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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하얀기타는 애달프게 흐느꼈다

등록 2014-04-28 19:24

기타 거장 ‘제프 벡’. 사진 프라이빗커브 제공
기타 거장 ‘제프 벡’. 사진 프라이빗커브 제공
기타 거장 ‘제프 벡’ 내한공연

세월호 애도 노란리본 달아
보컬 없이 연주곡으로만 채워
“제 음악이 위안주고 희망되길”
제프 벡(70)은 검은 옷에 노란 리본을 달고 있었다. 에릭 클랩턴, 지미 페이지와 함께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 야드버즈가 낳은 3명의 거장 기타리스트 중 하나로 명성이 높은 그다. 27일 저녁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내한공연을 했다. 2010년 첫 내한공연 이후 두번째다.

“비극적인 참사가 낳은 수많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제 음악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남은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제프 벡이 나오자마자 아무 말 없이 네 곡을 잇따라 연주한 뒤 무대에서 한 첫 멘트였다. 그러고는 함께 무대에 오른 기타리스트 니콜라스 마이어와 ‘피플 겟 레디’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미국 가스펠 그룹 임프레션스의 발표곡으로, 제프 벡은 자신의 앨범에서 로드 스튜어트(보컬)와 함께 리메이크했다. 이날 무대에선 보컬 없이 두 대의 기타만으로 연주했지만, 어떤 노래보다도 깊은 울림과 위안이 담겨 있었다.

그는 아일랜드 민요 ‘대니 보이’처럼 잔잔하고 애절한 곡뿐 아니라, 일흔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곡도 연주했다. 거의 매 곡 기타를 바꿔가며 조금씩 다른 톤의 기타 소리를 들려줬다.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가 유명 기타제조사인 펜더의 흰색 일렉트릭 기타라는 점. 특히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하얀 스트라토캐스터 모델을 즐겨 쳤다.

제프 벡은 연주자들이 보통 사용하는 피크 대신 엄지손가락으로 줄을 튕겼다. 나머지 손가락으로 기타 몸체에 달린, 음정을 조정하는 트레몰로 암과 음량을 조절하는 볼륨 노브를 만지며 미세한 음의 변주를 이어가기 위해서다. 그는 기타의 여러 부위를 마치 입안의 혀처럼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특유의 몽환적인 소리를 만들어냈다.

‘에인절’을 연주할 때는 왼손 중지에 유리관(보틀넥)을 끼고 지판 위를 미끄러지는 슬라이드 주법을 주로 썼다. 그러다 갑자기 유리관을 오른손으로 집어 기타 줄을 튕기는 부위에 붙어 있는 기폭장치(픽업) 부근 줄을 건드리니 맑고 투명한 고음이 터져나왔다. 왼손으로 지판을 짚지 않았는데도 줄을 건드리는 유리관의 움직임에 따라 음이 계속 변했다. 그런 방식의 연주법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관객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앙코르 무대 마지막을 장식한 곡은 한국인이 특히 사랑하는 ‘코즈 위브 엔디드 애즈 러버스’였다. 스티비 원더가 한때 부인이었던 가수 시리타에게 만들어준 곡을 제프 벡이 연주곡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흐느끼는 듯한 기타 소리가 흐르자 사람들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숨죽인 채 애달픈 연주에 몰입했다. 맨 처음처럼 다시 흐느끼는 듯한 기타 소리로 마무리되는 순간, 공연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고요했다. 관객들은 각자 속으로 흐느끼고 있는 듯했다. 세월호의 아픔은 그렇게 표출되고 보듬어지고 있었다.

서정민 기자, 사진 프라이빗커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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