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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마루·창호지와 협연 100년 고택을 휘감다

등록 2014-04-21 19:28

원장현 대금산조 명인이 지난 16일 남산골한옥마을 민씨 가옥에서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관객을 두고 공연하고 있다. 남산골한옥마을 제공
원장현 대금산조 명인이 지난 16일 남산골한옥마을 민씨 가옥에서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관객을 두고 공연하고 있다. 남산골한옥마을 제공
‘예인, 한옥에 들다’ 공연

원장현 명인 등 6명의 국악인
음향기기 없이 ‘한옥 울림’으로
대금·거문고·아쟁 등 전통연주
“한옥은 청중과 호흡하는 공간”
원장현 명인의 젓대(대금)가 떨었다. 중저음은 마루를 타고 깔렸고, 계면조의 고음은 기와지붕을 타고 올라 밤하늘에 귀곡성으로 걸렸다. 봄밤 대금산조 가락이 100년을 훌쩍 넘은 고택을 휘감았다. 원 명인과 관객은 발을 뻗으면 맞닿을 거리. 서로 들숨과 날숨을 주고받았다. 한옥의 마루는 울림통이다. 관객은 악기 소리를 들으며, 한편으로 마루를 통과한 소리도 듣는다. 소리가 한옥을 울리고, 한옥을 통과한 소리가 다시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남산골한옥마을 민씨 가옥에서 열린 ‘예인, 한옥에 들다’ 공연은 16일 원장현 명인을 시작으로 25일까지 김일구, 김광숙, 이재화, 김호성, 정회천 등 국악계의 여섯 명인과 만난다. 1895년께 지은 고택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은 조선시대 한옥에서 즐기던 우리 음악 문화 ‘풍류방’의 정취를 재현한 것이다. 전통 한옥의 울림을 그대로 살려 현대 음향기기를 전혀 쓰지 않고, 공간이 담아낼 수 있는 최적의 인원인 60명으로 정원을 제한해 예인들의 숨결까지 그대로 느끼게 했다.

전통 한옥에서는 어떻게 음악을 들었을까. 다음은 황병기 선생이 서정주 시인한테 들은 얘기. “한국음악을 듣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가야금, 거문고 같은 한국 악기들은 울림구멍이 아래에 있다. 한국 악기들의 소리는 밑바닥으로 나와서 마루에 부딪혀서 문으로 가는 소리다. 문에 발린 창호지가 소리의 반은 방 안에 두고 나머지는 밖으로 내보내기 때문에, 한국음악은 방 안에서 들어도 좋고 마당에서 들어도 좋은 음악이다.”

이날 원 명인의 대금 소리는 창호지에 부딪히거나 통과하고, 거문고는 마루를 통과해 둔중하게 울렸다. 방석을 빼면 엉덩이로 음악을 듣는 느낌이다. 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산조 이수자이기도 한 원 명인이 거문고산조를 탈 때, 관객도 무릎 위에서 가상의 여섯 줄 거문고를 탔다. 거문고는 띵, 띠, 띵! 장고는 허이, 쿵, 딱! 관객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들기도 했다.

건축사 조인숙씨는 이번 공연에 대해 “적당히 막히고 적당히 열린 한옥의 대청은 연주자의 마음까지도 세세히 읽을 수 있다. 낮은 음역이나 깊고 신비로운 저음, 대청이 울리는 화창한 고음, 맑은 음빛깔, 깊고 웅장한 음색이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으로 가면서 청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무한한 공간이다. 또한 마당을 향해 열려 자연과도 소통하는 공간이다”라고 설명했다.

한옥이 자연과 소통하듯, 예인도 자연과 소통한다. ‘한옥에 든 예인’ 원장현 대금 명인은 대나무의 고장, 전남 담양 출신이다. 대나무밭에서 태어나 죽순과 대통밥을 먹고 평생 대나무로 만든 대금과 동고동락했으니 ‘그를 키운 건 팔 할이 대나무’다. 스승 한일섭 선생으로부터 대금을 배운 원 명인은 30대 중반에 이미 원장현류 대금산조를 만들었다.

“원장현류 대금산조에는 저음에서부터 고음까지 고르게 담겨 있어요. 저음을 이용해서 중후한 맛을 내고, 귀곡성 같은 애절한 계면성음을 잘 낼 수밖에 없는 건 어린 시절부터 듣고 자라면서 힘들게 살아온 삶이 내 음악 속에 다 표현이 된 거예요.” 원 명인은 자신의 삶이 녹아 있는 대금산조를 이렇게 표현했다.

국악계 여섯 명인의 ‘오늘의 예인’ 공연은 16일 원장현, 17일 김일구(아쟁산조), 18일 김광숙(서도소리)에 이어 23일 이재화(거문고산조), 24일 김호성(시조가사), 25일 정회천(가야금산조)이 이어진다. ‘오늘의 예인’ 6명의 공연에 이어 5월14일~6월20일 국악의 내일을 책임질 신진예술가 18명의 ‘내일의 예인’ 독주공연도 이어진다. (02)2261-0502.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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