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 강주관(67)씨
월남전 참전 후유증 강주관씨
뇌종양 투병중에 전시회 열어
뇌종양 투병중에 전시회 열어
베트남전 고엽제 후유증을 붓글씨로 다스려온 노병 강주관(67·사진)씨의 서예전이 서울 명동성당 평화화랑에서 10월1일까지 열리고 있다.
한국 천주교 초기의 천주가사, 김대건·최양업 신부의 유작, 구상 시인의 시작품 등을 궁체로 옮긴 글씨 40여점이 걸렸다. 두루마리 대작들이 많다. 짧은 것은 3.8m짜리 <선종가>가 있고 <삼세대의>가 8m, <사향가>는 무려 12.5m여서 다 펼치지 못하고 둘둘 말린 채 전시돼 있다. 강씨는 악성 뇌종양으로 보훈병원에 입원중이어서 아내 정인숙(64)씨가 전시장을 지키고 있다.
“지금은 손발이 떨리고 정신이 희미해져 더 이상 작품활동을 할 수 없어요. 출품작들은 지난해 겨울 병이 악화돼 붓을 놓기까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쓰신 것입니다.” 정씨는 남편에게 붓글씨는 희망이자 사랑이었고 스승이었다고 말했다.
강씨가 고엽제 환자가 된 건 스물네살 때인 1970년. 그 한해 전 맹호사단 위생병으로 베트남에 파병됐던 그가 부대 시찰을 하는 사령관을 따라나섰다가 실족해 고엽제 범벅이던 물웅덩이에 빠진 게 불행의 단초였다. 제대 뒤 결혼했지만, 몸은 점점 쇠약해졌고, 병원비를 감당하느라 가세는 기울어 갔다. 첫 아내는 두 딸을 데리고 가출했다. 강씨가 붓을 잡은 것은 1979년. 3개월 시한부 인생 진단을 받고 나서다.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심정으로 신앙과 붓글씨에 매달렸다. 붓끝에 정신을 집중시켜 한글궁체를 써나가는 동안은 손발 마비 증세와 전신 피부병이 주는 지독한 가려움증을 잊을 수 있었다.
사내는 몇년이 지나며 서예가가 되었고 그의 글씨를 사겠다는 사람도 생겼다. 대한민국 서예대전(미협) 입선 4회, 동양서화대전 최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수원·대전·청주교구청과 천진암 성지 등 30여곳의 교회 기관과 해외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지금의 아내 정씨는 15년 전 지학순주교추모사업회의 정의평화기금 마련을 위한 전시회에 작품을 받으러 온 인연으로 만났다고 한다.
“붓글씨가 그이의 생명을 35년 연장시킨 셈이죠.” 정씨는 노동운동을 하느라 남편의 서예활동에 도움이 못 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사진 정인숙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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