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출신의 디지털예술가 지아코모 코스타(1970~·사진)는 이번 ‘지구 상상전’에서 ‘물(아쿠아)’ 연작, ‘경기장’ 연작 등 다섯 가지의 연작으로 구성된 총 11장의 합성사진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실사와 컴퓨터그래픽을 적극 활용하는 그는 처음에 큰 틀을 구성하고 몇 주일에 걸쳐 자신의 영감에서 우러나온 이미지를 그려 넣는다. 공간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보니 어떨 땐 한 작품에 몇 달씩 걸린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은 ‘인간 없는 세상’을 다양한 상상력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때 수만명의 관중이 환호했을 경기장은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다. 부서진 고가 다리는 물속에 잠겼다. 이제 다시 인간 이전의 지구로 돌아가는 과정을 보는 것 같다. 지구에서 가장 늦게 나타나 다른 모든 동식물 종을 억압하고 파괴하면서 이름하여 ‘문명’이란 것을 건설했던 인류는 지구환경을 걷잡을 수 없이 망가뜨리고 있다. 어떤 식의 미래가 다가올진 알 수가 없다. 코스타가 제시한 미래는 언뜻 보기엔 암담한 것 같다. 하지만 이 예술가는 단정 짓지 않는다. 이 작품들은 인간이 파괴한 환경이 인간세상을 역습한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도시의 고독을 표현했을 수도 있고 지구촌 곳곳에서 유행처럼 퍼지고 있는 거대 구조물에 대한 조롱일 수도 있다. 다른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코스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해석의 여지를 폭넓게 열어두고 있다. 어떤 사람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는 각자 판단이란 뜻이다.
코스타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한 권의 책이 떠오른다. 2007년에 번역 출간된 <인간 없는 세상>(앨런 와이즈먼 지음)이 그것이다. 지구상에서 인간이 사라지고 난 뒤 이틀이 지나면 뉴욕의 지하철이 침수되고 3년이 지나면 도시의 배관이 터지고 건물 벽에 균열이 생길 것이며 300년 정도가 지나면 전세계 곳곳의 댐이 붕괴하며 삼각주에 위치한 도시는 물에 쓸려갈 것이라고 한다. 더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면 인간이 만들어놓은 문명의 흔적이 모두 없어질 날이 올 것이란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끔찍한 상상력이지만 지구의 역사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손톱에 낀 때보다도 더 미약하다는 것을 인정하면 별 대단한 일도 아닌 것 같다. 저자 와이즈먼의 묘사는 코스타의 작품세계와 놀랄 만큼 비슷하다.
코스타는 청년 시절 모터사이클에 빠진 적이 있었으며 1990년부터 3년 동안 산악인으로 유럽의 산들을 누비고 다녔다. 이때 산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에 빠지기 시작해, 처음엔 자신의 누드를 찍으면서 자신을 스스로 고찰하기도 하는 등 실험적인 사진에 몰입했다. 그러나 그를 진정 자유롭게 만든 것은 컴퓨터와의 만남이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3D 기술을 바탕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합성을 통해 비로소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펼치기 시작했다. 2007년 파리 포토,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서울아트페어 등 세계 곳곳에서 그의 작품이 전시됐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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