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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기교파 오빠·기본파 동생 “콘트라베이스가 들러리라고?”

등록 2012-05-24 19:42수정 2012-11-08 16:49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성민제(왼쪽)·성미경 남매는 그간 ‘보조’ 악기에 그쳤던 콘트라베이스의 한계를 깨뜨려 바이올린이나 첼로 못지않은 ‘독주’ 악기로 세우겠다는 ‘큰 꿈’을 꾸고 있다. 두 남매가 지난 16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동 연습실에서 밝게 웃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성민제(왼쪽)·성미경 남매는 그간 ‘보조’ 악기에 그쳤던 콘트라베이스의 한계를 깨뜨려 바이올린이나 첼로 못지않은 ‘독주’ 악기로 세우겠다는 ‘큰 꿈’을 꾸고 있다. 두 남매가 지난 16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동 연습실에서 밝게 웃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우리는 짝] 콘트라베이시스트 성민제·미경 남매
클래식 음악 연주회장에 가면 오케스트라의 오른쪽 가장자리에 유난히 눈에 띄는 악기가 있다. 바이올린·비올라·첼로 같은 현악기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크고 제일 굵고 낮은 소리를 내는 콘트라베이스(더블베이스)다.

콘트라베이스는 높이 2m, 무게 20㎏이 넘는 거구만큼이나 듬직하고 무거운 소리로 다른 악기를 받쳐주는 맏형 구실을 하지만 스스로는 두드러지지 않는 고독한 악기이다. 소설 <향수>, <좀머씨 이야기>의 저자인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소설 <콘트라베이스>에는 국립오케스트라의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인 주인공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 푸념한다. “(다른 악기는 털끝만큼만 잘못 짚어도 알아채는데) 몇㎝나 잘못 짚었는데도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한다.”

오케스트라의 변두리 악기로 치부되어 온 콘트라베이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젊은 주자들’이 있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성민제(22)·미경(19) 남매이다. 이들은 콘트라베이스의 한계를 깨뜨려 바이올린이나 첼로 못지않은 독주 악기로 자리잡게 하겠다는 ‘큰 꿈’을 꾸고 있다.

보조악기 편견 깨고 솔로 연주
아버지 뒤이어 악기 매력 개척

성민제씨는 16살이던 2006년 독일 슈페르거 콘트라베이스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거머쥔 뒤, 2007년 러시아 쿠세비츠키 콩쿠르 우승, 2011년 독일 마르크노이키르헨 국제콩쿠르에서 아시아인 최초 2위 입상 등 세계 3대 콘트라베이스 콩쿠르를 석권했다. 그의 기량은 또래 연주자를 넘어 세계 정상급이란 평가다. 음악계에서 그는 ‘차세대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동생 성미경씨도 2010년 독일 슈페르거 콘트라베이스 콩쿠르에서 1위와 청중상·심사위원상을 차지하며 오빠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지하 연습실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민제씨는 “콘트라베이스는 독주 악기로서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악기다. 콘트라베이스라는 악기의 완성을 위한 기준치를 만드는 게 일생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자 미경씨도 “콘트라베이스는 다양한 음역대에서 연주가 가능하므로 솔로에선 어떤 악기보다도 화려하다”며 맞장구를 친다.

“콘트라베이스는 독주 악기가 아니기 때문에 솔로 연주를 하기가 힘듭니다. 음악가가 본래 고독한데 이 악기를 하면서 외로운 존재임을 더 많이 느끼죠. 그렇지만 이 악기는 무궁무진한 매력을 지녔습니다. 그걸 알리고 싶어요.”(민제)

두 사람은 ‘따로 또 같이’ 연주활동으로 오케스트라의 보조 악기 수준에 머물고 있는 콘트라베이스의 새 길을 개척하고 있다. 특히 지난 몇 년 새 콘트라베이스의 한계에 도전하는 민제씨의 솔로 연주활동은 눈부시다. 그가 2009년 세계적인 음반사인 도이치그라모폰(DG)에서 낸 첫 앨범 <콘트라베이스의 비행>은 콘트라베이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연주자 선정이 까다로워서 세계 정상의 연주자들의 음반만을 만들기로 유명한 도이치그라모폰이 콘트라베이스 독주 음반을 내놓은 것은 그가 역사상 처음이다.

오빠는
세계적 음반사서 독주앨범
“연주가 너무 특이한 것 같아”

동생은
대중 편히 들을 수 있는 연주
“악기 연구 더욱 깊이 했으면”

이 음반에 수록된 파블로 데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 스튜어트 샹키의 <비제 카르멘 주제에 의한 환상곡> 등은 고도의 기교가 필요해 독주 악기의 대명사인 바이올린으로도 연주하기가 까다로운 곡들이다. 이 음반에서 성민제씨는 현란한 기교의 독주 연주로 콘트라베이스 표현 영역을 한층 넓혔다.

“콘트라베이스가 ‘들러리 악기’로 취급되곤 하지만 가능성이 무한한 악기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민제씨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 있는 아버지 성영석(51)씨의 권유로 초등학교 4학년 때 활을 잡았다. 아버지 성씨는 “내가 콘트라베이스를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아들만큼은 제대로 가르쳐 세계적인 연주자로 키우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에게 선택받은 셈이조. 콘트라베이스를 시작하면서 아버지와 같은 공간에서 매일 같이 연습해야 했던 게 힘들었어요. 처음에는 비인기 악기라서 싫었지만 아버지 뜻을 이해하게 되면서 콘트라베이스의 매력에 차츰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선택이 옳았던 거죠.”(민제)

미경씨는 어려서 첼로를 배우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오빠 민제의 “같이 하자”는 꼬드김에 빠졌다고 했다.

“오빠에게 낚인 셈이죠. 오빠를 바라보고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게 됐어요. 아버지도 콘트라베이스를 하니까 부럽기도 했고요.”

그는 “아마 내년 초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면 이 악기에 무섭게 빠져들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그에게 “오빠가 너무 유명한 연주자라서 부담되지 않는지” 물었다. 그러자 “오빠는 오빠의 길이 있고 나는 나의 길이 있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나의 길을 가고 싶다”고 포부를 야무지게 털어놓았다.

그러자 성영석씨가 넌지시 일러준다. “미경이가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지만 오빠보다 더 잘하고 싶은 것 같다”며 “오빠의 그늘에 가릴 수도 있는데도 자기 나름의 음악적인 자존심이 상당하다”고 했다.

두 남매 모두 똑같은 악기를 쓰지만 연주 방식은 다르다.

민제씨가 엄청난 기교를 바탕으로 화려한 연주를 자랑한다면 미경씨는 탄탄한 기본기에 선이 굵다. 또한 민제씨는 모리스 라벨이나 에리크 사티 같은 프랑스 작곡가에게 관심이 많은 반면, 미경씨는 조반니 보테시니나 아돌프 미셰크 같은 낭만주의 작곡가를 좋아한다.

“오빠는 기교가 뛰어나고 화려해요. 음악에 자기 나름의 특색을 잘 살리는 것 같습니다. 오빠의 단점을 꼽는다면 너무 특이하다는 것이죠.(웃음) 그렇지만 오빠가 부럽지는 않아요. 사람마다 다르니까요.”(미경)

“동생의 연주는 대중들이 편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배로서 동생에게 이 악기를 계속할 것이라면 정말 악기 연구를 깊이 하고 악기 매력에 빠지라고 충고해주고 싶습니다.”(민제)

남매는 매일 연습실에서 각자 홀로 연습하지만 가끔 듀오 연주로 호흡을 맞추기도 한다. 지난해 9월에는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듀오 무대 ‘클래시컬 프론티어 시리즈’를 꾸미기도 했다. 오직 콘트라베이스만을 위한 연주회는 세계 무대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는 공연이었다.

민제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을 조기 졸업하고 현재 독일 뮌헨음대에서 전 베를린필 콘트라베이스 수석 나빌 셰하타 교수에게서 배우고 있다. 올해 7~10월 독일에서 연주활동 일정도 잡혀 있다. 특히 8월 스위스 알베르그 페스티벌에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수석들과 함께 초청받아 솔로 무대도 꾸민다. 내년에는 프랑스 작곡가들의 피아노곡을 편곡한 두 번째 음반을 낼 계획이다.

“어떤 연주자들보다 사람들이 집중할 수 있는 연주를 하더라는 평가를 듣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끊임없는 실험과 시도가 필요해요. 그것이 제가 이 악기와 함께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기쁨인 것 같습니다.”(민제)

민제씨는 “나 혼자서만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과 교감하는 연주자, 관객이 연주회를 보고 감동을 받고 가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4학년인 미경씨도 내년에 미국 커티스음악원이나 줄리아드음악원, 독일 베를린국립음대에 진학을 할 계획이다.

“아직은 자신이 없어서 음반 계획이나 독주회 계획은 없어요. 하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체코 작곡가 아돌프 미셰크의 <콘트라베이스 소나타 1~3번>만으로 한번 무대를 꾸며보고 싶어요.”(미경)

미완성 악기 콘트라베이스의 눈부신 진화의 중심에 선 두 남매의 내일이 더 기다려진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왼쪽부터 성민제·미경 남매, 아버지 성영석씨, 어머니 최인자씨.
왼쪽부터 성민제·미경 남매, 아버지 성영석씨, 어머니 최인자씨.

“이제 조언은 엄두도 못내요 하하”

아버지 콘트라베이시스트 성영석씨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제가 제일 잘했는데 이제는 아이들 눈치를 봐야 될 처지가 되었어요. 아버지로서 그런 자식들이 대견하기도 하지만 속상할 때도 있어요. 예술가들은 자존심이 있잖아요.”

성민제·미경 남매의 아버지 성영석(51)씨의 자랑 섞인 하소연이다. 두 남매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부모의 음악을 들었다. 아버지 성씨는 서울시향 콘트라베이스 주자이고 어머니 최인자(49)씨는 피아니스트다.

간혹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면 서울 구의동 연습실에서 최인자씨의 반주로 부자지간 또는 부녀지간에 즉석 연주회를 벌이기도 한다. 4년 전에는 온 가족이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가족음악회를 연 적도 있다.

성영석씨는 “예전에는 연주회가 끝나면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조언도 해주었는데 이제는 그런 말은 엄두도 못 낸다”고 엄살을 부렸다. 그러면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서 결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해서 내가 못 이룬 꿈을 이루고 있는 자식들이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성씨는 가족음악회를 해볼 계획이 없느냐는 질문에 “민제가 외국에 있다보니까 시간 내기가 힘들다”며 “4년 전과는 달리 나에게 곡 선택권이 없을 것 같다”고 밝게 웃었다.

“아이들과 한번씩 호흡을 맞추다가 ‘아버지! 연습 더 하셔야 하겠다’는 핀잔을 들어요. 그러면 ‘너희들 50살 넘어봐라. 나도 너희 나이 때는 많이 했다’고 쏘아주죠.(웃음)”

그는 “아이들이 세계적인 교향악단에 들어가서 솔로 활동을 하면서 좋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를 배출하는 교육자로 자라주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또한 작곡·편곡 공부에도 힘써서 연주곡이 부족한 콘트라베이스 레퍼토리 개발에도 노력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정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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