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창단 25돌 기념공연을 여는 ‘사물광대’ 장현진(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신찬선, 박안지, 김한복씨. 이런 시절부터 친구였던 네 사람은 음악이 좋아 무작정 김덕수 사물놀이패를 찾아가 제자가 되었고, 이제 한국 사물놀이 2세대의 선두 주자로 손꼽힌다. 양주/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사물광대 15일 기념공연, 악연(樂緣)
18살 상경한 고교 동창생들
김덕수 사물놀이패 사사하고
세계를 누비는 대표주자로
“힘들때 있어도 지루할땐 없어요
할수록 새로운 게 풍물이니까”
18살 상경한 고교 동창생들
김덕수 사물놀이패 사사하고
세계를 누비는 대표주자로
“힘들때 있어도 지루할땐 없어요
할수록 새로운 게 풍물이니까”
1987년 12월, 18살 더벅머리 고등학생 네 명이 서울 마포 아현동 ‘사물놀이’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전국 농악대회를 휩쓴 농악 꿈나무들이었다. 이들은 당대 최고의 풍물굿 대가들에게 오디션을 자청했다. 오금이 저려 오고 식은땀이 쏟아졌지만 이를 악물었다. 오디션이 끝나자 김덕수씨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당장 짐 싸서 들어와라.”
충남 금산농업고(현재 금산산업고) 동창생 4명은 이듬해인 1988년 1월부터 마포 사무실에서 기숙하며 한국 ‘사물놀이’의 원조인 김덕수(장구), 최종실(북), 이광수(꽹과리), 강민석(징)씨에게 도제수업을 받았다. 한국의 풍물굿을 세계에 빛낸 ‘사물놀이’의 첫 제자들이자 한국 사물놀이 2세대 대표 주자로 꼽히는 ‘사물광대’이다. 마흔네살 닭띠 동갑내기 장현진(북), 신찬선(장구), 박안지(꽹과리), 김한복(징)씨로 짜여진 ‘사물광대’는 스승 김덕수씨가 “사물을 지키고 계승하는 광대가 되라”고 붙여준 이름이다.
“처음 오디션을 볼 때 김덕수 선생님께서 ‘어렵고 힘든 일인데 평생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어요. 저희는 어릴 때부터 친구고 늙어 죽을 때까지 농악을 하자고 오래전부터 약속했기 때문에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먹고 자면서 동고동락할 수 있었어요. 우리가 ‘사물놀이’의 마지막 도제일 것입니다.”
장현진씨는 “힘들 때마다 우리 네 명이 ‘무대에서 늙어 죽자’고 다짐했다”고 초기를 회고했다. 박안지씨도 “네 분 선생님이 몹시 엄하셨지만 최고의 대가들께 야단맞으며 배웠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될 수 있었다”고 거들었다. 신찬선씨는 “지난 25년은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불혹을 훨씬 넘긴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열정과 패기는 첫 만남 때와 같다”고 말했다.
‘사물광대’는 1988년 7월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 행사로 서울 창경궁에서 열린 총체극 ‘노스토이’에서 스승인 ‘사물놀이’ 대신 등장해 처음 이름을 알렸다. 이듬해 9월에는 서울 잠실 올림픽역도경기장에서 열린 ‘제1회 세계사물놀이겨루기한마당’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고, 1994년 5회에서도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후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브라질, 호주 등 세계를 누비며 ‘사물놀이’를 알려왔다.
이들 ‘사물광대’가 올해 창단 25돌을 맞아 15일 오후 7시반 서울 마포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기념 공연 ‘악연(樂緣)’을 펼친다.
“선생님들의 ‘사물놀이’가 만들어진 지 올해로 35년이고 저희가 25년입니다. 오랜 세월 똑같은 음악을 한다는 게 다른 사람이 보기엔 지루하지 않을까 생각하겠지만 사물놀이 음악 자체가 매일 똑같이 연주되지 않습니다. 틀은 같지만 시대에 따라 템포와 리듬이 변화하는 것이 사물놀이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한복씨는 “사물놀이는 하면 할수록 새로움을 알아가는 맛이 있다”고 설명했다.
공연에선 문굿(길놀이)과 비나리로 마당을 연 뒤 경기와 충청도, 호남, 영남지방의 삼도설장고가락과 삼도농악가락, 각 잽이들이 상모를 돌리고 춤추고 연주하는 판굿 등 사물놀이 완판을 2시간 동안 선보인다. (031)855-9323.
양주/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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