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빈 소년 합창단의 최초의 여성 지휘자 김보미씨. 그는 “합창에서 같은 가사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희열과 기쁨은 아주 특별하다”고 말했다. 크레디아 제공
빈소년합창단 첫 여성지휘자
새해 1월 내한…6개 도시 공연
새해 1월 내한…6개 도시 공연
“제가 즐겁게 지휘하고 아이들도 즐겁게 노래를 불러서 그 시너지 효과가 관객들에게 긍정적인 힘이 전달되었으면 좋겠어요. 음악을 들으면 아이들이 어떤 자세로 노래를 부르는지가 보이잖아요.”
국제전화선을 타고 오스트리아 빈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시원시원했다. 빈 소년 합창단을 이끌고 새해 1월18~1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시작해 구리, 고양, 대구, 김해, 여수 등 6개 도시에서 신년음악회를 펼치는 여성 지휘자 김보미(35)씨이다. 지난 주말 빈 자택에 머물고 있는 그를 국제전화로 미리 만났다.
그는 “저의 한국 데뷔 무대라 매우 기쁘지만 부담이 되어서 아이들과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며. “힘들고 어려운 여정 속에서도 음악이 좋아서 부르는 아이들의 눈빛과 마음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면 더 기쁜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9월에 빈 소년 합창단의 520 여년 역사상 최초로 여성 지휘자로 뽑혀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슈베르트와 하이든, 베토벤, 바그너, 리스트 등이 지휘봉을 잡았던 이 유서깊은 합창단에서 동양인 지휘자로도 그가 처음이다. 유럽에서도 인종이나 성별에 대한 차별이 가장 심한 오스트리아여서 더욱 예상 밖이다. 어떤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일까?
“왜 뽑혔느냐고 물어보면 딱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지휘자 오디션 과정이 우리나라처럼 실기시험과 면접을 봐서 뽑히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죠. 지난해 여름에 지휘자 오디션에 응모하고 며칠 후 합창단 대표이자 음악감독인 게랄트 비어트씨가 불렀습니다. 면접 보고 나서 그날 바로 짐을 챙겨서 아이들과 2주간 여름캠프에 다녀오라고 하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제가 지휘자가 될 준비가 되어있는지 살펴보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아이들과 함께 친하게 지내면서 정말 즐겁게 연습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 아이가 몰래 와서 ‘선생님이 3번째고, 여자로는 처음이다. 나는 선생님이 가장 잘 가르쳐주고 좋으니까 꼭 우리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고 귓속말로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여름캠프가 끝나고 9월에 음악감독이 다시 저를 불러서 또 다른 아이들과 1주일 정도 같이 생활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달 마지막 주에 모차르트반의 상임지휘자로 계약을 했어요.”
그는 “빈 소년 합창단의 지휘자 선정과정은 아주 치밀하고도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것 같다”고 그때를 회고했다.
강원도 속초가 고향인 그는 어린 시절 성당에서 오르간 연주와 합창 지휘를 하며 음악에 빠졌고 서울에서 고교 시절을 보내면서 음악가를 꿈꿨다. 하지만 그의 부모가 “직업 음악가로 사는 것은 힘들다”고 반대해 호텔경영학과에 진학해야 했다. 그는 “학교의 그룹사운드에서 연주도 해보고 음악활동을 했지만 오히려 그런 일들을 통해 내가 해야 할 일은 교회음악, 합창음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마침내 그는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1998년 연세대 음대에 들어가 교회음악을 전공한 뒤 독일의 레겐스부르크대학에 유학해 교회음악을 공부했다. 그 뒤 빈 국립음대 에어빈 오르트너 교수를 만나 합창지휘를 배웠고, 현재는 이 대학에서 그레고리안 성가 부문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2007년부터는 아르놀트 쇤베르크 합창단의 단원이자 오르트너 교수의 부지휘자로 활동했다.
빈 소년 합창단은 한해에 두 차례 오디션으로 변성기 이전인 10살 미만의 소년 100여명을 선발한다. 소년들은 오스트리아 정부가 제공하는 아우가르텐 궁전에서 엄격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합창단원으로 교육받는다. 소년들이 10살이 되면 모차르트반, 슈베르트반, 하이든반, 브루크너반 등 4개의 팀으로 나뉘어 전 세계를 돌며 300회가 넘는 공연을 소화한다. 김보미씨는 지난해 9월부터 모차르트반 상임지휘자로 취임해 올해 4월 말부터 6월 말까지 일본 전역을 돌며 37차례 연주회를 펼쳐 큰 호평을 받았다.
그와 빈 소년 합창단은 한국투어 연주회에서 모차르트의 칸타타 ‘무한한 우주의 창조주를 경배하는 너희’를 비롯해 중세 교회음악과 한국, 페루, 인도,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민요 등 각국의 음악을 들려줄 예정이다. “특히 작곡가 이영조 선생님이 편곡한 ‘아리랑’을 부르게 되어서 너무 감사하고 뿌듯하다”고 김씨는 말했다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공연을 하러 가니까 관객들이 얼마나 편할까요. 관객들이 빈 소년 합창단을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선생님의 나라에 간다고 굉장히 좋아해요. 불고기를 더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1577-5266.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사진 크레디아 제공
52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빈 소년 합창단의 최초의 여성 지휘자 김보미씨. 그는 “합창에서 같은 가사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희열과 기쁨은 아주 특별하다”고 말했다. 크레디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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