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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바람 같은 노래를 하고 싶어”

등록 2013-10-21 08:18수정 2013-10-21 08:19

음유시인 ‘루시드폴’ 새 앨범

작년 삼청동 한옥에 둥지 틀고
새·꽃·바람…자연의 소리 담아
6집 ‘꽃은 말이 없다’ 발매
‘약음’ 위해 최소한의 악기 사용
시와 같은 유려한 노랫말도 여전
“저와 어울리지 않는 건 다 뺐어요”
내달 6~17일 서울서 기념공연도

루시드폴(조윤석) 2집 <오, 사랑>(2005)에는 ‘삼청동’이라는 노래가 있다. “난 낯설은 바람이 지나가버린 곳에 살아”라는 노랫말이 고운 곡이다. 2009년 스위스 유학생활을 정리하고 전업가수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 루시드폴은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노래처럼 서울 삼청동에 집을 마련했다. 이후 같은 동네에서 두 차례 이사를 거쳐 지난해 봄부터 지금 한옥에 둥지를 틀었다.

한옥에는 작은 뜰이 있었다. 동네 화원에서 모종을 사다가 고추, 바질, 금잔화, 수선화 등을 정성스레 가꿨다. 뜰에 핀 꽃 때문인지 나비가 자주 날아들었다. 활짝 열어둔 대문으로 검은 개와 길고양이들도 오갔다. 그들을 위해 사료를 사다가 내놓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까치가 밥 달라고 울어댔다. 뜰에 쌀을 한움큼씩 뿌려놓으니 산비둘기, 참새, 박새까지 날아들었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 지난여름, 그는 작은 자연에 둘러싸여 계절을 났다. 쏟아지는 빗방울, 개와 고양이, 새와 풀벌레가 만들어내는 작은 소리에 그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타를 뜯으며 선율을 만들고 노랫말을 써내려갔다. 그렇게 만든 10곡을 담은 새 앨범을 내놓는다. 4집 <레미제라블>(2009)이 가진 것 없고 외로운 이들을 위로하는 앨범이었고, 5집 <아름다운 날들>(2011)이 슬럼프, 실연, 자괴감의 아픔 등 자신의 내면을 향한 앨범이었다면, 23일 발매하는 6집 <꽃은 말이 없다>는 일상의 작은 자연에서 포착한 아름다움을 담아낸 앨범이다.

대도시에서 자동차 소리, 매스미디어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에 묻혀버린 약자들의 약음(弱音)을 대변하기 위해 루시드폴은 최소한의 어쿠스틱 악기만을 썼다.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채운 노래도 있고, 가장 많은 악기를 썼다고 해도 기타,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브러시 드럼 정도다. 대신 여러 종류의 기타를 쓰면서 세밀한 소리의 변화를 추구했다. 보통의 기타보다 음역대가 낮은 바리톤 기타, 세미 바리톤 기타, 8줄 나일론 기타, 집시 재즈 기타 등의 소리를 탐구해가며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그렇게 다듬은 노래들은 자극적인 인공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은 소박한 유기농 자연 밥상을 닮았다.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흥겨움이나 한번 들으면 머리에 쏙쏙 박히는 ‘훅’ 하나 없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약음’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그의 노래들이 요란하고 시끌벅적한 가요판에서 또다른 ‘약음’이 돼버리는 건 아닐까?

“텔레비전이나 매체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 노래들 사이에서 조용하고 여린 음악은 묻혀서 잘 안 들리는 약음이 될 수 있겠죠. 그래도 제가 그런 음악을 하는 사람인 걸 어쩌겠어요. 음악에도 ‘필요악’이 있어요. 싫어도 분위기 띄우는 노래, 훅이 있는 노래를 해야 하는 거죠. 하지만 이번 앨범 만들 땐 음악 자체 말고는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았어요. 최소한의 필요한 것만 남기고 저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은 다 빼버렸죠.”

시와도 같은 유려한 노랫말은 더욱 빛난다. 비에 젖은 새를 보며 쓴 곡 ‘서울의 새’에서 그는 노래한다. “서울의 밤은 그런 것 같아. 서로들 사랑한다 말해도, 아닌 것 같아.” 집 앞뜰에 활짝 피었다가 서서히 져가는 금잔화한테 그는 또 이렇게 노래한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고 지나가면 세상은 우리를 원하지 않을지 몰라. 그럴 테지. 하지만 너는 오늘 하루도 아름답게 폈구나.”(‘늙은 금잔화에게’) ‘바람 같은 노래를’에선 자신의 음악관과 인생관을 고백한다. “바람 같은 노래를 하고 싶어. 들릴 듯 들리지 않게. 애써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몸을 맡긴 사람은 들을 수 있는 그런 노래. 내가 사는 만큼만 노래하고 싶어. 노래만큼만 살아야겠다 싶어.”

루시드폴은 올해 초 소설집 <무국적 요리>를 펴내기도 했을 정도로 글쓰기에 재주를 보인다. 소설을 발간한 출판사 대표는 그에게 “다음 앨범에선 가사가 더 좋아질 거야”라고 단언을 했다고 한다. “소설을 쓴 게 가사 쓰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조금은 연습이 됐으려나요?” 그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앨범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은 역설적이게도 노랫말이 없는 연주곡 ‘꽃은 말이 없다’이다. 루시드폴은 “바리톤 기타를 이리저리 치다가 만든 곡인데, 기타의 울림 자체가 마음에 들어서 굳이 가사를 붙일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기타 지판 위로 손가락이 움직이면서 내는 소음까지 음악이 된다. 이런 세밀한 소리까지 잘 살려내기 위해 앨범 전체를 고해상도로 녹음했다고 한다.

루시드폴은 다음달 6~17일 서울 올림픽공원 케이아트홀에서 새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을 10회에 걸쳐 한다. 내년에는 6주 동안 장기 공연을 하고 부산, 대구 등 전국 투어도 돌 예정이다. 공연을 오래 하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저에게는 프로필사진을 찍거나 방송에 출연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그런 거 일주일 하느니 두달 동안 공연하는 걸 택하겠어요. 공연할 때가 저는 가장 즐겁고요, 가장 나다운 활동인 것 같아요.” 공연 문의 1544-1555.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안테나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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