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에르메스상 수상전 때 선보였던 설치작업 ‘당신의 밝은 미래’
요절 작가 박이소 10주기전
압축성장에 대한 냉소 담긴
회화·설치미술 40여점 배치
압축성장에 대한 냉소 담긴
회화·설치미술 40여점 배치
2004년 4월26일 새벽 46살의 작가 박이소는 서울 청담동 작업실 소파에서 쓸쓸히 숨졌다. 사인은 심장마비. 곁 탁자에는 즐겨 듣던 재즈 음반과 포도주가 놓여 있었다. 미술계에 부고가 알려진 건 장례식 한달여가 지난 즈음이었다. 한국 미술판에 그가 미친 발자취와 대비되는 아이러니한 죽음이었다. 1990년대 중반 국내에 다문화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을 본격 소개한 이론가, 한국의 압축성장에 대한 특유의 냉소적 시선이 담긴 헐렁한 회화·설치작업으로 젊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멘토가 바로 박이소였기에.
그의 작업실은 진작 헐렸다. 사후 10년 사이 로댕갤러리와 아트선재센터에서 회고전이 진행됐지만, 고인에 대한 미술계의 평가작업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박이소 10주기전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한 어떤 것’이 열리고 있는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의 전시장 풍경 또한 착잡한 감회로 다가온다. 고인을 스승 삼았던 김선정 기획자가 초창기 유학 시절 작품과, 2003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에 출품했던 설치 작품을 비롯해 회화, 조각, 비디오 등 40여점을 1, 2층 공간에 차려놓았다. 미국 뉴욕에서 박모라는 가명으로 대안공간을 운영하며 정체성을 고민했던 80~90년대와, 박이소로 개명하고 귀국해 교수와 기획자, 작가로 활동했던 2000년대 이후로 작업 시기를 갈라 작품들을 배치했다.
2002년 에르메스상 수상전 때 선보였던 설치작업 ‘당신의 밝은 미래’(사진)가 눈에 들어온다. 스테인리스 판 위에 구멍 다섯개를 도려내고 마분지를 채워넣어 ‘오공계’(五空界)라고 명명한 작업과 함께 박이소만의 시선을 전해주는 작품들이다. 한국인들이 지난 시절 열광했던 성장의 과실들이 실은 부질없고 부실한 욕망 덩어리였음을 허름한 몸 작업의 흔적으로 드러냈던 이 ‘명작’ 앞에서 2000년대 초 청년 작가들은 열광했다. 아트선재센터 옥상에서 하릴없이 쳐다보게 되는 허공의 이미지를 담은 설치영상 또한 냉소와 회의로 점철된 90년대식 시선을 간파한 결과물이다. 전시를 맞아 작가의 드로잉집과 유고집이 다음달 출간될 예정이다. 6월1일까지. (02)733-8945. 노형석 기자, 사진 아트선재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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