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연극>
21일부터 국립극단서 ‘밤의 연극’
늦은 밤 남자 둘과 여자 둘이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덜컹거리는 지하철 속에서 무언가에 변명을 하거나 따지듯 저마다 쉴새없이 독백을 쏟아낸다.
“자고 싶니? 분명하게 답해 볼래?”(여자) “난 니가 누군지 알고 싶지 않아.”(남자) “난 지금 뭔가를 잃어버렸어. 그건 나한테 중요한 거야.”(여인) “난 사실 지쳐서 널 지나치고 싶었어.”(사내)
그들이 탄 지하철 안은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고 있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말은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차 언뜻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반복되는 독백에는 일상에 지친 피곤함과 은밀한 욕망, 분노, 슬픔이 짙게 배어 있다. 남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상대를 갈망하고, 사내는 고된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 여자는 일탈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고, 여인은 점점 멀어지는 기억들을 붙잡으려고 애쓴다.
극단 죽죽(대표 김낙형)이 국립극단(예술감독 손진책)과 손잡고 21일부터 서울 소격동 국립극단 소극장 판 무대에 올린 <밤의 연극>(사진)은 21세기 부조리한 현대인의 ‘밤’에 대한 보고서이다. 연극 <지상의 모든 밤들>, <농담> 등 동시대의 문제를 새로운 무대언어로 다룬 작품으로 주목받는 극작가 겸 연출가 김낙형(43)씨의 신작이다. 그가 대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이 작품은 일반적인 극 형식에서 벗어나 대사와 장면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점이 눈길을 끈다.
연극에서 4명의 남녀는 진지하게 ‘말’을 하지만 듣는 사람이 없다. 따라서 그 말은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라기보다 그저 자신에게 내뱉는 것으로 들린다. 현대인의 소통 부재를 암시한다. 정신적인 공허함과 불안, 고독감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의 좌표는 어디인가?”,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캐묻는다.
<밤의 연극>에서는 기존의 공연 방식과 차별화한 연극무대도 돋보인다. 일반 객석이 아니라 무대 위에 객석을 ‘ㄷ’자 모양으로 설치했다. 공연이 단순히 무대 위에 등장하는 인물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극을 지켜보는 관객들의 이야기로 확장하려는 의도다. 등장인물들은 자신들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말을 건네 관객들을 그들의 삶 속으로 끌어들인다. 관객들은 의도하지 않게 극에 적극적으로 개입됨으로써 등장인물의 모습에서 자신들을 발견한다. 10월3일까지, 1688-5966.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사진 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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