 수 있는 해금은 국악 크로스오버의 선봉에서 활약하는 악기다. “해금이야말로 ‘착한 악기’예요. 어떤 악기와 함께 해도 쉽게 어울리고, 그러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죠.” 그는 해금을 쿠바 음악, 아프리카 음악과 같은 리듬 강한 외국 민속 음악에 접목하고 싶단다. “해금을 가장 해금답게 하는 곡을 쓰고 싶어요. 아코디언이 탱고와 잘 어울리듯, 해금도 슬픔과 경쾌함을 동시에 나타낼 수 있는 장르가 있을 거예요.” 인터뷰를 마친 그는 해금을 다정한 친구처럼 어루만졌다. 해금의 검은 옻칠이 수없는 손길에 붉게 바뀌었다. 해금주자들은 그런 변색현상을 ‘꽃이 피었다’고 말한다. 연습벌레로 유명한 그가 10여년간 매만지며 피워낸 꽃이다.
쉽게 덤비지 말고 완성도 높여야죠 ■ 퓨전국악 밴드 1세대-그림 “당시만 해도 퓨전국악 밴드란 말이 없었어요. ‘공명’, ‘푸리’ 등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가야금이나 타악 앙상블이었지 저희처럼 대중음악인까지 합류한 종합 밴드는 아니었거든요.” 그림의 대표 신창렬(35)씨는 2001년 그림 결성 당시를 그렇게 회상했다. 퓨전국악의 효시였다고 할 수 있는 그룹 ‘슬기둥’의 음악을 좋아했던 친구들이 모여 인터넷에 연주한 음악을 올린 게 계기가 됐다. 처음 6명으로 시작한 밴드는 9명까지 늘었다가, 몇몇 멤버의 교체를 거쳐 지금은 7명이 됐다. 국악전공 4명에 기타, 베이스, 피아노 주자로 이뤄져 있다. 신씨는 “크로스오버, 퓨전국악이 이벤트성으로 전락했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가 “퓨전으로 불리기보다 그냥 ‘그림’으로 불리고 싶다”고까지 한 데엔, 음악적 비전이 보이지 않는 일회성 그룹 등의 범람으로 퓨전음악에 대한 선입견이 생긴 것에 대한 반발과 거리두기가 깔려 있다. 전통 가미한 월드뮤직 추구…해외 콘서트 준비 “퓨전음악이라는 정의도 애매한데, 다 그렇고 그런 음악을 한다며 인식까지 안 좋아졌거든요.” 그래서 그림은 까다로운 그룹을 자처한다. “초청해서는 유명 팝송만 연주해 달라고 하는 곳도 있어요. 건방지다고 할지 모르지만 거절하죠. 서양의 음악을 악기만 바꿔 연주한다고 그게 퓨전은 아니잖아요?” 게다가 “악기마다 고유한 맛이 있어, 전통악기로 서양음악이나 현대음악은 어울리지 않을 때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현대국악에 걸맞는 국악기 개량도 준비 중이다. 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입을 타기 위해 연주곡보다는 노랫말을 붙인 곡들을 선보일 생각이다. 전통음악을 가미한 월드 뮤직을 꿈꾸는 그림은 올 하반기에 중국과 일본에서 콘서트 계획이 잡혀 있다. 음원 뿐 아니라 공연물로 해외에 진출하겠다는 포부다. 꽃별 6월7~8일 오후 3시, 그림 6월21~22일 오후 3시. 2만5천~3만원. (02)751-1500.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해금과 쿠바·아프리카 민속음악 접목하고 싶어 당연한 얘기 같지만 공연에선 항상 라이브다. “요즘 퓨전국악하는 분들 중에는 녹음한 음원을 틀어놓고 공연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녹음 연주를 틀면서, ‘이 때 긴 머리를 한 번 휘날려줘야지’라고 보여주려고만 하는 건 문제죠.” 다양한 음계를 표현할 수 있는 해금은 국악 크로스오버의 선봉에서 활약하는 악기다. “해금이야말로 ‘착한 악기’예요. 어떤 악기와 함께 해도 쉽게 어울리고, 그러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죠.” 그는 해금을 쿠바 음악, 아프리카 음악과 같은 리듬 강한 외국 민속 음악에 접목하고 싶단다. “해금을 가장 해금답게 하는 곡을 쓰고 싶어요. 아코디언이 탱고와 잘 어울리듯, 해금도 슬픔과 경쾌함을 동시에 나타낼 수 있는 장르가 있을 거예요.” 인터뷰를 마친 그는 해금을 다정한 친구처럼 어루만졌다. 해금의 검은 옻칠이 수없는 손길에 붉게 바뀌었다. 해금주자들은 그런 변색현상을 ‘꽃이 피었다’고 말한다. 연습벌레로 유명한 그가 10여년간 매만지며 피워낸 꽃이다.
쉽게 덤비지 말고 완성도 높여야죠 ■ 퓨전국악 밴드 1세대-그림 “당시만 해도 퓨전국악 밴드란 말이 없었어요. ‘공명’, ‘푸리’ 등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가야금이나 타악 앙상블이었지 저희처럼 대중음악인까지 합류한 종합 밴드는 아니었거든요.” 그림의 대표 신창렬(35)씨는 2001년 그림 결성 당시를 그렇게 회상했다. 퓨전국악의 효시였다고 할 수 있는 그룹 ‘슬기둥’의 음악을 좋아했던 친구들이 모여 인터넷에 연주한 음악을 올린 게 계기가 됐다. 처음 6명으로 시작한 밴드는 9명까지 늘었다가, 몇몇 멤버의 교체를 거쳐 지금은 7명이 됐다. 국악전공 4명에 기타, 베이스, 피아노 주자로 이뤄져 있다. 신씨는 “크로스오버, 퓨전국악이 이벤트성으로 전락했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가 “퓨전으로 불리기보다 그냥 ‘그림’으로 불리고 싶다”고까지 한 데엔, 음악적 비전이 보이지 않는 일회성 그룹 등의 범람으로 퓨전음악에 대한 선입견이 생긴 것에 대한 반발과 거리두기가 깔려 있다. 전통 가미한 월드뮤직 추구…해외 콘서트 준비 “퓨전음악이라는 정의도 애매한데, 다 그렇고 그런 음악을 한다며 인식까지 안 좋아졌거든요.” 그래서 그림은 까다로운 그룹을 자처한다. “초청해서는 유명 팝송만 연주해 달라고 하는 곳도 있어요. 건방지다고 할지 모르지만 거절하죠. 서양의 음악을 악기만 바꿔 연주한다고 그게 퓨전은 아니잖아요?” 게다가 “악기마다 고유한 맛이 있어, 전통악기로 서양음악이나 현대음악은 어울리지 않을 때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현대국악에 걸맞는 국악기 개량도 준비 중이다. 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입을 타기 위해 연주곡보다는 노랫말을 붙인 곡들을 선보일 생각이다. 전통음악을 가미한 월드 뮤직을 꿈꾸는 그림은 올 하반기에 중국과 일본에서 콘서트 계획이 잡혀 있다. 음원 뿐 아니라 공연물로 해외에 진출하겠다는 포부다. 꽃별 6월7~8일 오후 3시, 그림 6월21~22일 오후 3시. 2만5천~3만원. (02)751-1500.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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