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연기파 배우로 꼽히는 김소희씨는 요즘 <혜경궁 홍씨>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며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배우는 어떤 영혼이 놀다 가는 도구나 놀이터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국립극단 제공
연극 ‘혜경궁 홍씨’의 김소희
사도세자 부인·정조의 생모 역 맡아
국악·힙합 음악인, 아이돌 한자리에
10대부터 80대 할머니까지 연기
혜경궁 홍씨는 정치적 여성 아닌
자식 보호하려는 모성 가진 어머니
“캐릭터 잘 담아내는 ‘그릇’ 되고파”
사도세자 부인·정조의 생모 역 맡아
국악·힙합 음악인, 아이돌 한자리에
10대부터 80대 할머니까지 연기
혜경궁 홍씨는 정치적 여성 아닌
자식 보호하려는 모성 가진 어머니
“캐릭터 잘 담아내는 ‘그릇’ 되고파”
“이미 굉장한 배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너무 특별하다.”
18일 밤,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의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연극 <혜경궁 홍씨>를 보고 난 독일 연출가 알렉시스 부커(40)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10대 소녀부터 80대 할머니까지 폭넓은 연령대를 소화한 주인공 김소희(43·연희단거리패 대표)씨에 대한 찬사였다.
공연 직후 분장실에서 숨을 고르고 있던 배우 김씨를 찾아갔다. 생글생글 웃으며 그는 “괜찮았나요?”라고 물었다.
“극 중간 몇 초 안에 배역을 바꿔야 하는데 가발을 썼다 벗었다 하는 게 전쟁이에요. 하지만 변신하는 것은 힘들지 않아요. <한중록>을 읽으면서 ‘인간이 살아남는다는 게 행복한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느꼈던 홍씨의 인고의 삶을 잘 보여줄 수 있을지 늘 고민해요.”
역사 속 혜경궁 홍씨를 배역으로 만나게 되면서 그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떠올렸다고 하다. “혜경궁 홍씨는 살아남았기 때문에 악몽 같은 시간이 계속 기억나고, 그것이 죄책감이 되고, 또 그러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위안하는, 그런 삶을 70년을 살아왔어요. 그리고 죽기 전에 자기 가문과 자기에 대한 소문과 억측을 밝혀서 명예 회복을 하겠다고 10년 넘게 글쓰기를 했어요. 그런 불굴의 의지를 어떻게 표현할까, 또 관객이 느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힘들어요.”
이윤택(61)씨가 대본을 쓰고 연출한 이 작품의 주인공 혜경궁 홍씨는 조선 영조의 며느리로,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의 부인이며 정조의 생모다. 그는 10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궁으로 들어와 81살까지 살다 생을 마감했다. 후세 사람들은 그를 비운의 여성으로 여기기도 하고 남편의 죽음을 방조한 냉혈 여성으로 보기도 한다. 이 연극은 혜경궁 홍씨가 역사의 희생양이었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낸 지어미이자 어머니였고 딸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정치적인 여자라고 하는데 그가 쓴 <한중록>을 찬찬히 읽어보면 너무 억측인 것 같아요. 그는 남편이 뒤주에 갇혀서 죽는 살벌한 궁중 안에서 아들을 보호하고 살아야 했습니다. 저는 그런 처세가 정치적이라고 느껴지기보다는 자식을 보호하려는 모성의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또 굉장히 현명한 여성이었어요. 남편 사도세자가 죽고 다시 궁으로 들어와서는 영조에게 세손(정조)을 맡기거든요. 그러니까 영조가 감동을 받아서 정조를 예쁘게 보았던 거죠.”
영조와 사도세자, 정조의 사이에서 끝까지 기록자로 살아남은 ‘불굴의 여성’이자 ‘불굴의 어머니’, 배우 김소희가 생각하는 혜경궁 홍씨의 진짜 모습이다.
연출가 이윤택씨는 김소희 배우를 자신의 ‘페르소나’라고 말한다. ‘가면’을 뜻하는 그리스어인 페르소나는 연출가의 분신 같은 배우를 가리킨다. 정작 본인은 “너무 영광이고도 부담스런 말씀”이라며 얼굴을 붉힌다.
“처음 연극을 할 때 의미 있는 연출가의 페르소나라고 할까, 그런 분신처럼 진짜 도구가 되고 싶었어요. ‘가난한 연극’을 주창한 폴란드 연출가 그로토프스키의 분신이었던 배우 리샤르트 치에실라크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운이 좋아서 이윤택 선생님께 연극을 배우게 되었어요. 이 선생님의 분신처럼 어떤 캐릭터라도 잘 담아내는 좋은 그릇이 되고 싶습니다.” 29일까지. 1688-5966.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