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공연 장면.
외고 l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공연 리뷰
강수진 감독 부임 뒤 첫 작품
진짜 색깔 드러낼 다음작 기대
강수진 감독 부임 뒤 첫 작품
진짜 색깔 드러낼 다음작 기대
국립발레단의 새 예술감독 강수진씨의 부임 뒤 첫 정기공연인 <라 바야데르>가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13일 막이 올랐다. 프랑스어로 ‘인도 무희’를 뜻하는 <라 바야데르>는 1877년 마리우스 프티파가 러시아 황실을 위해 안무한 작품으로 이슬람사원의 무희 니키아와 전사 솔로르, 솔로르의 약혼녀 감자티 공주, 니키아를 흠모한 제사장 브라만의 엇갈린 사랑과 비극적 결말을 다루고 있다. 1막 ‘사원’, 2막 ‘황실’에 이어 3막 ‘망령의 왕국’까지 극명하게 다른 3개의 장면과 이에 등장하는 120여명의 무용수, 200여벌의 의상, 막대한 세트는 <라 바야데르>를 블록버스터 발레라고 부를 만큼 화려하고 방대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특히 주인공 니키아의 죽음 뒤 흰 튀튀를 입은 무용수 32명이 등장하는 ‘망령의 왕국’ 장면은 발레 블랑(백색 발레)의 대표적 장면으로 꼽히기도 한다.
국립발레단은 <라 바야데르>를 김혜식 예술감독 시절인 1995년 마리나 콘드라체바(볼쇼이 안무가) 버전으로 공연한 뒤 18년 만인 지난해 유리 그리가로비치 버전을 야심차게 제작 발표하여 호평을 받았다. 이번 무대는 지난해 공연된 작품을 별다른 수정 없이 재연한 것으로 볼쇼이 발레의 전 감독이자 러시아발레의 중추적 인물인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자신의 버전(1991년 작)을 한국 국립발레단을 위해 새롭게 정비한 것이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의상과 무대 또한 이탈리아 디자이너 루이자 스피나텔 리가 맡아 국립발레단만을 위해 새롭게 디자인했다. 이러한 제작 시스템은 70~80년대 고 임성남 단장이 8㎜ 카메라로 찍어온 리허설을 자료삼아 공연하던 과거와 비교해 엄청난 발전을 보여주는 것이다. 외국의 전문 인력을 영입하는 국립발레단의 제작 전략이 최근 연속해서 성공작을 내고 있는 가운데 이제는 국립발레단만의 버전을 만들어내겠다는 욕심을 갖는 것도 당연한 시점이겠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세계적인 명작 그대로의 모습을 국립발레단을 통해 보고 싶은 욕심도 포기할 수 없다. 외국무대를 찾지 않아도 파리오페라 버전의 <지젤>, 볼쇼이 버전의 <백조의 호수>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발레관객의 저변확대를 위해서도 아직은 필요한 작업이다.
다행히 국립발레단의 이번 <라 바야데르>는 의상, 배경막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면, 특히 춤 구성에서 원작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라 바야데르>를 처음 보는 관객에게 충분히 권할 만한 공연이다. 발레 애호가들에게는 원전인 키로프(마린스키)버전의 고전적이고 화려한 무대와 달리 과감한 축소와 현대적 해석의 볼쇼이 버전이 어떤 매력을 갖는지 비교의 재미를 주는 무대이기도 하다. 다만 그라데이션을 넣은 무희 의상의 산만함이나 주역의 존재감을 흐린 솔로르의 톤 다운된 의상이 원전의 향수를 일으켰다는 점이 아쉽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라 바야데르>는 무용수들의 기량이 빛나는 공연이었다. 국립발레단의 대표 커플인 김지영(니키아)과 이동훈(솔로르)이 보여준 탁월한 파트너십과 연기력은 안정적으로 극을 이끌었고, 3막의 쉐이드들이 보여준 군무의 일체감과 기술적 완성도는 국립발레단의 꼬르드(군무)가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무용수들의 상향평준화는 국립발레단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말해주는 반가운 현상이다.
강수진 예술감독의 첫 공연 <라 바야데르>는 전임 감독시절 작품을 재공연한 것으로 사실상 그의 손을 많이 타지 않고 무대에 올려졌다. 그렇기 때문에 강수진씨의 리더로서의 잠재력은 아직 궁금증으로 남아있다. 스타급 무용수출신으로 받는 부담도 크겠지만 3년이라는 길지 않은 임기동안 그의 예술적 비전과 지도자로서의 역량, 기획력 등 많은 것을 보여주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국립발레단은 행정감독을 따로 두지 않기 때문에 예술감독이 작품과 행정 모두를 책임져야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행정보다는 예술가이기를 택했던 임성남 초대 단장과 뛰어난 행정가였던 최태지 전임 예술감독의 대조적 행보를 참고하여 강수진만의 방향성을 잡아야 할 것이다.
김예림 무용평론가
yelim110@naver.com
사진 국립발레단 제공
김예림 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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