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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지적인 테너’는 어떻게 청중을 사로잡을까

등록 2014-04-10 19:39수정 2014-04-10 20:36

성악가 이언 보스트리지.
성악가 이언 보스트리지.
박사 출신 성악가 이언 보스트리지
19일 내한공연서 슈만 연가곡 선사
한 장의 음반이 때로는 인생의 항로를 통째로 바꾸는 마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오는 19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하이든홀)에서 독창회를 여는 영국 출신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50·사진)의 이야기다.

오늘날 세계 음악계에서 첫손에 꼽히는 테너이자 독일 가곡(리트) 해석의 권위자로 평가받는 보스트리지는 영국 최고 명문대학인 옥스퍼드대에서 26살에 17~18세기 과학철학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전도유망한 학자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박사 학위를 따자마자 학자의 꿈을 접고 성악가가 되기로 결심을 굳혔다. 음악을 향한 열정을 더는 억누르지 못한 것이다.

보스트리지의 가슴에 불씨를 댕긴 건 14살 때 독일어 수업 시간에 접한 바리톤 가수 디히트리 피셔디스카우(1925~2012)의 음반이었다. 당시 담당 교사는 학생들이 독일어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시를 가사로 한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을 들려줬다. 10대 소년 보스트리지는 그 음반을 듣고 벼락같은 정서적 충격을 받은 뒤 피셔디스카우의 음반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12년이 흘러 1990년, 그는 박사 과정을 마칠 무렵 문화예술 관련 방송 프로그램 ‘사우스뱅크 쇼’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자신의 우상 피셔디스카우를 인터뷰할 기회를 얻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으로 징집됐다가 연합군의 포로가 되어 이탈리아에서 수용소 생활을 했던 피셔디스카우의 인생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아마도 이 만남이 보스트리지가 성악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데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듬해 27살의 보스트리지는 박사 후 과정을 밟으며 모교 강단에 서는 동시에 늦깎이 성악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동료 성악가들보다 10년은 늦은 시작이었다.

그러나 보스트리지가 일으킨 돌풍은 대단했다. 음악의 바탕이 되는 문학과 그 이면의 철학 등 인문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 그의 연주는 단박에 청중과 평단을 매료시키고 음악계의 중심에 입성하게 하였다. ‘미성의 테너’나 ‘기교적인 테너’는 흔하지만, 그처럼 ‘지적인 테너’의 존재는 희귀했다. 그는 서른을 앞두고 연주자들에게 꿈의 무대라 불리는 런던 위그모어홀에서 데뷔해 극찬을 받았으며, 장기인 독일 가곡과 바로크 성악곡으로 세계 각지에서 가장 많은 초청을 받는 인기 가수 중 한 명이 됐다. 그는 요즘도 음악과 인문학을 엮은 강연을 열거나 음악 잡지에 칼럼을 쓰며 지적인 테너의 면모를 드러낸다. 2011년에는 <성악가의 노트>라는 제목으로 음악 작품 리뷰와 에세이를 담은 책도 냈다.

이번 내한공연에서 보스트리지가 들려줄 곡은 자신의 대표 레퍼토리인 슈만의 연가곡 <리더크라이스, 작품번호 24>와 <시인의 사랑, 작품번호 48>이다. 이 두 연가곡은 1998년 이엠아이(EMI)레이블에서 음반으로 발매됐는데, 슈만 탄생 200주년인 2010년 <뉴욕 타임스>가 뽑은 최고의 슈만 음반 중 하나로 선정됐다. 음반으로 접하는 보스트리지의 슈만 가곡은 성대를 떠는 비브라토를 극도로 자제해 울림이 투명하고 가사 전달력이 뛰어나다. 속도, 셈여림, 호흡 등의 미묘한 변화로 가사의 뉘앙스를 표현해내는 솜씨가 놀랍다. 공연을 관람할 이들은 미리 연주곡 해설집에 수록된 하이네 시의 번역본을 음미해보면 연주의 감흥을 높이는 데에 한층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공연이 열릴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은 성악 연주에서 특히 좋은 울림을 내는 곳이다. 지난 2008년 같은 곳에서 열린 슈베르트의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독창회는 공연장이 ‘제2의 연주자’라 불릴 만큼 중요함을 보여줬다. 보스트리지 역시 “따뜻한 음향을 가진 홀이라 노래하기 편안하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사진 고양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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