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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생활에 자연 들여오는 예술…오랠수록 빛나요”

등록 2013-08-15 19:30수정 2013-08-15 20:22

아직 국내에선 생소한 ‘정원 디자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황지해씨. 지금 열리고 있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갯지렁이 다니는 길>(아래)을 전시중이다. 이 작품 안에 있는 ‘쥐구멍 카페’에서 만난 그는 “정원 디자인이야말로 고상하면서도 효과적으로 한국 문화와 정서를 알릴 수 있는 통로”라고 강조했다. 순천/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아직 국내에선 생소한 ‘정원 디자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황지해씨. 지금 열리고 있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갯지렁이 다니는 길>(아래)을 전시중이다. 이 작품 안에 있는 ‘쥐구멍 카페’에서 만난 그는 “정원 디자인이야말로 고상하면서도 효과적으로 한국 문화와 정서를 알릴 수 있는 통로”라고 강조했다. 순천/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문화‘랑’] 나도 문화인
⑬ 정원 디자이너 황지해씨
순천박람회에 ‘갯지렁이길’ 출품
한국적 소재에 이야기 더해 구성
영국 ‘첼시 플라워쇼’ 2년연속 1등
자신 삶 담은 ‘자서전 정원’ 꿈꿔

드넓은 정원에 거대한 갯지렁이 여섯마리가 싱그런 하천을 따라 기어간다. 초록 잔디 옷을 입은 갯지렁이들이 움직이며 만들어낸 꾸불꾸불한 길 주위에는 갖가지 나무와 야생화가 자라고 있다. 나무 의자 쉼터가 있는가 하면 갯지렁이가 갯벌을 먹고 토해낸 검은 돌구슬들이 햇볕에 반짝인다. 한 갯지렁이의 뱃속에는 아이들이 그림을 보고 책을 읽는다.

세계 5대 연안습지로 유명한 순천만 동천 갯벌에서 열리고 있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선보인 작품 정원 <갯지렁이 다니는 길>의 풍경이다. 국내에서 용어도 낯선 정원 디자이너 황지해(37)씨를 13일 그의 정원 안에 있는 ‘쥐구멍 카페’에서 만났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열게 된 취지와 순천만 뻘의 본질을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도시가 계속 팽창하며 순천만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도시와 순천만 중간에 생태 축으로 만들고자 한 것이 정원박람회입니다. 단순히 구경하는 곳이 아니라 순천만을 지키자는 의미가 더 크죠. 그래서 갯지렁이를 매개체로 가져왔습니다. 보잘것없는 작은 생명체이지만 뻘로 들어온 오염물질을 정화하고 뻘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입니다.”

황지해씨의 이름은 아직 국내에선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원 문화가 발달한 영국과 네덜란드, 프랑스 등에선 ‘첼시의 여왕’으로 불린다. 그는 2011년과 2012년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의 정원박람회 ‘첼시 플라워 쇼’에서 <해우소-한국 전통화장실. 마음을 비우다>와 <침묵의 시간-비무장지대 금지된 정원>으로 연속 1등상을 받았다.

<해우소>는 전남 곡성 출신인 그가 전남 순천 선암사의 옛 화장실을 한국적 정서에 맞게 재해석한 작품. 한국 토종식물들과 화장실이라는 독특한 공간 배치로 한국 정원의 아름다움과 친환경적 사상을 잘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침묵의 시간>은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의 상징이자 세계 최대의 자연 정원인 비무장지대(DMZ)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수난, 자연의 재생력을 효과적으로 담았다는 평가를 얻었다. 현재 런던 플레저가든으로 옮겨져 내년까지 전시되는데, 이후 영구 보존 여부를 검토중이다.

<갯지렁이 다니는 길>
<갯지렁이 다니는 길>

순천만으로 그의 작품들을 비로소 국내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정원 디자인’이란 직종은 대중들에겐 낯설다. 그도 처음부터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쌈지공원 조성, 가로디자인, 조경 등 환경미술을 주된 작업으로 해왔다. 그러다가 영국으로 건너가 유학 준비를 하다 ‘첼시 플라워 쇼’에 참가하면서 운명적으로 ‘정원 디자이너’의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중국과 일본이 첼시 플라워 쇼에서 오래전부터 꾸준히 활동해왔고, 특히 일본이 ‘젠 스타일’로 가든산업의 세계화에 성공한 것에 놀랐다. 또 세계적인 가든 권위자로부터 한국의 정원을 알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자존심이 상한 그는 곧바로 정원 디자인에 뛰어들었다.

“정원 디자인은 생활에 자연을 들여오는 작업이에요. 그러니까 자연에 대한 결핍에서 나오는 것이죠. 날씨가 안 좋은 유럽에서 먼저 발달했어요. 우리처럼 자연의 혜택을 받은 나라에서는 그 가치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유럽 선진국들은 지금 당장 정원을 만들지 않으면 30년 뒤에는 3000개의 정신병원이 생긴다고 믿어요. 그래서 그걸 준비하는 것이고 덕분에 정원 문화가 발달한 겁니다. 영국 <비비시> 방송에는 저녁 황금시간대에 정원에 대한 프로그램이 있어요. 그만큼 정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요.”

그는 “정원 문화가 한국을 알리는 데 매우 효과적인 세계공통 언어”라며 “국가와 지자체, 기업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원은 시간예술이에요. 시간이 지날수록 빛이 나고 더 많이 제모습을 찾아갑니다. 풀과 나무가 더 자라고 생명체가 찾아들면 가치있는 투자를 했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그의 작품 특징은 한국적 소재를 담아내며, 그 소재에 ‘이야기’를 더한다는 것이다. 이번 <갯지렁이 다니는 길>에는 옛 시골집의 기억이 곳곳에 숨어 있다. 전남 곡성의 옛집 마당에 있었던 커다란 앵두나무에 대한 기억, 그 시절 앉아 놀던 나무 의자, 어머니가 식구들 옷을 깁던 재봉틀, 쥐구멍, 개미굴이 작품 속에 표현되어 있다.

외국에서 먼저 주목받았고 정원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려나가고 있지만 어려움은 아직 많다. 정원 디자인 자체가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외부 지원이 필수적인데 아직 국내에선 이 분야를 눈여겨보는 이들이 전무한 실정이다. 또한 정원 디자인은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과 이야기를 담아내야 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완성되도록 철저하게 구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창작 과정이 힘들다. 작가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이다.

그는 다음달부터 프랑스 롱스에 ‘뻘’을 테마로 한 현대식 한국 정원 <뻘-순천만, 어머니의 손바느질>을 꾸민다. 이 정원은 그가 순천시의 지원을 받아 지난해 네덜란드 정원-원예 박람회인 ‘플로리아드’에 출품한 작품이다.

“일본이 성공한 ‘젠 스타일’은 선 사상에서 나왔지만 일본 것만은 아니잖습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문화전쟁, 보이지 않는 종자전쟁 속에서 살아가잖아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계속 해킹당하고 역수출되고 있습니다. 일본이 ‘젠 스타일’을 성공시켰으면 우리도 비록 늦었지만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정원을 통해 우리의 좋은 것을 더 많이 이야기한다면 세계가 우리를 바라보는 태도와 생각이 달라집니다. 정원처럼 고상하게 문화와 정서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있을까요.”

정원 디자이너로서 그의 소원은 자신이 걸어왔던 삶을 담아내는 좋은 자서전 같은 정원을 하나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이 정원을 한바퀴 돌면 황지해라는 사람이 어떻게 고민했고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았고, 어떻게 어려움을 겪어냈는지를 알 수 있는 이야기책처럼 꾸미고 싶어요.”

순천/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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