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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푸틴을 사랑하는 게르기예프, 히틀러가 사랑한 바그너

등록 2014-04-06 20:36수정 2014-04-07 11:27

정치색으로 입길 오른 음악가들
음악가는 정치중립적이어야 할까. 아니면 거리낌 없이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도 될까. 음악을 통해 획득한 영향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개인의 권리로 인정받을 일인가, 권리 남용으로 지탄받을 일인가.

최근 세계 각지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 민중 시위 등에 대한 유명 음악가들의 공개 발언이나 행보가 적잖은 파장을 일으킴에 따라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논쟁도 커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로 알려진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 거장 발레리 게르기예프(61·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 지휘자 겸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극장 예술감독)는 최근 정치적 화제와 관련해 가장 빈번히 도마에 오른 인물이다. 게르기예프는 지난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 침공 및 합병에 대해 문화계 인사 19명과 함께 지지 성명을 발표하고 서방세계의 간섭을 비판하는 의견을 내 세간의 지탄을 받았다. 지난해 6월 푸틴이 제정한 반동성애법에 대해 여론이 들끓을 당시, 그는 마침 동성애자인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의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초연을 앞두고 있었다. 이 때문에 ‘공연을 동성애 인권에 헌정하라’는 청원이 그에게 쏟아졌지만, 그는 끝까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당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장이 나서서 “예술과 정치 논란을 결부시키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으나 게르기예프가 인권 유린에 암묵적으로 동조했다는 비난은 한동안 사그라지지 않았다.

러 출신 런던심포니 ‘게르기예프’
크림합병 지지선언해 비난 받아
헝가리 극우주의 날선 비판 ‘시프’
‘두다멜’은 여론 떠밀려 입장 내기도

음악가 정치참여 필요 의견 많지만
정치·음악 엮여선 안된다는 주장도

게르기예프는 자주 라트비아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67)와 비교된다. 이 무렵 ‘인권 수호자’로 유명한 크레머는 피살된 러시아 언론인 안나 폴릿콥스카야의 추모 연주회를 열어, 러시아 내부의 언론 탄압과 인권 유린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지난달 25일 내한했던 피아니스트 언드라시 시프(61)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발언을 서슴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는 2010년 집권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네오파시즘, 인종주의, 반유대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사회 전반에 팽배한 우경화에 강한 우려를 드러내왔다. 그는 2011년 헝가리 출신 지식인, 예술가들과 함께 정부에 공개 항의 서한을 보낸 이후로 극우주의자들로부터 “헝가리로 돌아오면 양손을 잘라버리겠다”는 협박에 시달렸다.

그런가 하면, 대중의 요구에 떠밀려 본의 아니게 정치적인 행동을 하게 된 경우도 있다. 지난 2월부터 베네수엘라에서 치안 불안정과 경제난 등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계속돼 3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가운데, 이 나라 출신의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33·엘에이필 음악감독)은 피아니스트 가브리엘라 몬테로로부터 정치적 행동을 촉구하는 공개 호소문을 전달받았다. 청소년 구제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의 창립자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와 두다멜에게,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독재에 맞서 탄압받는 국민들에게 힘을 실어달라고 부탁한 이 호소문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순식간에 확산됐다. 입장을 표명할 수밖에 없게 된 두다멜은 “음악과 우리 손에 든 악기를 걸고 폭력에 절대 반대하며 오직 평화를 지지한다”고 짧은 성명을 냈지만, 정부에 대한 구체적 비판을 삼가는 등 조심스런 자세를 보였다. 이후 그는 엘에이필 누리집에 게시한 글을 통해 베네수엘라 정부가 엘 시스테마의 존립을 위협하는 보복 조처를 취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드러냈다.

음악가들의 정치적 행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대중은 영향력 있는 음악가들이 중요한 정치·사회적 문제에 직접 힘을 보태주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음악가 역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지로서 정치적 문제로부터 초연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음악가들과 정치가 한데 엮이는 것을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음악 칼럼니스트 앤 미젯은 지난 3월15일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에서 “클래식 음악가들이 반듯하고 진실하며 옳은 편에 서야만 한다는 생각은 상상 속의 신화”라며 음악과 정치를 분리해 바라보지 않으면, 작곡가 바그너가 반유대주의자라는 것 때문에 그의 작품이 공연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흑백논리적 시각이 유도될 수 있음을 경계했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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