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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40여일의 출퇴근 작업…40년 기억을 호출하다

등록 2014-04-16 19:31수정 2014-04-16 19:31

부부작가 뮌의 ‘기억극장’ 전.
부부작가 뮌의 ‘기억극장’ 전.
부부작가 뮌 ‘기억극장’ 전
수십일간 작업실·전시장 오가며
순간 떠오르는 영상, 작품으로
전쟁·일상 등 ‘기억의 조각’ 투사
미디어아트로 기억의 왜곡 표현
올해 상반기 수작으로 꼽혀
“매일 출퇴근해야겠어!”

독일 유학중 만난 42살 동갑나기 부부작가는 죽이 딱 맞았다. 지난 2월초, 작가그룹 ‘뮌’(최문선, 김민선)은 개인전을 치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전시공간 스페이스 씨(코리아나 미술관)를 찾았다. 지하 1, 2층 90평 넘는 전시장을 보자 단박에 ‘감’이 왔다. 아예 거기 눌러앉아 생각이 움직이는대로 출품작들을 만들어보자는 것. 그로부터 40여일간 경기 파주 작업실에서 강남 전시장을 시계추처럼 오가는 준비작업이 시작됐다.

일주일 남짓한 기간에 허겁지겁 작품을 들여놓는 기존 관행과는 한참 달랐다. 전시장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뚝딱뚝딱 걸고 손수 조립한 설치·영상들은 인간의 기억을 눈에 잡히는 덩어리로 만드는 작업들. “유행 장르나 재료에 생각이 끌려다니는 건 정말 싫다”는 뚝심으로 밀고나갔다. 요즘 필수라는 전시 홍보전략도 접었다. “50장 넘는 작품도면에 순간순간 떠오르는 연상들을 접붙여 조형물, 영상, 그림 등을 만들고 이리저리 뗐다 붙였다하는 과정이 이어졌다”고 김민선씨는 말했다.

부부작가 ‘뮌’의 최문선(왼쪽), 김민선(오른쪽)씨.
부부작가 ‘뮌’의 최문선(왼쪽), 김민선(오른쪽)씨.
이 출퇴근 작업의 열매가 스페이스 씨에서 지난달 개막한 뮌의 개인전 ‘기억극장’이다. 전시장에서 기억을 떠올리며 빚어낸 인간 기억의 실체를 보여주려한 이 전시는 올 상반기 작가전 중 도드라진 수작으로 꼽힌다. 기억의 본질 찾기라는 콘텐츠와 뮌이 이전부터 작업해온 ‘극장’이란 형식이 살을 섞었다. 설치, 영상,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했을 뿐 아니라 기억에 얽힌 방대한 인문역사를 수년간 추적해온 작가의 탐구력을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다.

프로이드가 설파했듯이, 기억은 우리 삶을 이끄는 끌차지만 우연한 체험, 권력 등이 작용해 숱하게 변질되는 불안과 혼돈의 뿌리이기도 하다. 지하 2층의 대표작인 ‘오디토리움’(큰 사진)이 이런 기억의 속성을 정교한 장치들로 투사한다. 뿌연 아크릴판을 두른 다섯개의 책장 모양 조형물이 반원형 극장 얼개로 관객을 맞는다. 희미한 불빛 아래 책장 속에 있는 기기묘묘한 물건들, 철조망에 갇힌 자유의 여신상, 탱크, 다리 위 동물, 화투짝 등은 아크릴판과 전시장벽에 크고 작은 그림자를 빚으며 요동친다. 소우주 같은 인간의 심연과 전쟁, 일상 등에 얽힌 기억의 조각들이다. 16세기 서구에서 우주의 비밀을 체험하는 장소로 유행하며 박물관의 시원이 된 ‘기억극장’을 재해석했다는 설명이 흥미롭다.

전시는 더 나아가 기억을 왜곡, 변질시키는 여러 갈래 요소들도 이리저리 뜯어본다. <세트>에서 그들은 수년전 미국 체류 시절 영상으로 찍은 숲과 집의 전원 풍경들을 야광안료로 재현했다. 그 화폭 위에 다시 그 영상을 투사했다가 갑자기 암전시키면 제각기 다른 이미지들로 겹쳐보이게 된다. 기억이 중첩돼 일으키는 왜곡을 눈으로 실감하게 하는 셈이다. 눈 깜박거리는 인형 영상을 세겹의 커튼이 가렸다 열렸다하며 보여주는 설치영상 <커튼 콜>은 어린시절 가난으로 인형을 사지못했던 김민선 작가의 기억 속 상처를 담았다. 뉴욕거리의 네온사인 속에 외면당하는 동상들의 숨쉬는 착시 영상인 <동상>은 사회적 기억과 소외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어둔 방에 연기 피어오르는 텅빈 링을 놓은 <앙상블>은 영화 <성난황소>의 인생 패배자(로버트 드니로)의 독백과 겹치며 또다른 링인 우리네 인생 속 몰입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뮌의 신작은 장르적으로 작가의 아이디어 자체를 작품화하는 개념미술에 미디어아트의 영상과 설치를 결합시킨 것들이 많다. 그러나 장르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들의 화두를 중심으로 매체들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사유의 힘이 넘친다. 김성희 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는 “서사에만 쏠려 영화와 큰 차이가 없는 국내 미디어아트 작가들의 타성을 벗어났다. 진솔한 메시지를 높은 완성도로 보여주었다”고 평했다. 5월31일까지. (02)547-1985.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제공 스페이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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