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명작 <분노의 포도>
소극장 산울림, 고전문학 6편 선정
젊은 연출가가 재해석해 무대에
“고전에 쉽게 다가가기 위한 기획”
젊은 연출가가 재해석해 무대에
“고전에 쉽게 다가가기 위한 기획”
“차가운 바람이 이렇게 속삭이네/ 겨울이 오고 있어/ 들판 가득 핀 붉은 장미/ 하나 둘 꽃잎이 떨어지네/ 조금만 더디게 와 줄 수는 없을까/ 아기가 따뜻한 새 옷 입은 날/ 그때 와 줄 수는 없을까”
오랜 방랑과 굶주림 속에서 아기를 임신한 샤론 조드의 노래가 작은 극장 안에 울려 퍼진다. 어머니 조드가 샤론의 어깨를 감싸 안자, 한 여성 관객은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았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홍대 앞 소극장 산울림 무대에서 미국의 소설가 존 스타인벡(1902∼1968)의 고전 명작 <분노의 포도>(사진)가 연극으로 올려졌다.
미국 오클라호마에 살던 농민 톰 조드 가족이 거대한 모래 폭풍과 대자본의 횡포로 경작지를 잃고 낡은 트럭에 의지해 캘리포니아로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고단한 삶을 다룬 작품이다. 존 스타인벡이 1939년에 출간해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았고, 그해에 존 포드 감독과 헨리 폰다, 제인 다웰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극단 ‘걸판’은 1930년대 미국 농민과 노동자의 아메리칸 드림과 대공황기의 악몽을 그린 이 대작을 1시간40분짜리 연극으로 꾸몄다. 주말 연휴의 시작이고 작은 극장임에도 75석이 동나 보조석 10여개가 보태졌다.
회사원 조형준(45)씨는 “구체화되지 않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서로 착취하고 기만당하는 냉소와 무시를 적나라하게 잘 표현했다”며 “연극이라는 구체적인 매체를 통해 문학의 힘을 보여주는 기획의도가 신선하다”고 말했다.
소극장 산울림이 지난 4일부터 선보이고 있는 ‘산울림고전극장2014-소설, 무대로 보다’가 연극 마니아들의 입소문을 타고 있다. 널리 알려졌지만 제대로 읽어본 이는 드물다는 고전 문학을 연극으로 만드는 기획 프로그램이다. 촉망받는 30~40대 젊은 연출가 6인이 젊은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특징. 극단 ‘모도’의 전혜윤 연출가가 일본의 문호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의 소설 <설국>을 4~15일 첫 무대로 올렸고, 극단 걸판의 오세혁 연출가가 <분노의 포도>(18 ~26일)로 뒤를 잇고 있다.
산울림 극장장 임수진(51)씨는 “국가와 시대를 초월해서 읽을 가치가 있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는 고전을 좀 더 쉽고, 보다 감성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연극 무대에 올렸다”고 밝혔다.
이 기획 시리즈 공연은 2월5~16일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 쥘 르나르(1864~1910)의 <홍당무>(극단 청년단·연출 민새롬), 2월20일~3월9일 러시아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1899~1977)의 <롤리타>(극단 작은신화·연출 정승현), 3월14~23일 김동인(1900~1951)의 <단편선>(극단 양손프로젝트·연출 박지혜), 3월26일~4월6일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1867~1916)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극단 여행자·연출 이대웅)로 이어진다. (02)334-5915.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사진 소극장 산울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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