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크게 인기를 끈 연극 <레드>. 신시컴퍼니 제공
화가 마크 로스코 이야기 ‘레드’
부패한 경찰 다룬 ‘스테디 레인’
미국서 흥행한 두 작품 공연중
부패한 경찰 다룬 ‘스테디 레인’
미국서 흥행한 두 작품 공연중
1959년 미국 뉴욕시 뒷골목의 낡은 체육관을 개조한 화가 마크 로스코의 작업실. 로스코와 젊은 조수 켄이 붉은 물감을 덧칠한 거대한 화폭 앞에서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다.
“난 니 심장을 멈추게 하려고 여기 있는 거야, 무슨 소린 줄 알아? 난 니가 생각하게 하려고 그림을 그린다고! 예쁜 그림이나 만들겠다고 여기 있는 게 아니라고!”
“선생님과 동료는 입체파와 초현실주의자들을 몰아내셨죠, 그리고 이제 선생님 차례가 되셨으니 그만 퇴장하세요, 왜냐면 팝아트가 추상적 표현주의를 몰아내 버렸거든요.”
두 사람은 잭슨 폴록과 앙리 마티스, 고흐, 고갱, 렘브란트 등 세계 미술사를 장식한 화가들의 이름과 야수파, 입체파, 팝아트 등 미술 사조들을 언급하며 맞붙는다. 지난 2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막을 올린 연극 <레드>(존 로건 작·김태훈 연출)의 한 장면이다.
같은 날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는 연극 <스테디 레인>(키스 허프 작·김광보 연출)이 국내 초연됐다. 어두운 조명 아래 미국 시카고의 두 경찰이 천박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ㅈ’, ‘ㅆ’이 빠지지 않는 욕설에 코카인과 헤로인, 모르핀, 매그넘 44, 갱, 사창가, 매매춘 여성, 포주, 인육 살인 등 끔찍한 단어가 난무하면서 극장은 순식간에 범죄현장으로 변한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건너온 연극 두 편이 새해 연극무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두 작품 모두 브로드웨이에서 화제를 뿌린 최신작이고, 남자 배우 둘만 등장하는 2인극이다. 소문난 연기파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와 속사포 같은 대사로 100분간 내내 관객을 긴장시키는 점도 닮았다.
한국 초연으로 선보이는 <스테디 레인>은 어둡고 음산한 ‘누아르’ 영화를 연상시키는 연극이다. 미국의 연쇄살인마 제프리 다머의 실화를 빌려와 부패한 경찰의 비루한 모습을 까발린다. 연극은 폭력적이고 마초적인 경찰 대니가 시카고 뒷골목의 성매매 여성과 관계를 맺다가 포주에게 위협을 당하면서 파멸해가는 과정을 그와 동료경찰 조이의 입으로 들려준다. 공연 내내 인종차별적 발언을 비롯해 욕설이 난무해 난처하기도 하지만 팽팽한 대화와 독백을 들으면서 전체 이야기의 퍼즐을 맞춰가는 재미가 있다.
<스테디 레인>은 2006년 시카고에서 초연되어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키며 공연 비평가들이 꼽은 ‘2007 연극 톱 10’에 선정되었다. 2009년에는 브로드웨이에서 할리우드 스타 휴 잭맨과 대니얼 크레이그의 출연으로 큰 인기를 모았고 그해 <타임>지가 선정한 ‘2009 연극 톱 2’에 올랐다. 또 공연을 보고 반한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서 영화 제작도 추진되고 있다. 시카고의 갖가지 인간 군상이 등장하는 풍부한 이야기와 박진감 넘치는 극 진행으로 눈과 귀가 쉴 틈이 없다. 29일까지. (02)744-4334.
<레드>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1903~1970)의 일화에 극적인 상상력을 입힌 지적인 작품이다. 극작가 존 로건은 로스코가 1958년 뉴욕 시그램 빌딩에 문을 여는 최고급 레스토랑 ‘포시즌’을 장식할 벽화를 의뢰받아 40여점의 연작을 완성했다가 갑자기 계약을 파기했던 사건에 의문을 품었다. 로건은 가상의 인물 ‘켄’을 마크 로스코의 조수로 등장시켜 두 사람의 지적인 논쟁을 통해 예술가로서의 삶과 고통, 구세대와 신세대의 가치관을 화두로 뽑아냈다. 무엇보다 로스코의 거대한 색면 추상화를 감상하면서 미술, 음악, 철학, 역사, 종교를 넘나드는 인문학적 대사가 매력적이다.
연극은 2009년 영국에서 초연되어 성공한 뒤 2010년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에 진출해 그해 토니상에서 연극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음향상, 무대디자인상 등 6개 부문을 휩쓸었다. 국내에선 2011년 초연 이후 2년 만의 앙코르 공연이다. 26일까지. (02)577-1987.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어둡고 음산한 ‘누아르’ 영화를 연상시키는 연극 <스테디 레인>. 노네임씨어터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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