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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돌팔매 맞다 다이아몬드가 된 인상파…그리고 그후

등록 2014-05-08 19:38수정 2014-05-09 14:11

‘오르세미술관전’ 출품작들. 왼쪽은 모네의 1886년작 <양산을 쓴 여인>. 딸 수잔을 그렸다. 색채와 빛이 화폭에 넘실거리고, 색깔의 불꽃 같은 아래 풀밭의 묘사가 인상적이다. 오른쪽은 고갱의 1889년작 <노란 건초더미>. 퐁타벤 정착기의 작품. 원색조 색면과 명확한 윤곽선으로 그려졌다. 도판 국립중앙박물관·오르세미술관 제공
‘오르세미술관전’ 출품작들. 왼쪽은 모네의 1886년작 <양산을 쓴 여인>. 딸 수잔을 그렸다. 색채와 빛이 화폭에 넘실거리고, 색깔의 불꽃 같은 아래 풀밭의 묘사가 인상적이다. 오른쪽은 고갱의 1889년작 <노란 건초더미>. 퐁타벤 정착기의 작품. 원색조 색면과 명확한 윤곽선으로 그려졌다. 도판 국립중앙박물관·오르세미술관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오르세미술관전’
인상파와 후기인상파 변천 담은
회화·조각·드로잉 등 175점 전시

모네 ‘양산을 쓴 여인’으로 시작해
첫 국외 반출된 루소 작품으로 끝
근대 파리의 풍속도 엿볼 수 있어
“이런 짓은 정신병자들이 길에서 주운 돌을 다이아몬드라고 우기는 것처럼 웃기는 것이다.”

1874년 프랑스 파리 시내의 사진가 나다르의 작업실에서 논란의 전시가 막을 올린다. 세잔, 모네, 드가 등 소장 작가 30명이 첫 인상파 그룹전에서 일상 풍경 등을 흐릿한 윤곽과 색채 범벅으로 뒤발한 작품들을 내놓자 언론과 평단은 조롱을 퍼부었다. 그들은 ‘한폭의 그림’ 같은 관행을 일탈한 찰나적인 묘사 방식과 하찮은 일상에서 끄집어낸 소재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 제도권 살롱전에서 따돌림 당했던 이 작가들은 비아냥을 딛고 그뒤 10여년간 8차례 전시를 감행해 미술사의 ‘빅뱅’을 일으켰다. 그들 덕분에 역사 소재에 속박된 고전미술의 너울을 벗어난 후대 미술가들은 마음과 감각이 내키는대로 세계를 화폭에 재구성하게 됐다. 어떤 대상이든 작가가 주시하면 다 미술이 된다는 예술지상, 모더니즘의 경지로 미술사는 전진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3일 시작한 ‘근대 도시 파리의 삶과 예술, 오르세미술관 전’(8월31일까지)은 인상파 사조의 ‘빅뱅 이후’를 이야기한다. 인상파 그림의 전당인 프랑스국립오르세미술관의 네번째 국내 출품전이다. 인상주의의 태동, 후속 사조와 작가들의 등장, 변화의 모판이 된 근대 도시 파리의 삶과 예술을 여러 갈래로 보여준다. 회화와 조각, 사진, 드로잉, 공예 등 175점의 출품작은 역대 최대 규모라고 한다.  

왼쪽이 르동의 1890년작 <감은 눈>. ‘나비’(선지자란 뜻)파 작가들과 교유하며 상징주의에 심취했던 르동의 대표작. 무의식과 꿈을 신비스럽게 표현한다. 오른쪽은 루소의 1907년작 <뱀을 부리는 여인>. 피리를 울리며 숲속의 뱀과 새를 불러내는 여성과 뚜렷한 선과 색채감으로 표현된 주위의 덩굴, 나무 등이 이국적 환상을 자아낸다. 도판 국립중앙박물관·오르세미술관 제공
왼쪽이 르동의 1890년작 <감은 눈>. ‘나비’(선지자란 뜻)파 작가들과 교유하며 상징주의에 심취했던 르동의 대표작. 무의식과 꿈을 신비스럽게 표현한다. 오른쪽은 루소의 1907년작 <뱀을 부리는 여인>. 피리를 울리며 숲속의 뱀과 새를 불러내는 여성과 뚜렷한 선과 색채감으로 표현된 주위의 덩굴, 나무 등이 이국적 환상을 자아낸다. 도판 국립중앙박물관·오르세미술관 제공
지금도 인상파가 서구를 대표하는 미술사조로 기억되는 건 한시대 문화 전반을 미술의 힘으로 지배했던 최후의 사조이기 때문이다. 1874년 첫 전시회 뒤 작가들의 분열이 노골화된 1886년의 8회 그룹전과 함께 인상파 운동은 끝난다. 그러나, 이후 신예작가들의 후기 인상파 사조가 시작돼 빅뱅의 여진은 세잔이 죽은 1906년까지 지속된다. 문화사가 아르놀드 하우저는 명저 <문학과 예술의사회사>에서 19세기 후반 인상파에 힘입어 회화가 주도적 예술이 됐다고 지적하면서 그 배경으로 인상주의가 미분화된 역동적 세계관의 양식이란 점을 꼽았다. 인파 가득한 근대 도시에서 쉴 새 없는 일어나는 일상의 자극과 작가들의 예민한 감수성이 만나 빚어낸 빛과 색채 중심의 찰나적 회화는 근대라는 시대상에 절묘하게 부합하는 덧없는 생활감정의 발현에 다름 아니었다. “회화는 당대 가장 진보적인 예술로서 다른 모든 장르를 압도할 뿐 아니라 작품 성과에서도 동시대의 문학이나 음악을 질적으로 능가”했고, “인상파 회화는 현실의 어떤 새로운 측면을 발견함으로써 이후 문학과 음악도 자기들의 표현수단을 회화적 형식에 적응시키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하우저는 통찰한다. 실제로 인상파 사조의 탄생과 전개과정에는 극적인 요소들이 많다. 근대가 정착되는 시대 상황과 긴밀히 결합된 인상주의 유파의 변천과 작가들의 이합집산은 20세기초 세계 미술사의 향방을 결정짓는 계기가 됐다. 이런 인상파 미술의 극적인 전개 과정을 집약한 작품들을 통해 오르세미술관의 컬렉션 흐름을 간추려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번 전시의 특장이라고 할 수 있다.

<b>빈센트 반 고흐 <시인 외젠보흐의 초상> 1888, 오르세미술관소장</b>  고흐는 1888년 프랑스 아를에 정착해 예술가들의 공동체를 꿈꾼다. 이 그림은 아를에서 만난 벨기에 출신의 금발 시인 외젠보흐에 대한 우정을 담아 그린 것이다. 동생 테오에 보낸 편지에서 그는 초상의 배경을 무한공간으로 설명하며 ‘까만 하늘에서 별이 빛나는 것 같은 신비로운 효과를 자아낸다’고 썼다. 
빈센트 반 고흐 <시인 외젠보흐의 초상> 1888, 오르세미술관소장 고흐는 1888년 프랑스 아를에 정착해 예술가들의 공동체를 꿈꾼다. 이 그림은 아를에서 만난 벨기에 출신의 금발 시인 외젠보흐에 대한 우정을 담아 그린 것이다. 동생 테오에 보낸 편지에서 그는 초상의 배경을 무한공간으로 설명하며 ‘까만 하늘에서 별이 빛나는 것 같은 신비로운 효과를 자아낸다’고 썼다. 
이런 맥락에서 전시장은 인상파와 그의 자식들이 닦은 길이 된다. 작가가 그림을 규정하는 진정한 주체임을 자각한 인상파 작가들이 스스로를 근대의 예술신으로 군림하게 한 대로를 닦은 뒤 후대 작가들이 이를 다양한 갈랫길로 분기시키는 역사를 영역별로 보여준다. 세계 전시를 단골로 하는 오르세의 상업적 순회전이지만, 이런 사조들을 집약해 간추렸다는 면에서 유익하다. 지난 주말 연휴 3일간 1만6000여명 관객이 몰려 흥행도 순조롭게 출발했다.  

전시 도입부인 두번째 방부터 모네의 <양산을 쓴 여인>과 르누아르의 풍만한 초상화, 드가의 발레 무희상 등 익히 알려진 걸작들을 실견하게 된다. 하지만, 더욱 반가운 부분은 인상주의 이후 나타난 후기 작업들일 것이다. 반인상파의 선봉에 섰다가 세기말 요절한 점묘의 작가 조르주 쇠라는 <포르 탕 베생 항구>에서 색점의 인공적인 집합들로 항구 풍경을 재구성해 20세기의 과학적 감수성을 예고한다. 관객들은 그 다음방에서 타히티 연작들로 기억되는 폴 고갱이 그 전초가 된 브르타뉴 지방의 퐁타방 전원에 칩거하며 야성적인 기본 작품세계를 완성시켰음을 알게 된다. 퐁타방 전원을 그린 <노란 건초더미> 등의 풍경화들은 특유의 강한 필선과 정교한 색채감으로 역동적인 묘사력을 내뿜는다. 그 맞은편 방에선 우주를 배경으로 벨기에 친구를 그린 고흐의 <외젠보흐의 초상>을 만날 수 있다. 세잔은 유명한 <생트 빅투아르산>연작과 양파 등을 그린 <정물>로 자연의 형상을 사냥하듯 추적한 집요한 시선을 보여준다.  

[%%IMAGE4%] 후기인상주의 다른 봉우리인 상징주의와 나비파 작가들의 명작들도 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꿈과 무의식 세계를 담는 상징주의는 현실 감각에 치중하는 인상파와 결별한다. 대표작인 오딜롱 르동의 <감은눈>은 김영나 관장이 집착했던 출품작이다. 꿈꾸는 듯한 그림 속 인물의 감은 눈동자는 윤곽을 흐릿하게 하는 르네상스기 스푸마토 기법으로 신비감을 발산한다. 그 모델 자체가 미켈란젤로의 노예상 표정을 옮겨왔다는 것도 흥미롭다.

에펠탑을 담은 조르주 가랑의 채색판화. 1889년 만국박람회를 기념해 등대처럼 조명을 내쏘고 있는 에펠탑의 모습을 묘사했다.
에펠탑을 담은 조르주 가랑의 채색판화. 1889년 만국박람회를 기념해 등대처럼 조명을 내쏘고 있는 에펠탑의 모습을 묘사했다.
에두아르 뷔야르와 피에르 보나르 등이 주동한 나비파는 더욱 인상파에서 멀어졌다. 회화는 평면에 불과하며 더이상 사실적 세계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고 선언한 폴 세잔의 이념을 받아들여 공간감이 사라지고, 일본 채색 목판화 ‘우키요에’의 영향으로 장식적이고 색채감의 밀도가 높은 화면이 도드라진다. 두툼한 색감으로 출렁거리는 보나르의 실내 풍경화들과 뷔야르의 <잠> 등이 눈맛을 돋운다. 전시장 끝에 있는 앙리 루소의 명작 <뱀을 부리는 여인>은 처음 국외 반출된 작품으로 눈길을 가장 많이 받는 전시 대표작이다. 세관원 출신으로 스스로 그림을 배운 그는 파리 식물원의 화초를 보며 인도 야생생태계의 모습을 상상해 이 작품을 그렸다고 전해진다. 제도권 미술계로부터 3류 아마추어 화가로 멸시 받았지만, 야생림 속에서 피리소리로 뱀을 부르는 여인을 그린 이 생명력 가득한 대작 앞에서 어떤 유파도 좇지않고, 자유로왔던 그만의 거장성을 실감하게 된다. 루소의 원초적인 상상력은 명확한 윤곽과 색채감이 생동하는 꽃과 나뭇잎, 피리를 부는 알몸여인, 숲 사이로 꿈틀거리는 뱀들을 통해 살아 숨쉬고 있다.

오르세미술관전을 관람하고 있는 관객들
오르세미술관전을 관람하고 있는 관객들
그간 글로벌 박물관을 표방해온 김영나 관장은 자신의 전공인 서양 미술사적 정체성을 한껏 살린 전시를 주문했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이번 기획전은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유파들의 변천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첫 도입부와 전시 중간에 근대 파리의 풍속과 도시 문화를 사진, 공예품 등으로 보여주기 위해 중앙박물관이 만든 섹션이 들러리처럼 끼어들어 감상에 혼돈을 일으킨다. 독점 기획사를 통해 오르세에서 대량의 작품들을 떼어온 뒤 명분과 기획을 포장해 전시를 만든 흔적이다. 오랫동안 다양한 컬렉션과 교섭하며 기획자 구상에 맞게 출품작과 사료들을 재구성하는 건 선진 미술관 전시의 기본이다. ‘오르세 미술관 전’은 한국의 블록버스터형 전시의 진화에 대한 고민을 덤으로 안겨준다. www.orsay2014.co.kr, (02)2077-9000.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 도판 국립중앙박물관·오르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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