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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이 시대 마지막 예기들…‘작별의 춤’

등록 2013-09-01 20:12

해방 전 예인 양성소인 권번 출신의 마지막 예기들인 대구 권명화 명인.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제공
해방 전 예인 양성소인 권번 출신의 마지막 예기들인 대구 권명화 명인.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제공
‘민살풀이춤의 전수자’ 장금도
‘춤을 부르는 소리꾼’ 유금선
‘달구벌 춤의 봉우리’ 권명화
평균나이 82살…‘해어화’ 공연 

평소엔 걷는 것조차 편치 않아
“요것으로 작별…마지막이여”
젊은 시절 노래와 춤으로 전라·경상도 바닥을 쩌르렁 울렸던 ‘일패 기생’이었다. 한창때는 인력거 두 대가 와야 나갈 정도로 콧대가 높았다. 해방 전 예인 양성소인 일류 권번(기생조합)에서 회초리를 맞아가며 제대로 가무악과 시서화를 익힌 생짜(기생)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술과 웃음을 파는 ‘나무 기생’이나 ‘삼패 기생’과는 격이 달랐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의 몰이해와 ‘기생 출신’이라는 남다른 이력이 자식들에게 누가 될까 초야에 숨어들었다. ‘민살풀이춤의 전수자’ 군산의 장금도(85), ‘춤을 부르는 소리꾼’ 부산의 유금선(82), ‘달구벌 춤의 봉우리’ 대구의 권명화(79) 명인이다.

우리 시대 마지막 예기(藝妓) 세 사람이 12일 오후 8시 서울 엘지아트센터에서 ‘해어화’(解語花) 공연을 펼친다. 해어화는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는 의미로 기생을 말한다. 전통예술 연출가 진옥섭(49)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이 기획과 연출을 맡아 판을 짰다.

군산의 장금도.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제공
군산의 장금도.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제공
■ 김제 만경을 누빈 ‘임방울 소리에 장금도의 춤’ 군산 소화권번 출신인 장금도 명인은 ‘민살풀이춤’으로 김제 만경은 물론 서울 명월관과 국일관으로도 불려다녔던 소문난 예기였다. “김제 만경의 큰 잔치는 임방울 소리에 장금도 춤이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였다. 임방울(1904~1961)은 ‘쑥대머리’로 일제시대 시대를 풍미한 판소리 명창이다. ‘민살풀이’는 수건을 들지 않은 맨손으로 춘다 하여 무늬를 넣지 않은 것에 붙이는 ‘민’ 자를 살풀이 앞에 붙였다. 예전에는 민살풀이를 추는 이가 많았지만 지금은 다 타계하고 그와 남원의 조갑녀(90) 명인 두 사람이 남았고,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이는 그뿐이다. 2008년 서울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먼저 간 아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춤판을 가진 지 5년 만이다. “내 춤은 구식이라 싱거운디 불러싸. 요것으로 작별이다 하고 마지막으로 올라갑니다.” 장 명인의 말이다.

부산 유금선. 인력거 두 대가 와야 노래나 춤추러 나갈 정도로 콧대가 높았던 예기들의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판이 벌어진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제공
부산 유금선. 인력거 두 대가 와야 노래나 춤추러 나갈 정도로 콧대가 높았던 예기들의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판이 벌어진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제공
■ 풍류 본향 동래 기생 최고 소리꾼 유금선 유금선 명인은 “평양기생 진주기생 말도 마라 동래기생!”이라는 풍류 본향 부산 동래의 마지막 기생이다. 열네살에 동래권번에 들어가 젊은 시절 가무로 날렸으나 한량들의 춤을 추기는 구음을 하다가 결국 전문 소리꾼으로 눌러앉았다. 원래 구음은 악기를 교습하면서 악보 대신 “나니나 나리룻” 입소리로 악기를 흉내 내다 생겨났다. 그의 구음은 누구나 절로 몸을 들썩이게 하는 즉흥 소리가 일품이다. 1993년 구음으로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3호 ‘동래학춤’의 보유자가 되었다. “학을 불렀는지 내를 불렀는지 모르는데 내를 불렀으면 구음 말고도 뭘 얹어야 될낀데.” 공연날 흥이 오르면 다른 소리 한 곡도 부르겠다는 이야기다.

■ 전쟁통에도 날렸던 승무 명인 권명화 권명화 명인은 김천의 세습무가에서 태어나 대구의 대동권번에서 풍류의 대가 박지홍(1889~1959)에게 회초리를 맞아가며 가무를 익혔다.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9호 ‘살풀이춤’으로 지정되어 살풀이춤 공연을 자주 하지만, 박지홍의 올바른 바디가 있는 승무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무대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대구 피난 시절 국립극장이었던 문화극장에서 추어 피란 온 문화계 인사들이 극찬을 했던 승무를 선보인다. 그는 “80살 할마이가 승무는 어깨 빠진다”며 “북 가락은 좀 줄일 건데 양해 바란다”고 엄살을 부렸다. 그러나 진옥섭씨는 그가 앙코르로 ‘소고춤’을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세 명인은 모두 팔순을 넘겼고, 평소에는 걷는 것조차 편치 않은 실정이다. 그래도 무대에 오르면 달라지는 것이 내력 깊은 예기들이다. 따라서 세 명인의 나이를 고려하면 앞으로 만나기 쉽지 않은 예기들의 특별한 공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세 해어화와 함께 춤의 노름마치(최고 명인)들도 함께 출연한다. 예전 여성농악단을 복원한 연희단 팔산대가 판을 여는 ‘판굿’을 벌이고, 북춤으로 세계 각국 무대에 초청받는 밀양춤 종손 하용부(58)씨의 ‘북춤’, 마지막 진주 예기 김수악(1926~2009) 명인을 이어받은 김경란(57)씨의 ‘교방굿거리춤’이 뒤를 잇는다. 또 유랑춤꾼 김운태(50)씨의 ‘채상소고춤’과 동래 명무 이성훈(64)씨와 그의 제자 월정명 단원들의 ‘동래학춤’, 유금선 명인의 애제자 김신영(51)씨의 구음도 곁들여진다. (02)3011-1720~1.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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