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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사진, 그림을 품다

등록 2013-12-17 19:29수정 2013-12-17 22:02

이명호 작가의 나무 연작 4.
이명호 작가의 나무 연작 4.
‘나무’ ‘사막’ 연작 이명호 작가
개활지 나무 뒤에 캔버스 세워
나무 초상화 같은 사진들 찍고
사막에선 바다와 오아시스 연출
작품 공들여 10년간 단 25점뿐
10년 동안 사진 25점으로 국내외에 우뚝 선 사나이. 이명호(39) 작가다. 2004년 시작한 <나무> 연작이 20점, <사막> 연작은 2009년 시작해 겨우 5점이다. 그는 현재 뉴욕에 있는 사진 화랑 요시밀로 전속작가이며 경일대 사진학과 교수다. 마흔 참에 접어든 그가 10년 작업을 정리해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내년 1월5일까지 전시를 열고 있다.

무엇이 과작의 그를 국제적으로 잘나가는 작가로 만들었을까?

그의 작품은 세 겹으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선 그가 소재로 삼은 나무는 대개 개활지 태생이다. 나무들은 지평선에서 턱걸이를 한다. 하늘의 색과 땅 위의 풀색이 맞닿아 선을 그은 곳에서 나무, 또는 나무들이 하늘과 땅을 잇는다. 그런데 나무 뒤에 사각 캔버스가 펼쳐져 있다. 캔버스를 배경으로 선 나무는 한폭의 그림이 된다. 초상화 속 나무는 이름도 없고 모양이 평범해 자기 주장을 하지 않는다. 다만 줄기를 솟구쳐 가지와 잎을 분수처럼 흩뿌릴 뿐이다. <나무>는 그림을 품은 사진이 된다. 지평선과 파스텔 색감이 서정적이다.

나무 연작 1-1.
나무 연작 1-1.

하지만 명상적인 작품 이면에는 와글와글한 에피소드가 들어 있다. 조건에 맞는 나무를 만나기 위해 작가는 요령소리가 나도록 돌아다닌다. 나무를 찾아낸 다음 모양과 크기에 맞춰 캔버스를 마련한다. 크레인 두 대, 인부 20여명과 함께 현지로 이동한다. 나무 양쪽에 선 크레인이 캔버스의 양끝을 나무 높이로 끌어올린다. 적정한 색온도가 나올 때까지 복 촬영한다. 바람이라도 불면 낭패다. 이렇게 한장의 사진이 건져진다. 한해 동안 3~4점쯤 된다.

<사막>도 마찬가지다. 가로세로의 비가 2.5~7 : 1 정도로 긴 작품들은 사막의 열기나 냉기를 색온도로 보여준다. 모래 또는 자갈투성이 사막은 수평선처럼 고요하고 때로는 파도처럼 요동친다. 아주 오래 전 바다였을 때를 의태한다. 보일 듯 말 듯 떨어진 언덕이 희끗희끗한 수평선 위에 뜬 섬처럼 보인다. 또는 모래언덕 사이에 보일 듯 말 듯 한 오아시스는 우기에 잠깐 존재하는 물줄기처럼 보인다. 모래언덕과 오아시스가 여성의 나신을 닮았다. <사막>은 고비 사막, 아라비아, 툰드라 지대, 실크로드, 파타고니아 등 사막 지역에서 바다를 연출한다. 이를 위해 현지인 400~500명을 고용한다. 지평이 보이는 곳에 한줄로 서서 거대한 캔버스를 펼쳐들거나 모래언덕 아래에 캔버스를 펼쳐 뉘고 그 속에 들어가게 한다. 무전기를 통해 일사불란한 동작을 이끌어낸다. 그런데 섭씨 50도 이상인 사막이 배경 이상의 구실을 한다. 18도 이하로 보관해야 하는 필름을 변질시켜 이상한 색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두고 필름을 사막에 넣었다 빼는 작업이라고 했다.

작가는 개활지에서는 나무 초상을, 사막에서는 바다나 오아시스의 형상을 그린다. 여느 작가들은 캔버스를 물감으로 채우는 데 반해 작가는 빈 캔버스를 들고 나가 빈 캔버스로 돌아온다. 하지만 행위를 담은 필름에는 자연 그대로 또는 연출 장면이 들어 있다. 예술행위에서 중요한 재현과 재연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다. 작가의 행위는 캔버스와 필름으로써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셈이다. 얼마 전 바람이 불어 실패한 숭례문 프로젝트는 랜드마크 시리즈의 일환. 콜로세움, 개선문 등 역사적 건축물을 떠낸다는 계획이다. 작업 자체가 거대한 퍼포먼스여서 작품 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 다음에 그가 준비한 미술 이야기는 관객과의 대화다. 3~4년쯤 뒤 선보일 예정이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사진 갤러리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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