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호화 캐스팅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오페라 ‘돈 카를로스’. 각 페스티벌 제공
[문화‘랑’] 여름 달군 ‘유럽 3대 음악축제’ 현장
베로나, 잘츠부르크, 바이로이트. 베르디와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맞은 올해, 그 절정은 유럽의 ‘3대 여름 음악 축제’였다. 돌아온 거장부터 스타로 부상한 한국인 바리톤 이야기까지 화제가 넘친 축제 현장을 음악칼럼니스트 장일범씨가 다녀왔다.
베로나, 잘츠부르크, 바이로이트. 베르디와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맞은 올해, 그 절정은 유럽의 ‘3대 여름 음악 축제’였다. 돌아온 거장부터 스타로 부상한 한국인 바리톤 이야기까지 화제가 넘친 축제 현장을 음악칼럼니스트 장일범씨가 다녀왔다.
베로나 테너 도밍고 병상 딛고 바리톤으로 변신
이탈리아 베로나 아레나 페스티벌의 역사는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오페라 <아이다>로 축제를 연 19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곡가 베르디 탄생 200주년에 페스티벌 탄생 ‘첸테나리오’(100주년)까지 겹친 올해는 의미가 더욱 특별했다. 올해는 단골 인기 레퍼토리인 비제의 <카르멘>이나 푸치니의 <투란도트>가 사라진 대신 베로나를 배경으로 한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빼고는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 <리골레토> 등 모두 베르디 작품으로 채웠다.
축제의 주인공은 명예예술감독을 맡은 플라시도 도밍고(72)였다. 초여름 폐색전증으로 마드리드 병원에 입원했던 그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8월13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콘서트 버전의 베르디 오페라 <조반나 다르코>에서 열연한 뒤 바로 베로나로 건너와 8월15일 ‘도밍고-하딩 갈라 콘서트’에 참가했다. 젊은 지휘자 대니얼 하딩(38)과 호흡을 맞춰 젊은 시절 베로나 무대에서 활약했던 바그너의 <발퀴레> 중 테너 ‘지그문트’ 역,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 중 바리톤 ‘시몬 보카네그라’ 역 등의 하이라이트 공연을 선보였다. 베르디-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하나로 완성시키는 순간이었다.
베로나 페스티벌에서만 ‘리골레토’ 역으로 130회에 이르는 열연을 펼치며 지금도 전성기를 유지하고 있는 노장 바리톤 레오 누치(71)의 활약도 눈부셨다. 그의 농익은 연기와 호소력 있는 목소리, ‘질다’ 역의 한창 뜨고 있는 소프라노 올가 페레탸티코(33)의 빼어난 가창은 연출가 이보 게라의 다소 밋밋한 연출에도 불구하고 <리골레토>(8월16일)를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누치는 베로나의 최고 베테랑으로서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듯 가장 싼 좌석(24유로) 청중들이 있는 돌계단 위까지 달려 올라가 커튼콜을 펼쳐 특별한 감동을 선사했다.
잘츠부르크 베르디와 바그너를 모두 품다
올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베르디와 바그너의 오페라를 함께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서유럽 축제였다. 언제나 유럽 여름 페스티벌의 맹주로서 새로운 흐름을 주도해온 이 축제는 올해에도 가장 강력한 출연진으로 전세계의 청중들을 불러모았다.
8월22일 동독 출신의 연출가 페터 슈타인(76)이 만든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가 무대에 올랐다. 자신이 늘 연출해온 방식대로 짓눌려온 민중의 합창 장면을 무채색으로 그려넣고 고증과 디테일을 살린 시대 의상을 입혔다. 특히 주요 연기를 무대 오른쪽 날개 부분인 ‘상수’에서 연기하도록 하는 그의 전매특허는 이번 공연에서도 발휘됐다. 베르디의 <맥베스>나 일련의 바그너 작품들에서 보여준 그의 연출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천편일률적’이라고 느낄지 모르지만, 사극을 보고 싶어하는 고전적인 청중의 취향에는 알맞다. 무엇보다 출연진이 매우 훌륭했다. ‘돈 카를로스’ 역에 인기 절정의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44)을 비롯해 독일권 최고의 소프라노로 급상승하는 아냐 하르테로스(41), 바리톤 토머스 햄프슨(58), 베이스 마티 살미넨(68)으로 이어지는 초호화 캐스팅에, 런던 코벤트 가든의 안토니오 파파노(54)가 빈 필의 지휘를 맡았다.
베로나
‘아레나 페스티벌’ 100주년 겹경사
70대 도밍고, 감독·지휘자 종횡무진 잘츠부르크
연극, 오페라, 경연 등 다양한 행사
45일동안 280개 공연을 ‘우아하게’ 바이로이트
연중 내내 바그너 공연·전시 열어
한국 바리톤 사무엘 윤 인기 상승 24일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콘서트 형식인 가극 <리엔치>를 빼면 유일하게 바그너 오페라로 선택한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가 무대에 올랐다. 노르웨이 연출가 스테판 헤르헤임(41)이 연출한 <마이스터징어>는 원작의 배경을 모든 중산층 가정에 피아노가 자리잡던 19세기 초반으로 옮겨놓고, 거친 독일 민중 언어가 예술 언어로 자리매김하는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와 ‘그림형제’의 이야기를 녹여냈다. 무대 위에는 독일 정신을 대표하는 두 예술가 괴테와 베토벤의 흉상을 배치해 독일문화를 한껏 칭찬한 뒤, 혼자서 망상에 빠져 연주하는 마을 서기 ‘베크메서’의 모습을 통해 나치를 탄생시킨 독일 민중을 질책했다. 올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베네수엘라의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오케스트라 시스템으로 유명한 ‘엘 시스테마’ 프로그램이었다.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뿐 아니라 이 교육제도를 통해 생긴 다른 어린이·청소년 오케스트라와 브라스 앙상블까지 다양하게 초청해 13개의 연주회를 마련했다. 이 프로그램은 이스라엘과 아랍 청년 연주가들이 ‘음악으로 하나됨’을 보여주는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공연과 함께 클래식 음악교육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했다. 바이로이트 바그너 성지에 사무엘 윤 뜨다 올해 탄생 200돌을 맞은 바그너 공연과 전시가 일년 내내 열리는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그 꽃은 당연히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었다. 지난해에 이어 한국 바리톤 사무엘 윤이 주연을 맡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이 개막작으로 공연되어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이곳에서 사무엘 윤의 인기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다. 이미 그의 내년 공연 일정도 발표되었다. 내년에 그는 개막 다음날인 7월26일부터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주인공 역에 출연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베이스 연광철도 이 작품에 ‘달란트’ 역으로 출연한다. 한국 성악가 2명이 한 작품에 출연하는 자랑스런 모습을 보게 될 것 같다. 올해 페스티벌에는 4부작 <니벨룽의 반지>가 독일 민중극단 예술감독 프랑크 카스토르프의 연출로 선보여 엄청난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쏠린 관심은 논란으로 뒤바뀌었다. 특히 1부 ‘라인골트’에서 출연진을 텍사스의 한 모텔방에 넣어놓고 카메라 장비를 이용한 생중계를 통해 청중이 스크린으로만 노래부르는 모습을 2시간 내내 봐야 하는 충격적인 시도, 그리고 지나친 잔혹성 등은 엄청난 혹평을 받았다.
반면 올해 네번째 무대에 오른 한스 노이엔펠스 연출의 <로엔그린>(8월26일)은 연출부터 가수들에 이르기까지 올해 페스티벌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었다. 한스 노이엔펠스는 무대 디자인과 의상을 맡은 라인하르트 폰 데어 타넨과 함께 매우 정제되고 예쁜 무대를 만들어냈는데, 군중을 쥐로 자주 등장시키는 것이 특징이었다. 지도자들에게 조종되는 민중 곧 나치 시대를 비판하고 조롱한 것으로 읽혔다. 또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 역을 맡은 클라우스 플로리안 포크트의 첫 노래를 듣고 오르페우스 같은 미소년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바그너의 ‘영웅적’ 헬덴 테너에 대한 개념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장일범/음악평론가·KBS 클래식 FM ‘장일범의 가정음악’ 진행자
플라시도 도밍고의 활약이 눈부신 베로나 아레나 페스티벌 ‘도밍고-하딩 갈라 콘서트’. 각 페스티벌 제공
한국 바리톤 사무엘 윤이 타이틀롤을 맡아 화제가 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각 페스티벌 제공
‘아레나 페스티벌’ 100주년 겹경사
70대 도밍고, 감독·지휘자 종횡무진 잘츠부르크
연극, 오페라, 경연 등 다양한 행사
45일동안 280개 공연을 ‘우아하게’ 바이로이트
연중 내내 바그너 공연·전시 열어
한국 바리톤 사무엘 윤 인기 상승 24일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콘서트 형식인 가극 <리엔치>를 빼면 유일하게 바그너 오페라로 선택한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가 무대에 올랐다. 노르웨이 연출가 스테판 헤르헤임(41)이 연출한 <마이스터징어>는 원작의 배경을 모든 중산층 가정에 피아노가 자리잡던 19세기 초반으로 옮겨놓고, 거친 독일 민중 언어가 예술 언어로 자리매김하는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와 ‘그림형제’의 이야기를 녹여냈다. 무대 위에는 독일 정신을 대표하는 두 예술가 괴테와 베토벤의 흉상을 배치해 독일문화를 한껏 칭찬한 뒤, 혼자서 망상에 빠져 연주하는 마을 서기 ‘베크메서’의 모습을 통해 나치를 탄생시킨 독일 민중을 질책했다. 올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베네수엘라의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오케스트라 시스템으로 유명한 ‘엘 시스테마’ 프로그램이었다.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뿐 아니라 이 교육제도를 통해 생긴 다른 어린이·청소년 오케스트라와 브라스 앙상블까지 다양하게 초청해 13개의 연주회를 마련했다. 이 프로그램은 이스라엘과 아랍 청년 연주가들이 ‘음악으로 하나됨’을 보여주는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공연과 함께 클래식 음악교육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했다. 바이로이트 바그너 성지에 사무엘 윤 뜨다 올해 탄생 200돌을 맞은 바그너 공연과 전시가 일년 내내 열리는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그 꽃은 당연히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었다. 지난해에 이어 한국 바리톤 사무엘 윤이 주연을 맡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이 개막작으로 공연되어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이곳에서 사무엘 윤의 인기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다. 이미 그의 내년 공연 일정도 발표되었다. 내년에 그는 개막 다음날인 7월26일부터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주인공 역에 출연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베이스 연광철도 이 작품에 ‘달란트’ 역으로 출연한다. 한국 성악가 2명이 한 작품에 출연하는 자랑스런 모습을 보게 될 것 같다. 올해 페스티벌에는 4부작 <니벨룽의 반지>가 독일 민중극단 예술감독 프랑크 카스토르프의 연출로 선보여 엄청난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쏠린 관심은 논란으로 뒤바뀌었다. 특히 1부 ‘라인골트’에서 출연진을 텍사스의 한 모텔방에 넣어놓고 카메라 장비를 이용한 생중계를 통해 청중이 스크린으로만 노래부르는 모습을 2시간 내내 봐야 하는 충격적인 시도, 그리고 지나친 잔혹성 등은 엄청난 혹평을 받았다.
장일범/음악평론가·KBS 클래식 FM ‘장일범의 가정음악’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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