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작가의 <친숙한 풍경>. 사진 한미사진미술관 제공
중앙대 사진학과 출신 작가 8명
20세기초 한국 사진가에 ‘오마주’
2년 준비해 ‘뉴 제너레이션’ 전시
20세기초 한국 사진가에 ‘오마주’
2년 준비해 ‘뉴 제너레이션’ 전시
루이 다게르의 사진 발명이 프랑스에서 공포된지 45년 뒤인 1884년, 이땅에서 사진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해 ‘통리외무아문’의 말단 외교관이었던 지운영(1852~1935)은 서울 종로에 촬영국(사진관)을 처음 세웠다. 그 몇해 전 사절단의 일원으로 갔던 일본에서 어깨너머 배운 촬영술을 밑천 삼은 것이었다. 그러나, 곧 일어난 갑신정변 때 ‘왜놈집’으로 오인받아 군중의 손에 산산이 부서지는 비극을 맞는다.
13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사진가들은 ‘조상’을 기리지 않는다. 아니, ‘한국 사진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좀더 가까울 수 있다. 사진사는 사진의 역사를 뜻하는 말이자, 사진 찍기를 예술 아닌 생업으로 삼는 생활인들을 일컫는 말도 된다. 국내 사진계에서 ‘사진사’란 말에 담긴 두 의미는 비하 혹은 폄하의 시선에 머무른다.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까지 사진관 사진사 출신들이 우리 사진사를 이끌어온 탓이다. 70~80년대 등장한 모더니즘 예술가로서의 사진가들과 비교할 때 격이 한참 떨어지며, 그래서 외면하고 싶다는 인식이 은연중에 깔려있다. 관제 사진과 살롱의 아마추어 예술사진 사이에서 가시밭길 헤쳐온 근대 사진가들의 고투를 애써 기억하는 이들을 찾기 어려운 게 지금 사진계의 현실이기도 하다.
국내 사진계 학맥으로 첫손 꼽히는 중앙대 사진학과 출신의 젊은 작가들 8명이 몰역사적인 사진계 분위기에 틈새를 내는 작업들을 최근 내걸었다. 천경우 사진학과 교수와 학부, 대학원 출신 제자들이 2년여 준비 끝에 만든 ‘뉴 제너레이션-시작’ 전이다. 전시장이 국내 대표적인 사진전문공간인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이 외국 대가, 원로 작가 중심의 전시만 주로 해왔다는 전례를 감안하면, 나름 파격적인 개방이랄까. 이 전시의 취지인, 한국 사진사의 뿌리에서 신세대 작가들의 영감을 끌어내보자는 오마주 기획에 미술관이 공명한 결과물이다.
참여작가는 바른, 정지현, 정영돈, 유영진, 성보라, 김형식, 김태중, 김찬규씨다. 이들은 민충식, 서순삼, 신낙균, 신칠현, 임응식, 정해창, 현일영 등 20세기초 근대 사진 1세대 작가 8명 가운데 각각 1명을 골라 그들의 옛 작품을 검토하고 새 사진 작업의 영감을 주는 본보기로 삼았다. 미술관 19층 중앙 전시실의 ‘프로젝트호매지네이션(Homagination)’에 이런 오마주 작업들이 나란히 나왔다. 일제강점기 처음 정식사진학교를 졸업한 신낙균의 ‘무희 최승희’ 사진 속 드레스를 설치작업처럼 재현한 김찬규씨의 <춤추는 여인>, 국내 예술사진전의 시조인 정해창의 사진 정물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김태중씨의 <리무빙> 등이 눈에 띈다.
일부 작업은 선대작가들의 삶에 대한 충실한 검토가 있었는지 의문도 일으키지만, 과거와 호흡하려는 패기 자체는 평가할만하다. 그 안쪽 전시실에 차려진 개인작업들중에서는 되풀이해 찍은 서울 북촌의 밤 산책길 풍경을 화면에 겹쳐진 낯선 이미지로 변주한 바른 작가의 <친숙한 풍경> 연작 등이 주목된다. 뒤셀도르프 아카데미 같은 서구 명문 사진학교의 전통을 한국에서도 쌓겠다는 욕망이 전시엔 배어있다. 하지만, 일관된 작품의 스타일이나 문제의식이 보이지 않는다는 한계와 특정 학교 중심 전시에 대한 사진계의 마뜩치않은 시선 또한 존재한다. 사진평론가 최봉림씨는 “2000년대 이후 사진 장르 전공의 신예작가들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시도로 보이지만, 연령대·출신교 등 참여작가의 폭이나 기획의 시야를 좀더 넓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6월21일까지. (02)418-1315.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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