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곧바로 메탈리카를 좋아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가요톱텐>을 즐겨보던 까까머리 중학생은 마이클 잭슨, 아하, 왬 등을 들으며 점차 팝의 세계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록이 좋아졌다. 듣기 좋은 멜로디를 장기로 내세운 밴드 헬로윈에 꽂혔다. 멜로디가 오죽 좋았으면 ‘멜로딕 스피드 메탈’이란 장르까지 생겼겠나. 건스 앤 로지스도 좋았다. ‘웰컴 투 더 정글’을 들으며 원초적인 로큰롤의 에너지를 느꼈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메탈리카의 카세트 테이프를 샀다. 눈을 가린 채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든 정의의 여신상이 표지에 그려진 4집 <앤드 저스티스 포 올>이었다. 들어보니, 일단은 기타 소리가 좀 거칠고 시끄러웠다. 7~8분씩 되는 곡들도 제법 있었다. 왠지 무겁고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다. ‘메탈리카는 내 취향이 아니군.’ 다시 헬로윈과 건스 앤 로지스, 머틀리 크루로 돌아갔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가? 갑갑한 교실에 갇혀 세상의 갖은 고민 혼자 짊어진 양 머리칼을 쥐어뜯던 중 우연히 메탈리카 카세트테이프가 눈에 들어왔다.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에 넣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머릿속이 번뜩했다. 육중한 기타 소리와 힘 넘치는 드럼 소리는 심장을 고동치게 만들었고, 거칠게 토해내는 노래는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주었다. 신세계가 열린 것만 같았다.
그때부터 메탈리카의 모든 음반을 사모았다. 파고들면 들수록 메탈리카는 다른 밴드들과는 차원이 다른 ‘초샤이어인’(일본 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절대능력자)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서울 대학로의 음악감상실에 틀어박혀 메탈리카의 ‘원’ 뮤직비디오를 보며 눈물을 찔끔거렸던 것도 같다. 메탈리카는 그렇게 내 인생의 밴드가 됐다.
<메탈리카 스루 더 네버>(14일 개봉)라는 제목의 메탈리카 영화가 나왔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시사회장으로 달려갔다. <퀸 록 몬트리올>이나 <유투 3D>처럼 공연실황을 보여주는 영화겠거니 했다. 그런데 웬걸. 메탈리카의 라이브 공연 실황과 극중 로드 매니저 트립(데인 드한)이 공연에 필요한 어떤 물건을 찾아나서는 모험기를 결합시킨,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오가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영화였다. 역시 메탈리카는 영화도 다르게 만든다.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를 당한 뒤 폭동 현장의 한가운데로 내몰린 트립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말 탄 기사와 대결을 벌이게 된다. 같은 시각 메탈리카가 공연장에서 분출해내는 음악들은 마치 트립의 모험기를 담은 블록버스터 영화의 사운드트랙 같다. 다만 일반적인 사운드트랙이 영화 장면의 분위기를 받쳐주는 조연이라면, 여기 나오는 메탈리카의 음악은 영화를 당당하게 이끌어가는 주연이다. ‘엔터 샌드맨’, ‘원’, ‘마스터 오브 퍼피츠’ 등 대표곡 하나하나가 생생한 등장인물인 셈이다.
비교적 작은 스크린으로 봐도 이렇게 피가 끓어오르는데, 아이맥스 3디 화면으로 보면 얼마나 더 흥분될까? 총탄이 빗발치고, 전기의자 전류가 흐르고, 번개가 내리치는 무대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느낌일 것 같다. 3차원 입체 음향을 구현해낸다는 ‘돌비 애트모스’ 상영관에서도 한번 더 보고 싶다. 일단은 <메탈리카 스루 더 네버> 시디를 들으며 예열부터 해야겠다. 10대 시절의 심장을 되돌려준 메탈리카, 생큐!
서정민 문화부 기자, 사진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