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오케스트라의 오랜 ‘금녀의 영역’이었던 지휘대에 오르는 여성 지휘자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성차별 논란은 여전하다. 사진은 마린 알솝. 사진 지휘자 공식누리집
[‘금녀의 벽’ 깬 여성 지휘자들]
안토니아 브리코·마린 알솝 등
세계 주요악단 이끌며 활약
성시연 경기필 상임지휘자 선임 등
국내서도 서서히 ‘유리 포디엄’ 깨져
클래식계의 성차별은 여전히 논란
알솝 “중요한 건 연주력뿐” 지적
안토니아 브리코·마린 알솝 등
세계 주요악단 이끌며 활약
성시연 경기필 상임지휘자 선임 등
국내서도 서서히 ‘유리 포디엄’ 깨져
클래식계의 성차별은 여전히 논란
알솝 “중요한 건 연주력뿐” 지적
지휘대 위에서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여성 지휘자의 모습이 더는 낯설지 않다. 오랜 시간 동안 ‘금녀의 영역’이었던 지휘대에 여성 지휘자가 하나둘 올라서더니, 이제 주요 악단의 수장 자리들에도 여성들이 올라서며 눈부신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다.
전세계적인 이러한 추세는 한국 지휘자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성시연(38)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는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예술단장 겸 상임지휘자로 선임됐다. 국내 클래식 음악 역사상 여성 지휘자가 국공립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것은 처음이다. 민간 오케스트라 중에서는 프라임 필의 전임지휘자 여자경(42)씨가 있다. 그런가 하면, 오스트리아를 거점으로 활동 중인 합창 지휘자 김보미(36)씨는 지난해 빈 소년 합창단 510여년 역사상 최초의 동양인, 최초의 여성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 지휘자 임용을 둘러싼 의견 충돌과 차별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 ‘유리 포디엄’을 깬 여성 지휘자들 여성 지휘자에 대한 차별을 의미하는 ‘유리 포디엄(지휘대)’. 겉으로는 남녀평등이 실현된 듯이 보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현실을 상징하는 ‘유리 천장’에 빗댄 말이다.
유리 포디엄에 처음 도전한 1세대 여성 지휘자로는, 여성 차별이 극심하던 1930년대 베를린 필과 뉴욕 필을 지휘하는 등 믿기 힘든 성취를 이룬 안토니아 브리코(1902~1989)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지휘자인 세라 콜드웰(1924~2006) 등이 있다.
오늘날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에서 유리 포디엄을 깨고 가장 높은 위치까지 올라간 여성 지휘자로는 단연 마린 알솝(58)이 손꼽힌다. 미국 뉴욕 태생인 마린 알솝은 현재 미국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과 브라질 상파울루 스테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 지휘자를 맡고 있다.
지난해에는 영국 최대 음악축제인 ‘비비시(BBC)프롬스’ 창립 118년 만에 폐막 공연의 지휘를 맡은 최초의 여성 지휘자가 되어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거침없는 성격의 마린 알솝은 당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은 대단히 영광스럽지만 이것이 2013년에야 실현됐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라고 대답했다.
입지를 굳힌 또다른 중견 여성 지휘자로는 오페라 지휘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시몬 영(53·함부르크 국립오페라 극장), 바로크 음악 및 모차르트, 하이든 작품 해석의 권위자인 영국의 제인 글로버(65), 핀란드 출신의 현대 음악 전문 지휘자 수산나 멜키(45) 등이 있다.
한편 미국의 클래식 라디오 방송 ‘WQXR’이 지난해 9월 선정한 ‘주목할 만한 5인의 여성 지휘자’에는 알론드라 데 라 파라(34), 스타마티아 카람피니(36), 제마 뉴(27)와 더불어 한국인 지휘자 성시연씨와 지난해 카타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장한나(32)씨가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 여전한 성차별 논란 여성 지휘자들의 무대 진출이 눈에 띄게 늘었지만 클래식계 일각의 성차별적인 분위기는 여전히 논란을 낳고 있다.
러시아 출신의 촉망받는 젊은 지휘자 바실리 페트렌코(38·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지난해 8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성 지휘자 비하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페트렌코는 “오케스트라는 남성 지휘자를 더 잘 따른다”며 “성적인 에너지가 적어야 음악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날 오슬로 필 누리집에 “러시아에서의 상황이 그렇다는 이야기였다”고 해명했지만 비난은 한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 파리음악원의 브루노 만토바니 원장 역시 “여성 지휘자들은 지속적인 연주와 비행 스케줄을 감당해내지 못한다”고 말해 지탄을 받았다.
이에 대해 여성 지휘자 마린 알솝은 “지휘봉은 전혀 무겁지 않으므로 초인적인 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관건은 뛰어난 연주력”이라고 응수했다. 또한 알솝은 “여성에게 최고 권력의 지휘권을 주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집단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빅 파이브’ 오케스트라에 여성 음악감독이 한 명도 없는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뉴욕 타임스>도 “지난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133년 역사상 세번째 여성 지휘자인 제인 글로버의 데뷔 무대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를 한 시간 이상 잘라낸, 별 볼 일 없는 휴일용 축약 버전이었다”고 극장 쪽의 여성 차별을 꼬집었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최근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오케스트라의 오랜 ‘금녀의 영역’이었던 지휘대에 오르는 여성 지휘자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성차별 논란은 여전하다. 사진은 성시연. 사진 지휘자 공식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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