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연출가 데클런 도널랜, 사진 엘지아트센터 제공
연극 ‘템페스트’ 내한공연 도널랜
영국 최고의 연출가 중 한 명
“고전에는 인간사 그대로 담겨”
영국 최고의 연출가 중 한 명
“고전에는 인간사 그대로 담겨”
현대 연극계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세계를 가장 잘 살린다는 영국 연출가 데클런 도널랜(60)이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마지막 희곡을 들고 한국을 찾는다. 그는 러시아의 ‘체호프 페스티벌 극단’과 함께 10월1~3일 서울 역삼동 엘지아트센터 무대에서 연극 <템페스트>를 선보인다. 2007년 첫 내한공연에서 남자 배우들만 등장시킨 연극 <십이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지 6년 만의 방문이다.
그는 지난 23일 <한겨레>와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다시 공연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 나와 배우들은 6년 전 따뜻하고 열정적이었던 한국 관객들을 잊을 수 없다”고 한국 공연의 기대감을 나타냈다.
도널랜은 피터 브룩(88), 피터 홀(82), 트레버 넌(73)을 이은 영국 최고 연출가로 꼽힌다. 고전을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뛰어난 감각, 세련되고 힘있는 연출 스타일, 그리고 무엇보다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의 예술’이라는 강한 신념을 가진 연출가로 유명하다. 1981년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의 대사에서 이름을 딴 극단 ‘칙 바이 자울’(Cheek by Jowl)을 만든 이래 지난 32년간 연극, 발레, 오페라, 영화 등 50여 개 작품을 연출했다.
특히 그는 셰익스피어가 남긴 희곡 37편의 절반가량인 16편을 무대화할 정도로 ‘셰익스피어 전문가’로 이름이 높다. <맥베스>(1987), <뜻대로 하세요>(1995), <심벌린>(2007) 등 세 편은 영국 권위의 ‘로런스 올리비에상’을 받았고, <겨울이야기>(1997)로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러시아 ‘황금마스크상’ 3개 부문(최고 작품상, 최고 연출가상,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가 나를 계속해서 놀라게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랫동안 공연하기 때문에 희곡 자체로 천천히 무언가를 던져주는 작품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고전, 특히 셰익스피어에서 찾았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빛에서 다이아몬드를 돌리는 것과 같다. 그것은 항상 변화하며, 항상 새로움을 발견하기 위한 항해와도 같다.”
그가 한국에 선보이는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가 남긴 마지막 희곡으로, 도널랜이 러시아의 ‘체호프 페스티벌 극단’(Chekhov International Theatre Festival)과 함께 만든 네번째 작품이자 2011년 신작이다. 그동안 러시아 체홉 페스티벌 극단과 함께 <보리스 고두노프>(2000), <십이야>(2003), <세 자매>(2005)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세계 투어를 한 바가 있다.
<템페스트>는 동생 안토니오와 나폴리 왕 알론소에게 공국을 빼앗기고 어린 딸 미란다와 함께 12년간 무인도에 버려진 밀라노 공작 프로스페로가 마법의 힘으로 복수의 기회를 잡았지만, 딸 미란다와 알론소의 아들 페르디난드와의 사랑에 감동해 용서하고 화해한다는 줄거리이다. 2011년 초연 당시 소비에트 연방 해체 전후의 러시아 풍경을 담아내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영국 <가디언>지는 “이것은 재기 발랄한 연극적 ‘발명’이다”고 평가했고, 영국 <텔리그래프>지는 “지금껏 본 가장 위트 넘치는 템페스트… 완전히 넋을 잃었다”고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도널랜은 “연극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의 가장 무질서한 연극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복수 비극으로 시작해 용서와 감사를 찾기 위한 격렬한 투쟁으로 끝난다. 오늘날 인간사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왜 고전을 원작 그대로 충실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로 재해석하려고 하는가?’를 묻자 ‘고전은 아직 살아있는 것을 뜻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고전에는 우리에 관한, 우리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또한, 고전은 우리 삶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수 세대를 걸쳐 살아남았다. 당연히 우리는 이미 죽은 영국인들보다 현재 살고 있는 한국인들과 더 많은 공통점이 있다. 훨씬 더. 우리는 고전을 통해 우리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을 기린다. 따라서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우리의 우선순위는 살아있는 어떤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항상 찾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영국 연출가이지만 러시아의 배우 훈련법에 깊은 관심과 애정이 있다. 1996년 현대 연극의 거장 레프 도진(69·상트페테르부르크 말리 극장 예술감독)의 초청을 받아 이듬해 <겨울 이야기>를 처음 연출한 뒤로 러시아 배우들과 꾸준히 작업을 해오고 있다.
“러시아에 갔을 때, 이상하게도 고향에 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평소에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예를 들면 컴퍼니는 주역 배우 개개인들이 아닌 앙상블로 이루어진다는 것 등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영국, 프랑스, 그리고 미국의 배우들도 이러한 방식으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들은 앙상블에서 시작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러시아 배우들은 앙상블에서부터 시작을 하고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한다.”
<템페스트> 한국 공연에서는 러시아 배우들의 연기 못지않게 도넬란과 30년 이상 함께 작업해 온 닉 오머로드의 무대 디자인도 관심이 쏠린다. 미니멀리스트로 유명한 닉은 텅 빈 무대에 4미터 높이의 3면 벽을 세우고, 그 벽을 스크린으로 활용하여 무대 디자인의 효용성을 높였다. 무대와 의상은 최소화하여 배우의 연기에 집중하게 하려는 도넬란과 오머로드의 연극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도널랜은 “내게 ‘공간’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삶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공간이 존재해야 한다. 닉 오머로드는 삶이 발생할 만한 곳에 공간을 구성할 줄 아는 디자이너다”고 소개했다.
그는 현재 장 바티스트 라신(1639~1699)의 비극적 희곡 <앙드로마크>를 제작했던 프랑스 배우들과 함께 만든 알프레드 자리(1873~1907)의 풍자 소극 <위비 왕>으로 세계 투어 중이다. <위비 왕>은 올해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공연되고 있고, 스페인 마드리드와 프랑스의 여러 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02)2005-0114.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사진 엘지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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