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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현의 노래에 스민 장인의 손결…국산악기의 큰 울림

등록 2013-07-04 19:46

2대에 걸쳐 악기를 제조, 수리하는 삼부자의 아버지 이정우(가운데)씨와 첫째 아들 상규(왼쪽)씨, 둘째 아들 상윤(오른쪽)씨. 이정우씨는 55년째 클래식 현악기의 제조와 수리 외길을 걸어왔고, 이제 두 아들이 가업을 잇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대에 걸쳐 악기를 제조, 수리하는 삼부자의 아버지 이정우(가운데)씨와 첫째 아들 상규(왼쪽)씨, 둘째 아들 상윤(오른쪽)씨. 이정우씨는 55년째 클래식 현악기의 제조와 수리 외길을 걸어왔고, 이제 두 아들이 가업을 잇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문화‘랑’] 나도 문화인
⑦ 현악기 수리·제작 이정우씨 부자
그의 솜씨가 알려지면서
유명 음악가들의 주문이 들어왔다
그가 걸어온 길은
이제 두 아들로 이어졌다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1개월 이상 걸리는 수작업보다
외제만을 고집하는 풍토다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 같은 전설적인 거장들은 16~17세기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크레모나 장인들이 만든 악기를 애용했다. 현대과학으로도 풀리지 않는 아름답고 심오한 소리 때문이다. 안드레아 아마티, 안드레아 과르니에리,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현악기들은 거의 500년 세월이 흘렀어도 최고의 명기로 절대적인 지위를 누린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부근 ‘이정우 현악기’를 들어서면 주렁주렁 매달린 현악기 사이로 고풍스런 바이올린들이 보인다. 예사롭지 않은 느낌에 주인을 쳐다보자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니에리 델 제수를 그대로 본떠 만든 국산 수제품”이라고 웃는다.

그는 국내에서 몇 손가락에 드는 현악기 제조·수리 장인 이정우(74)씨다. 이탈리아 크레모나국제현악기수공전문학교, 독일 미텐발트바이올린제작학교와 함께 세계적인 현악기 제작학교로 꼽히는 미국 시카고바이올린제작학교 한국인 2호 졸업생이다.

바이올린과 첼로, 비올라 수리·제작 일에 뛰어든 지 올해로 55년째다. 가난한 6남1녀 가족의 맏이였던 그는 어려서부터 나무를 깎아 동물 등을 만드는 걸 좋아했다. 서울고 졸업 무렵인 1958년 친척 소개로 바이올린과 첼로를 수리 제작하던 이주호씨의 제자가 되어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최근까지 시카고바이올린제작학교 교장을 지낸 이주호(82)씨는 당시 홍익대 조각과에 다니면서 케이비에스교향악단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하던 팔방미인이었다.

“빵을 해결하려고 시작했습니다. 깨지고 부서진 악기를 수리하고 틀린 음을 바로잡는 기술을 배웠어요. 음악을 좋아했고 수리비도 고가여서 평생 직업으로 삼을 만하다 생각했습니다.”

대패질, 끌질, 칼질로 하루도 손이 성한 날이 없었다. 눈썰미가 좋았던 그는 수리를 맡긴 외제 악기의 모양과 구조, 특성 등을 꼼꼼히 기록하면서 빠르게 기술을 익혔다.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어 3년 만에 서울 청파동에 ‘돌체 악기’라는 작업실을 내고 연습용 바이올린과 첼로, 더블베이스를 만들었다.

그 무렵 스승 이주호씨가 독일 미텐발트바이올린제작학교로 유학을 떠났고, 그는 홀로 기술을 익혀나갔다. 하지만 혼자서는 벽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다. 1979년 그는 마흔살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시카고바이올린제작학교에서 스승 이주호씨를 다시 만났다. 매일 9시간씩 나무와 악기와 씨름했다. 좋은 소리를 구분하는 능력을 기르려고 바이올린 수업도 받았다. 당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의 악기를 수리하기도 했다.

이미 악기를 만든 경험이 있어 그는 3년 과정을 1년 만에 마친다. “졸업까지 바이올린 3개와 비올라 1개를 포함해 악기 7개를 만들어야 하는데 밤낮으로 만들다 보니 1년 만에 20대가 넘었어요. 학교에서 깜짝 놀라 졸업을 시켜줬습니다. 처음 만든 악기와 마지막 악기를 한국으로 가져올 수 있었는데 여비가 없어서 첼로를 팔아버린 게 아직도 아쉽습니다.”

1981년 귀국한 그는 연습용 바이올린 제조 공장을 차리고, 국산 악기 수준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에 연주용 수제 첼로 제작도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첼로 1대를 만드는 데는 500시간, 바이올린이나 비올라는 300시간이 든다. 몸체에 주로 쓰는 독일산 단풍나무와 진동판을 짜는 알래스카산 전나무, 지판·턱받이·줄걸이·조리개를 만드는 인도 흑단 목재를 건조하는 데만 반년이 걸린다.

그의 솜씨가 알려지면서 유명 음악가들의 주문이 들어왔다. 지금까지 첼로 15개와 바이올린 5개를 포함해 20개가 넘는 수제 악기를 만들었다. 첼리스트 고 전봉초(전 서울대 음대 학장), 첼리스트 이동우(울산대 교수), 비올리스트 고 안용기(전 단국대 음대 교수)씨 등이 그의 악기로 즐겨 연주했다. 외국에서도 인정받으면서 미국 볼티모어교향악단과 워싱턴교향악단 단원들 중에도 그의 악기를 쓰는 이들이 여럿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전 서울대 음대 학장)·백운창(전 숙명여대 음대 교수)씨 등 저명한 연주가들도 그에게 악기 수리를 맡겼다.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이 꼬마 때 연습하던 8분의 1짜리 작은 바이올린을 아버지 장민수씨가 사간 적도 있고, 첼리스트 정명화씨가 일본 연주를 가면서 제 악기를 빌려가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가 걸어온 길은 두 아들로 이어졌다. 1996년 맏아들 이상규(45·바이올린 제작·수리 ‘현’ 대표)씨와 2004년 둘째 아들 이상윤(42·이정우현악기 실장)씨가 아버지의 모교인 시카고바이올린제작학교를 졸업하고 가업을 잇고 있다. 원래 토목 전공이었던 첫째 이상규씨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자랑스러워 중학교 때 가업을 이을 결심을 했다”고 한다. 자동차공학을 전공한 둘째 이상윤씨도 “아버지의 모든 것을 물려받아 세계에 자랑할 만한 명품을 만들고 싶다”며 그 뒤를 따랐다. 이씨는 “국내에서는 잘 알아주지 않는 가업을 잇겠다고 나선 게 너무 대견하다”며 “내가 못다 이룬 꿈을 펼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개월 이상 걸리는 수작업보다도 외제만을 고집하는 우리 음악계 풍토가 더 힘들게 합니다. 과거에는 국산품의 품질이 떨어졌지만 이제는 세계 명장들과 실력을 견줄 만한 장인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우리 국산 악기가 높게 평가받는 날이 빨리 와야죠.”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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