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노 김기완, 김기민 형제. 한겨레 사진
[우리는 짝]발레리노 김기완, 김기민 형제
형은 국립발레단서 주역
동생은 러 마린스키 입단
서로가 멘토이자 자극제
형은 국립발레단서 주역
동생은 러 마린스키 입단
서로가 멘토이자 자극제
지난해 6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서울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로 아직 스무살도 되지 않은 발레리노 김기민이 현지 마린스키발레단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3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3대 발레단에 동양인 발레리노로 사상 첫 입단. 전화를 받은 김기민보다 더 크게 기뻐했던 사람은 옆에 있던 형 김기완이었다. 세살 터울의 형은 동생이 그 순간 그렇게 자랑스럽고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단다.
“아니, 자꾸 안더라고요. 뽀뽀까지 하는 거에요. 저는 싫은데.”(기민)
“축구로 따지면 프리미어리그에 박지성 선수가 주전으로 뛰는 거랑 같은거죠. 어렸을 때부터 같이 목표로 한 곳이었고, 특히 동생이 가고 싶어한 발레단이었거든요.”(기완)
기완은 국립발레단 인턴단원으로 일하면서 받은 첫 월급을 털었다. “두툼하고 디자인도 세련된” 방한복을 사서 동생에게 건넸다. 겨울이면 영하 30도까지 내려간다는 추운 나라로 떠날 동생을 위한 선물이었다. “첫 월급으로 부모님 선물은 못 챙기고 기민이 걸 먼저 샀죠. 그런데 잘 안 입고 다닌대요. 제가 걱정한만큼 춥진 않나봐요(웃음).”
각각 한국과 러시아에서 최고의 발레리노를 꿈꾸며 땀 흘리고 있는 형제 발레리노 김기완(23), 김기민(20)을 지난달 2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났다. 형은 188㎝, 동생은 181㎝. 훤칠한 키에 소년의 개구진 미소를 간직한 두 청년은 발레 이야기만 나오면 갑자기 표정이 진지해졌다. 지난달 10일 기민이 휴가를 얻어 한국에 온 뒤로는 “초등학교 때부터 쓰고 있는 2층 침대 위아래에 누운 채로, 떨어져 지낸 3개월 동안 쌓인 수다를 새벽 3시까지 떨곤 한다”고 했다. 그만큼 사이가 좋으면서도 가끔은 “말하기도 민망한, 사소한 이유”로 투닥거리기도 한단다.
기완은 2009년 12월 발목 부상을 입은 뒤로 1년 4개월 동안 재활을 거쳐 지난해 국립발레단 인턴단원이 됐다. 지난 연말 <호두까기 인형>에 주역으로 출연하면서 화려하게 무대에 복귀했고, 지난 1월 정단원이 됐다. 다음달 공연하는 <스파르타쿠스>에서도 주역인 ‘크라수스’ 역할로 출연한다. 남다른 신체 조건에 섬세한 연기력과 잘생긴 외모까지 갖춘 기완은 국립발레단의 떠오르는 차세대 스타다.
동생에게…남들이 시샘 안나냐 묻지만 승승장구하는 너의 존재가 나를 이끌어주기도 해
형에게…언젠가 주역이 되고 싶다면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되지만 당장 주역 되려면 더 해야겠지? 동생 기민은 형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발레리노다. 무엇보다 콧대 높은 마린스키의 벽을 깨뜨렸다는 자부심이 크다. 마린스키발레단은 지난해 러시아에서 열린 특별 오디션 당시 그의 재능에 감탄하면서도 ‘머리카락이 검은색이라는 점이 걸린다’는 이유로 ‘3일 동안 고려해보겠다’며 합격을 미뤘다. 마린스키발레단은 한 해에 견습단원을 한두 명 뽑거나, 아예 뽑지 않을 때도 있다고 한다. 결국 김기민은 지난해 유일한 입단자가 됐다. 김기민은 11월 입단한 뒤 불과 두 달여 만인 올해 1월 <해적>, 2월 <돈키호테>에서 주역으로 서면서 다시금 화제가 됐다. 다음달에는 ‘마린스키 스프링 갈라’ 공연에도 출연하는 발레리노 기민에게 러시아 무대는 매 순간이 흥미롭고 새로운 세계다. “‘러시아 박수’가 있어요. 거기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발레 팬이라 작품을 정말 잘 아는 거예요. 음악, 구성, 순서까지. 무용수가 잘 하면, 박자에 맞춰서 ‘짝짝짝’ 박수를 따라 쳐요. 저도 받아봤고요. 그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어요.” 1월 <해적> 공연 뒤엔 수십명의 관객들이 발레단으로 전화를 걸어 기민에게 “러시아에 와줘서 고맙다”라는 인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감격스런 일이었다. “특이한 일이 아니고, 공연을 보고 좋으면 그렇게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인대요. 신기하죠?” 기완에게 어려울 수도 있는 질문을 던졌다. 같은 일을 하면서 현재 자신보다 “잘 나가는” 동생에게 질투를 느끼진 않을까? “비슷한 위치에서 동생이 앞서 나가고 있는 상태라면, 시샘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동생이 훨씬 앞서 가고 있잖아요. 함께 꿈꾸던 걸 동생이 먼저 이뤘고, 제가 경험할 일들을 더 일찍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발레만큼은 누구보다 ‘독종’인 동생 모습도 기완에겐 자극제가 된다. “저도 열심히 해요. 주변 사람들을 보면 ‘아, 저들만큼 나도 열심히 하고 있어’란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동생을 보면 제가 한참 멀었다고 깨닫는 거예요. 기민이는 진짜 독하게 연습해요. 어떨 땐 광기가 보인다고 해야 하나?”
기민은 러시아에서 돌아온 다음날 저녁 형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다가 조곤조곤한 말투로 조언을 하나 건넸다고 한다. “동생이 이러더라고요. ‘형이 언젠가 주역을 하고 싶으면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된다. 하지만 내일 당장 주역으로 무대에 서고 싶으면 ‘조금 더’ 해야 한다’고. 놀랐죠. ‘아니, 얘가 러시아에서 철이 들었나’ 싶었고(웃음).”
형 기완은 “아주 어릴 때부터 뭘 같이 하는 게 좋아서 항상 졸졸 따라다녔던” 기민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든든한 멘토다. “형이 자기 친구들이랑 놀러갈 때도 늘 따라갔어요. 친구들은 제가 끼는 걸 싫어했을 텐데, 언제나 저를 챙겨줬어요. 모르긴 몰라도 저 때문에 멀어진 친구들도 있을 거예요(웃음).”
2009년 12월 10일, 형 기완이 오른쪽 발목 아킬레스건에 “의사 선생님들 말로는 절대 복귀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던 날 기민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한다. 기민이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에서 왕자 역할을 맡아 한국발레 사상 최연소 주인공으로 프로무대에 섰던 날이었다. “원래 무대에 서면 시작부터 끝까지 저는 잠깐 기억을 잊어요. 집중해서인지, 이유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래요. 그런데 그날은 시작할 때나, 중요한 장면마다 형 생각이 났어요. 형이 옆에 있는 느낌이었죠. 끝나고 꽃을 받고, 사진을 찍는데도 제 표정이 되게 안 좋았대요. 병원에 빨리 가야겠단 마음뿐이었거든요. 어떤 상탠지 모르니까…. 형이랑 계속 같이 발레를 해왔는데, 이제는 ‘혼자 가야 하나, 어떻게 하지’ 싶어서 두렵기도 했고요.”
기민은 자신의 가장 빛나는 순간 가운데 하나였을 그날, 기쁨보다는 걱정어린 마음으로 공연이 끝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형은 환자복을 입고 막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는 거예요(웃음).”
기완은 타고 난 낙천적 성격을 힘 삼아 발레를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는 심각한 상황을 이겨냈다. “사실 처음엔 많이 힘들었는데요, 그냥 마음을 탁 놓고 휴가라고 생각하고 쉬었어요. 무용을 다시 못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고 ‘난 분명히 다시 한다’라고 믿었어요. 어떻게 보면 막무가내였죠(웃음). 제가 다쳤을 때 승승장구하기 시작한 동생의 존재가 저를 이끌어주기도 했고요.”
완치됐지만, 추운 날엔 철심 박아놓은 곳이 시리기도 하고 아침에 일어날 때 저리기도 한단다. 기완은 “어쩔 수 없이 제가 안고 가야 하는 거고, 괜찮아요”라면서 허허 웃는다. 그런 형을 바라보면서 동생은 “항상 긍정적이고, 여유가 있고, 마인드 컨트롤을 잘 하는 형의 성격”이 부럽다고 했다.
“저는 걱정도 많고, 조급하기도 해요. 그래서 큰 공연을 앞두고는 형한테 의지해요. 제가 불안해할 때 형이 저를 가라앉혀주고, 잡아주고 하거든요. 형 도움을 받아서 그동안 무사히 버틸 수 있었어요.”
반대로 형은 동생의 ‘독기’를 한번 더 강조하면서 닮고 싶다 한다. “제가 생각해도 저는 성격이 유해요. 발레리노로서, 동생처럼 하나에 집중하는 뛰어난 집념은 정말 중요한 자세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기민이 말했다. “이제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나라 이미지에도 영향 줄 수 있잖아요. ‘쟤 한국 사람인데’ 이런 식으로 평이 나오니까. 자부심을 갖고, 나라 이름을 생각하면서 춤추고 싶어요.”
당장 기완이 미소를 지으면서 “나라 이름은 국립발레단이 빛내는 거지”라고 대꾸한다. 마냥 칭찬만 하는 것 같으면서도 둘 사이에 은근하게 감도는 긴장이 서로를 자극하면서 더욱 발전시키는 힘일 테다.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잊을 수 없는 스승, 이원국 한국 발레계의 대표적인 스타 발레리노 이원국(45)은 두 사람에게 잊을 수 없는 스승이다. 이씨가 아니었다면 기민은 자칫 발레를 그만둘 뻔했다. 고향이 강원도 춘천인 기완과 기민은 각각 초등학교 5학년, 2학년 때 함께 발레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5학년이 됐을 때 서울로 이사 온 뒤 부모님은 둘 가운데 더 가능성이 있는 사람만 발레를 시키려 했다고 한다. 좋은 체격 조건에 일찌감치 실력을 인정받았던 기완과 달리 기민은 ‘몸도 왜소하고 다리 모양도 안 예쁜데다, 재능도 안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하지만 이원국만은 ‘기민도 발레를 꼭 계속 해야 한다’고 기대를 놓지 않았다. 기완은 “이원국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지금 마린스키의 김기민도 없었을 것”이라며 제 일처럼 고마워했다. 인터뷰 뒤인 13일 두 사람을 다시 만났다. 기완은 다음달 <스파르타쿠스> 연습으로, 기민은 콩쿨 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아직 20대 초반인 두 사람에게는 그동안 이룬 성과보다 앞으로 이룰 목표가 더 많다. 매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형제의 발걸음 사이에서 이원국의 뒤를 이을 한국 발레의 미래가 밝게 빛나고 있다.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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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에게…언젠가 주역이 되고 싶다면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되지만 당장 주역 되려면 더 해야겠지? 동생 기민은 형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발레리노다. 무엇보다 콧대 높은 마린스키의 벽을 깨뜨렸다는 자부심이 크다. 마린스키발레단은 지난해 러시아에서 열린 특별 오디션 당시 그의 재능에 감탄하면서도 ‘머리카락이 검은색이라는 점이 걸린다’는 이유로 ‘3일 동안 고려해보겠다’며 합격을 미뤘다. 마린스키발레단은 한 해에 견습단원을 한두 명 뽑거나, 아예 뽑지 않을 때도 있다고 한다. 결국 김기민은 지난해 유일한 입단자가 됐다. 김기민은 11월 입단한 뒤 불과 두 달여 만인 올해 1월 <해적>, 2월 <돈키호테>에서 주역으로 서면서 다시금 화제가 됐다. 다음달에는 ‘마린스키 스프링 갈라’ 공연에도 출연하는 발레리노 기민에게 러시아 무대는 매 순간이 흥미롭고 새로운 세계다. “‘러시아 박수’가 있어요. 거기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발레 팬이라 작품을 정말 잘 아는 거예요. 음악, 구성, 순서까지. 무용수가 잘 하면, 박자에 맞춰서 ‘짝짝짝’ 박수를 따라 쳐요. 저도 받아봤고요. 그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어요.” 1월 <해적> 공연 뒤엔 수십명의 관객들이 발레단으로 전화를 걸어 기민에게 “러시아에 와줘서 고맙다”라는 인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감격스런 일이었다. “특이한 일이 아니고, 공연을 보고 좋으면 그렇게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인대요. 신기하죠?” 기완에게 어려울 수도 있는 질문을 던졌다. 같은 일을 하면서 현재 자신보다 “잘 나가는” 동생에게 질투를 느끼진 않을까? “비슷한 위치에서 동생이 앞서 나가고 있는 상태라면, 시샘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동생이 훨씬 앞서 가고 있잖아요. 함께 꿈꾸던 걸 동생이 먼저 이뤘고, 제가 경험할 일들을 더 일찍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발레만큼은 누구보다 ‘독종’인 동생 모습도 기완에겐 자극제가 된다. “저도 열심히 해요. 주변 사람들을 보면 ‘아, 저들만큼 나도 열심히 하고 있어’란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동생을 보면 제가 한참 멀었다고 깨닫는 거예요. 기민이는 진짜 독하게 연습해요. 어떨 땐 광기가 보인다고 해야 하나?”
지난달 2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안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난 발레리노 김기민(왼쪽), 김기완 형제. 두 사람은 각각 러시아와 한국에서 최고의 발레리노로 날아오를 날을 꿈꾸며 매일 구슬땀을 흘린다.
잊을 수 없는 스승, 이원국 한국 발레계의 대표적인 스타 발레리노 이원국(45)은 두 사람에게 잊을 수 없는 스승이다. 이씨가 아니었다면 기민은 자칫 발레를 그만둘 뻔했다. 고향이 강원도 춘천인 기완과 기민은 각각 초등학교 5학년, 2학년 때 함께 발레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5학년이 됐을 때 서울로 이사 온 뒤 부모님은 둘 가운데 더 가능성이 있는 사람만 발레를 시키려 했다고 한다. 좋은 체격 조건에 일찌감치 실력을 인정받았던 기완과 달리 기민은 ‘몸도 왜소하고 다리 모양도 안 예쁜데다, 재능도 안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하지만 이원국만은 ‘기민도 발레를 꼭 계속 해야 한다’고 기대를 놓지 않았다. 기완은 “이원국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지금 마린스키의 김기민도 없었을 것”이라며 제 일처럼 고마워했다. 인터뷰 뒤인 13일 두 사람을 다시 만났다. 기완은 다음달 <스파르타쿠스> 연습으로, 기민은 콩쿨 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아직 20대 초반인 두 사람에게는 그동안 이룬 성과보다 앞으로 이룰 목표가 더 많다. 매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형제의 발걸음 사이에서 이원국의 뒤를 이을 한국 발레의 미래가 밝게 빛나고 있다.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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