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바냐 아저씨>에서 드라마투르그로 참여한 김옥란씨가 25일 명동예술극장을 찾았다. 그는 “드라마투르그는 연출가와 배우, 스태프 간의 서로 다른 언어를 잘 ‘번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문화'랑'] 나도 문화인
(22) ‘드라마투르그’ 김옥란씨
(22) ‘드라마투르그’ 김옥란씨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안톤 체호프의 연극 <바냐아저씨>의 포스터를 살펴보면 연출가와 배우, 스태프 이름들 틈새에 ‘드라마투르그’라는 낯선 단어가 눈에 띈다.
독일어로 ‘드라마투르그’, 영어로 ‘드라마터그’는 극작술(드라마투르기·드라마터지)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더 자세히는 희곡 작품이 연극 무대에 올라가는 전 과정에서 문학적, 예술적 조언을 하는 연극 전문가를 이른다. 희곡의 창작과정에서부터 배우 캐스팅과 공연 후 평가까지 맡기도 한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활동을 펼치고 있는 ‘드라마투르그’ 김옥란(45·연극평론가)씨를 지난 주말 명동예술극장 분장실에서 만났다.
“애초에는 작가와 연출가의 매개 역할부터 시작해요. 일찍부터 투입되면 작품 설정 과정에서부터 같이 가는 거죠. 어떤 작가의 작품을 왜 지금 올려야 하는지 연출가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는 연극 연구자 출신인데 제가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과는 다르게 공연제작 현장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요. 연출가나 배우들이나 스태프들도 굉장히 독립적인 예술가들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각자 작품과 배역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같은 합의를 이뤄내는 과정이 중요해요.”
김옥란씨는 “드라마투르기는 연출가와 배우, 스태프 간의 서로 다른 언어를 잘 ‘번역’ 해서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연극계에서도 1990년대 중반 이후 드라마투르그가 많아졌는데 아직 인식이 낮아서 외국과는 달리 직업으로 정착되지 않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서로 생각 나눌 수 있도록
토론·질문 시간 자주 마련
창작~평가 전과정에 참여
유럽선 문예감독으로 불려 “집단 드라마투르그 운용했던
브레이트가 나의 롤모델” 그는 이번 공연에서 제작 초기에 참여해 국내에서 번역된 8편의 <바냐아저씨>를 토대로 대본 구성, 작품과 인물 분석, 리딩 작업, 공연 연습 등 전 과정을 함께했다. “한 작품을 올려도 다 동상이몽입니다. 저는 작품 분석을 다 끝내고 나서 연출가나 배우, 스태프들에게 ‘이 작품에 대해서 무얼 하고 싶은지’를 계속 물어봅니다. 연출가는 자신의 머릿속에 다 그리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안다고 생각해요. 한두 마디만 던져놓고 다 알 것이라고 짐작하죠. 그러면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이 당황하는 거죠. 그래서 제가 계속 연출가에게 그것을 말로 풀어놓게끔 토론이든 질문이든 유도합니다. 또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서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계속 만들어요.” 그가 드라마투르그로 처음 참여한 것은 2004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했던 김태웅 연출의 연극 <즐거운 인생>이었다. 연극 연구자로서 작품을 분석하고 조언을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막상 제작현장에 들어가니 예상치 않았던 난관에 부닥쳤다. 스태프들과의 관계, 배우들과의 관계, 전체 프로덕션이 굴러가는 과정 등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그 당시만 해도 드라마투르그라는 인식이 낮아서 배우들조차도 ‘저 사람은 왜 오는 거야?’라는 오해도 많이 받았고, 저는 저대로 열심히 하는데 무얼 하는지 모르겠더라(웃음)”면서 “그 경험이 드라마투르그로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그 뒤로 드라마투르그에서 손을 뗐다가 2009년 이성열 연출가의 <뉴욕 안티고네> 작업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드라마투르그로 나서 연극 30여편을 했다. 올해에는 <채권자들>과 <레슬링 시즌>, <죽음의 집2>, <바냐 아저씨> 등 연극 4편에 참여했다. 1년에 1~2편에 그치는 다른 프리랜서 드라마투르그들보다 많은 편이다. 그는 “현재 남산예술센터가 2년 전부터 ‘상주 드라마투르그제도’를 시행하는 등 드라마투르그에 대한 필요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국내 연극계에서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취급받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영국을 비롯한 유럽 극단에서는 문예감독으로 불리며 연출가 이상의 권한을 가지기도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도 초창기에 드라마투르그를 하면서 작품활동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하는 롤모델이 브레히트입니다. 브레히트가 ‘집단적인 드라마투르그 체제’를 운용했고 그래서 서사극 이론도 정리하고 각색을 많이 하면서 나중에 좋은 작가와 연출가로 활동할 수 있었던 거죠.” 그에게 좋은 드라마투르그의 조건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작품을 좋아하고 공연 보는 것을 즐기고 사람을 좋아해야 끊임없이 관심과 호기심이 생긴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툭 던진다. “잘 참아야 해요.”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토론·질문 시간 자주 마련
창작~평가 전과정에 참여
유럽선 문예감독으로 불려 “집단 드라마투르그 운용했던
브레이트가 나의 롤모델” 그는 이번 공연에서 제작 초기에 참여해 국내에서 번역된 8편의 <바냐아저씨>를 토대로 대본 구성, 작품과 인물 분석, 리딩 작업, 공연 연습 등 전 과정을 함께했다. “한 작품을 올려도 다 동상이몽입니다. 저는 작품 분석을 다 끝내고 나서 연출가나 배우, 스태프들에게 ‘이 작품에 대해서 무얼 하고 싶은지’를 계속 물어봅니다. 연출가는 자신의 머릿속에 다 그리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안다고 생각해요. 한두 마디만 던져놓고 다 알 것이라고 짐작하죠. 그러면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이 당황하는 거죠. 그래서 제가 계속 연출가에게 그것을 말로 풀어놓게끔 토론이든 질문이든 유도합니다. 또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서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계속 만들어요.” 그가 드라마투르그로 처음 참여한 것은 2004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했던 김태웅 연출의 연극 <즐거운 인생>이었다. 연극 연구자로서 작품을 분석하고 조언을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막상 제작현장에 들어가니 예상치 않았던 난관에 부닥쳤다. 스태프들과의 관계, 배우들과의 관계, 전체 프로덕션이 굴러가는 과정 등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그 당시만 해도 드라마투르그라는 인식이 낮아서 배우들조차도 ‘저 사람은 왜 오는 거야?’라는 오해도 많이 받았고, 저는 저대로 열심히 하는데 무얼 하는지 모르겠더라(웃음)”면서 “그 경험이 드라마투르그로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그 뒤로 드라마투르그에서 손을 뗐다가 2009년 이성열 연출가의 <뉴욕 안티고네> 작업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드라마투르그로 나서 연극 30여편을 했다. 올해에는 <채권자들>과 <레슬링 시즌>, <죽음의 집2>, <바냐 아저씨> 등 연극 4편에 참여했다. 1년에 1~2편에 그치는 다른 프리랜서 드라마투르그들보다 많은 편이다. 그는 “현재 남산예술센터가 2년 전부터 ‘상주 드라마투르그제도’를 시행하는 등 드라마투르그에 대한 필요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국내 연극계에서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취급받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영국을 비롯한 유럽 극단에서는 문예감독으로 불리며 연출가 이상의 권한을 가지기도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도 초창기에 드라마투르그를 하면서 작품활동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하는 롤모델이 브레히트입니다. 브레히트가 ‘집단적인 드라마투르그 체제’를 운용했고 그래서 서사극 이론도 정리하고 각색을 많이 하면서 나중에 좋은 작가와 연출가로 활동할 수 있었던 거죠.” 그에게 좋은 드라마투르그의 조건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작품을 좋아하고 공연 보는 것을 즐기고 사람을 좋아해야 끊임없이 관심과 호기심이 생긴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툭 던진다. “잘 참아야 해요.”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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