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철종 씨의 1인극.
‘한평극장’ 1인 예술가 심철종
머리카락 없는 이마에는 힘줄이 툭 불거졌고, 치켜올라간 눈썹 아래 쌍꺼풀이 무척 두텁다. 분장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연극적이다. 하지만 웃으면 금방 ‘하회탈’이 돼버린다. 그의 외모는 충분히 연극적이지만 그가 오르는 무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연극적이지 않다.
대형공연장 서울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위치한 자그마한 오피스텔 부엌 3.3㎡. 심철종(54)씨의 ‘세상에서 제일 작은 한 평 극장’ 무대다. ‘한 평 극장’은 일상과 예술의 경계에 서 있다. 생활인 심철종은 이 한 평짜리 부엌에서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설거지를 한다. 하지만 저녁이면 바로 그곳에서 ‘배우 심철종’으로 변신한다.
7일 저녁 8시 오피스텔 부엌 무대에 배우 1명이 섰다. 관객 2명과 기자 1명이 숨을 죽였다. 불이 꺼졌다. ‘1인 예술’의 막이 올랐다.
공연장 대신 오피스텔서 1인극
낮에는 일상공간…밤에는 극장
연출·연기 병행 ‘34년 내공’으로
작가·조명·음향 등 혼자 해결해
간경화 투병하며 한평극장 시작
입소문 듣고 찾아온 30대 관객
“이 연극은 나 자신을 보게 한다”
연극의 제목은 햄릿의 대사에서 따온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다. 덴마크 왕자 햄릿은 궁정의 화려한 옷을 입었겠지만 심씨는 ‘이 시대의 인민복’인 캐주얼 차림이다. 인민복을 입은 이 배우는 왜 2012년 5월부터 ‘한 평 극장’ 무대에 오르게 됐을까.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를 쓰면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아지다 보니 스트레스가 커지잖아요.”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우리나라 연극배우는 육십살이 넘으면 돈을 못 버니까 불우해지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혼자 연극을 해서 조금이라도 벌면, 최소한 노후보장은 되는 거잖아요.” 한 평 극장에서 올리는 ‘1인 예술’은 어떤 것일까. 보통 극단은 극장 관리, 매표, 홍보는 물론 극작가, 연출, 조명, 음향, 연기자들까지 다양한 인물들로 구성된다. 보통 ‘1인극’이라 하더라도 뒤에서 도와주는 스태프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심씨는 이 모든 것을 혼자 한다. 1981년 배우 생활을 시작한 심씨는 행위예술가, 연출가 등을 병행하면서 34년째 연극무대를 지키고 있다. 1인 예술을 할 수 있는 밑바탕이 든든하단 얘기다. 일상과 예술의 경계에 선 ‘한 평 극장’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기도 하다. 2004년 극단 ‘씨어터 제로’를 운영하며 술과 무슨 원수가 졌는지 하루 소주 일곱 병을 주야장천 마시다 보니 2009년 간경화가 왔다. 의사가 짧게는 두 달, 길게는 2년까지 살 수 있다고 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지만 완치는 꿈도 못 꾼다. 얼마 전에도 식도의 힘줄이 터지고 피가 멎지 않았다. 간에 복수가 차서 지속적으로 약을 먹어야 한다. 말하자면, 팔베개를 하고 옆자리에 누운 죽음과 함께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배우 심철종에게 ‘한 평 극장’은 출소 기약이 없는 종신형의 감옥인 셈이다. 결국 ‘죽음에 이르는 병’의 경험이 ‘죽느냐 사느냐’라는 햄릿의 독백을 주제로 삼게 된 이유다. 사실 그와 햄릿의 인연은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질기다. “제가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번민하는 햄릿 역만 한 20년 했어요. 하지만 저는 햄릿에서 극적 갈등구조에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 햄릿이라는 인물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현실적 갈등을 더 고민합니다.” 햄릿과의 첫번째 인연은 1993년 독일 극작가 하이너 뮐러의 <햄릿 머신>(채승훈 연출)에 출연한 것이다.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다. 배우 10여명을 포함해 13~14명의 단원이 2000년대부터 일본을 거쳐 유럽으로 공연하러 다녔다. 20년 가까이 공연을 하다 재작년에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막을 내렸다. 지난해 7월에는 거창국제연극제 개막작으로 ‘100인의 햄릿’의 연출을 맡아 무대에 올렸다. 이날 공연에서는 먼저 치매에 걸린 노모를 통해 잊혔던 기억을 찾아 나섰다. 픽션과 논픽션을 아울러 삶의 근원적 굴레와 맞닥뜨리겠다는 시도다. 이어 인생, 사랑, 죽음, 죽음 이후를 차례로 곱씹어 봤다. 이날 두 명의 관객 중 한 사람인 박준범(36)씨는 “다른 연극을 많이 봤지만, 이 연극은 자기 자신의 생각을 하게 해요. 캐릭터에 빠지는 게 아니라 저 자신에게 빠지는 거죠”라고 관람 소감을 밝혔다. 그는 문학과지성사를 패러디한 문학과죄송사에서 <우주는 잔인하다>는 시집을 내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한 평 극장’에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40~50대 여성이 주관객으로 최대 25명이 볼 수 있고 관람료는 2만원이다. 월~목 저녁 8시 공연. (02)338-9240.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심철종씨 제공
공연장 대신 오피스텔서 1인극
낮에는 일상공간…밤에는 극장
연출·연기 병행 ‘34년 내공’으로
작가·조명·음향 등 혼자 해결해
간경화 투병하며 한평극장 시작
입소문 듣고 찾아온 30대 관객
“이 연극은 나 자신을 보게 한다”
연극의 제목은 햄릿의 대사에서 따온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다. 덴마크 왕자 햄릿은 궁정의 화려한 옷을 입었겠지만 심씨는 ‘이 시대의 인민복’인 캐주얼 차림이다. 인민복을 입은 이 배우는 왜 2012년 5월부터 ‘한 평 극장’ 무대에 오르게 됐을까.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를 쓰면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아지다 보니 스트레스가 커지잖아요.”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우리나라 연극배우는 육십살이 넘으면 돈을 못 버니까 불우해지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혼자 연극을 해서 조금이라도 벌면, 최소한 노후보장은 되는 거잖아요.” 한 평 극장에서 올리는 ‘1인 예술’은 어떤 것일까. 보통 극단은 극장 관리, 매표, 홍보는 물론 극작가, 연출, 조명, 음향, 연기자들까지 다양한 인물들로 구성된다. 보통 ‘1인극’이라 하더라도 뒤에서 도와주는 스태프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심씨는 이 모든 것을 혼자 한다. 1981년 배우 생활을 시작한 심씨는 행위예술가, 연출가 등을 병행하면서 34년째 연극무대를 지키고 있다. 1인 예술을 할 수 있는 밑바탕이 든든하단 얘기다. 일상과 예술의 경계에 선 ‘한 평 극장’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기도 하다. 2004년 극단 ‘씨어터 제로’를 운영하며 술과 무슨 원수가 졌는지 하루 소주 일곱 병을 주야장천 마시다 보니 2009년 간경화가 왔다. 의사가 짧게는 두 달, 길게는 2년까지 살 수 있다고 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지만 완치는 꿈도 못 꾼다. 얼마 전에도 식도의 힘줄이 터지고 피가 멎지 않았다. 간에 복수가 차서 지속적으로 약을 먹어야 한다. 말하자면, 팔베개를 하고 옆자리에 누운 죽음과 함께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배우 심철종에게 ‘한 평 극장’은 출소 기약이 없는 종신형의 감옥인 셈이다. 결국 ‘죽음에 이르는 병’의 경험이 ‘죽느냐 사느냐’라는 햄릿의 독백을 주제로 삼게 된 이유다. 사실 그와 햄릿의 인연은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질기다. “제가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번민하는 햄릿 역만 한 20년 했어요. 하지만 저는 햄릿에서 극적 갈등구조에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 햄릿이라는 인물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현실적 갈등을 더 고민합니다.” 햄릿과의 첫번째 인연은 1993년 독일 극작가 하이너 뮐러의 <햄릿 머신>(채승훈 연출)에 출연한 것이다.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다. 배우 10여명을 포함해 13~14명의 단원이 2000년대부터 일본을 거쳐 유럽으로 공연하러 다녔다. 20년 가까이 공연을 하다 재작년에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막을 내렸다. 지난해 7월에는 거창국제연극제 개막작으로 ‘100인의 햄릿’의 연출을 맡아 무대에 올렸다. 이날 공연에서는 먼저 치매에 걸린 노모를 통해 잊혔던 기억을 찾아 나섰다. 픽션과 논픽션을 아울러 삶의 근원적 굴레와 맞닥뜨리겠다는 시도다. 이어 인생, 사랑, 죽음, 죽음 이후를 차례로 곱씹어 봤다. 이날 두 명의 관객 중 한 사람인 박준범(36)씨는 “다른 연극을 많이 봤지만, 이 연극은 자기 자신의 생각을 하게 해요. 캐릭터에 빠지는 게 아니라 저 자신에게 빠지는 거죠”라고 관람 소감을 밝혔다. 그는 문학과지성사를 패러디한 문학과죄송사에서 <우주는 잔인하다>는 시집을 내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한 평 극장’에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40~50대 여성이 주관객으로 최대 25명이 볼 수 있고 관람료는 2만원이다. 월~목 저녁 8시 공연. (02)338-9240.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심철종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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