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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뱃속 아기가 선택한 노래
“마법과도 같은 경험이었다”

등록 2013-08-25 20:04수정 2013-08-25 23:01

지난해 5월 미국 보스턴 메카닉스홀에서 신예원(가운데)이 임신 5개월 상태로 피아니스트 에런 파크스(왼쪽), 아코디언 연주자 롭 쿠르토와 한국 동요를 녹음한 뒤 찍은 기념사진.  정선씨 제공
지난해 5월 미국 보스턴 메카닉스홀에서 신예원(가운데)이 임신 5개월 상태로 피아니스트 에런 파크스(왼쪽), 아코디언 연주자 롭 쿠르토와 한국 동요를 녹음한 뒤 찍은 기념사진. 정선씨 제공
한국인 최초로 ECM서 앨범 낸 보컬리스트 신예원
임신한 상태로 미 메카닉스홀에서
피아니스트 에런 파크스 등과 협업
신예원의 노래 맞춰 즉흥 연주
‘섬집아기’ 등 한국동요 13곡 녹음
“아이와 엄마에게 바치는 노래”
메카닉스홀의 깊고 풍성한 울림에 영감을 얻은 신예원은 녹음 작업을 다 마친 뒤 무대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에런 파크스와 눈을 맞추고 살짝 웃었다. 저도 모르게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그 순간 왜 동요 ‘섬집아기’를 부르게 됐는지 자신도 몰랐다. 그저 공간이 주는 느낌이 이끄는 대로 노래했을 따름이다. 처음 듣는 노래일 텐데도 에런 파크스는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정선은 이를 놓치지 않고 녹음했다.

연주가 끝났다. “느낌 좋은데? 언젠가 다시 한번 해봅시다.” 정선이 말했다. 얼마 뒤, 신예원은 그 순간 자신이 임신한 상태였음을 뒤늦게 알게 됐다. ‘그때 입에서 동요가 나온 게 우연이 아니었구나.’ 남편에게 얘기하니 그가 말했다. “우리 이런 작업 더 해보자. 임신했을 때 녹음해야 해. 평생 한번 오는 기회야.” 동요를 부르며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은 신예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달 뒤, 부부는 다시 메카닉스홀에 섰다. 신예원의 배가 제법 불룩해져 있었다. 이번에는 에런 파크스뿐 아니라 아코디언 연주자 롭 쿠르토도 함께였다. 정선의 제안으로 셋은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서 100% 즉흥으로 연주해보기로 했다. 신예원이 무작정 흥얼거리다 갑자기 떠오르는 동요를 부르기 시작하면 연주자들이 이에 맞춰 연주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30분이 흘렀다. 제법 많은 곡이 녹음돼 있었다.

“30분 동안 내가 뭘 했는지 기억조차 안 날 정도로 그 순간에 완전히 빠져든 것 같아요. 공기 중에 떠도는 기운을 받아 노래한 셈이죠. 마법과도 같은 시간과 공간이었어요. 셋이서 서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녹음한다는 게 얼마나 스릴 있고 재밌던지요.”

이후 몇몇 곡을 더 녹음해 앨범 분량을 완성했다. 그렇게 해서 ‘섬집아기’, ‘자장가’, ‘오빠생각’, ‘과수원길’ 등 한국 동요 13곡을 담은 앨범이 만들어졌다. 앨범 제목은 지난해 여름 태어난 딸 루아의 이름을 따 <루아야>라고 붙였다. 이를 들어본 이시엠의 수장 만프레트 아이허는 마음에 들어하며 발매를 결정했다. 한국인 보컬리스트가 이시엠에서 음반을 내는 건 처음이다. 앨범은 지난 23일 발매됐다.

“2007년 브라질 음악의 거장 이그베르투 지스몬치 내한무대에서 협연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가 말했어요. ‘네가 음악을 부르는 게 아니라 음악이 널 불러야 한다’고요. 당시엔 무슨 얘기인 줄 몰랐는데, 이번 앨범을 녹음하면서 그 의미를 알게 됐어요.”

얼마 전 첫돌을 맞은 루아가 엄마 노래를 무척 좋아할 것 같다는 말을 건네자 신예원은 말했다. “아이도 아이지만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노래의 성격이 더 강해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힘든 순간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아이와 함께 이 노래를 들으면 엄마로서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앨범 수록곡들은 아이와 엄마에게 함께 바치는 노래라 할 수 있죠.”

다섯살 때부터 배운 피아노가 무척 재밌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음악을 그만둔 신예원은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동덕여대 실용음악과에 보컬 전공으로 들어갔다. 학생 시절인 2001년 가요 음반 <러블리>를 발표하고, 이승환·윤상·김진표 등 음반에도 참여했다. 학교 교수인 기타리스트 한상원의 공연에 코러스로 참여했다가 같은 무대에 기타리스트로 선 정선을 만난 것도 이 시절이다. 둘은 7년 연애 끝에 2008년 결혼했다.

학교 수업 시간에 우연히 접한 브라질 음악에 빠진 신예원은 2006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뉴욕의 재즈 명문 뉴스쿨 유니버시티에서 수학했다. 이후 2011년 미국 레이블에서 브라질 음악을 담은 <예원>을 냈다.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 당분간 음악을 안 하려고 했었거든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음악을 좋아하는 루아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보려고 해요. 다음달 3일 이시엠 페스티벌 한국 공연 이후 프랑스에서 프로모션 활동을 하고 내년 봄에는 미국 투어도 할 예정이에요. 그다음요? 모르겠어요. 나도 모르게 입에서 동요가 흘러나온 것처럼 물 흐르듯 그렇게 살고 싶어요.”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이시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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