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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빼고 다듬고 뒤집고…원작의 벽을 넘어라

등록 2014-05-15 19:23수정 2014-05-16 15:50

원작이나 먼저 나온 2차 콘텐츠와 차별화하기 위해 창작자들은 다양한 방식을 택한다. 원작자의 각색, 관객의 사전 검증, 주인공 뒤집기, 심지어 아예 원작으로 회귀하기도 한다. 뮤지컬 <풀하우스>. 각 회사 제공
원작이나 먼저 나온 2차 콘텐츠와 차별화하기 위해 창작자들은 다양한 방식을 택한다. 원작자의 각색, 관객의 사전 검증, 주인공 뒤집기, 심지어 아예 원작으로 회귀하기도 한다. 뮤지컬 <풀하우스>. 각 회사 제공
[문화‘랑’] ‘원 소스 멀티 유즈’ 어디까지
변신의 유혹은 달콤하지만 재창조의 고통은 깊다. 공연계에 ‘원소스 멀티유즈’ 작품이 늘어나며 낯익은 스토리, 검증된 인기의 원작을 넘어서기 위한 제작진들의 전략과 승부수도 다양해지고 있다.
묵은 김치의 ‘위대한 재탄생’. 더 우러나올 수 없이 깊은 맛이 나는 김치도 김치볶음밥, 김치찌개, 김치부침개로 창조적 변신이 가능한 법이다. 본래의 맛과 다르지만 새로운 풍미를 느낄 수 있는 김치의 변신처럼, 올해 문화판에선 원작을 새롭게 변형하는 ‘원소스 멀티유즈’ 작업이 한창이다.

고전이나 인기작이 장르를 불문하고 ‘리바이벌’되는 게 새삼스런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치솟는 공연제작비 부담 속에서 검증된 인기와 탄탄한 스토리를 가진 원작에 대한 유혹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결국 관건은 차별화일 터. 원작자의 각색, 원작으로 회귀, 관객의 사전 점검, 주인공 뒤집기…. 익숙한 것과의 결별. 낯익은 스토리를 다른 장르로 재창조하기 위해 작가, 연출, 제작자들은 저마다 다양한 변신 전략을 구사하며 나름의 승부수를 띄운다.

원작 변형 작품 잇따라 무대에
새로운 느낌 주려 상상력 총동원
잘되면 약이지만 되레 독 될 수도

가무극 ‘바람의 나라 무휼’은
만화 원작자에게 각본 맡기고
뮤지컬 ‘JSA’는 원작으로 복귀
‘풀하우스’는 관객한테 사전검증

지난 11일 개막한 가무극 <바람의 나라 무휼>은 김진 작가의 만화 <바람의 나라>(1992)를 원작으로 한다. <바람의 나라>는 호동의 아버지이자 고구려 3대 국왕인 대무신왕(무휼)의 드라마틱한 삶과 권력투쟁의 과정을 다뤘다. 이미 게임, 소설, 드라마로 여러 차례 변주된 이 작품을 가무극으로 만들면서 서울예술단은 원작 만화가인 ‘김진’에게 각본을 맡기는 파격적인 시도로 차별화를 꾀했다. 원작자에게 새로운 장르의 각색을 맡기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긴 하지만, 어찌 보면 더 자유로운 변형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김진 작가는 “무대에서 구현하기 힘든 장면들을 과감히 덜어내고 대사도 최소화했다”며 “작품 속 굵직한 개념들은 조명이나 영상, 안무 등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상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바람의 나라 무휼>은 과거와 현재, 이승과 저승의 경계는 조명으로 구분하고 원작의 신수인 청룡, 주작, 봉황 등은 영상으로 풀어냈다. 화려한 무대장치보다는 여백의 미를 강조하고, 압축된 상징을 통해 ‘이미지’를 강조한 것이다.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 각 회사 제공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 각 회사 제공
앞서 나온 파생 장르에서 벗어나 ‘원작’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한 경우도 있다.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는 2000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동명영화의 기본 뼈대를 유지하면서도 영화에서는 빠졌거나 바뀌었던 원작 소설 의 설정을 다시 살려냈다. 영화 속에서 여성(이영애)으로 설정됐던 중립국 수사관 베르사미를 원작처럼 남성으로 바꿨고, 영화에서는 전부 생략됐던 베르사미의 가족사를 되살려냈다. 원작 소설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일인칭 시점자이자 주인공으로서의 베르사미를 중심축에 놓은 것이다. 흥행에 성공한 영화에 견줘 이미 절판돼 관객들에게 익숙지 않은 원작을 충분히 활용한 사례다.

오는 10월 개막 예정인 연극 <프랑켄슈타인>도 비슷한 사례다. 조광화 연출은 “영화와 뮤지컬 등이 원작의 스토리를 버리고 인간이 만든 창조물이라는 모티브만을 따라가지만 이번 연극은 원작 스토리에 충실해 괴물의 내면 묘사에 더 집중할 계획”이라며 “또 원작에서 괴물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눈먼 노인(드 레이시)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는 지적 눈뜨임,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등을 작품의 주요 축으로 놓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드라마 <풀하우스>. 각 회사 제공
드라마 <풀하우스>. 각 회사 제공
아예 작품이 완성되기 전 관객들에게 ‘사전검증’을 받는 절차를 거친 작품도 있다. 원수연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풀 하우스>다. 원작 만화는 16권짜리 단행본이 100만부 이상 팔렸으며, 송혜교와 비를 내세운 드라마(2004) 역시 최고 시청률 40%를 기록하는 인기를 누렸다.

이렇게 만화와 드라마로 큰 인기를 누린 작품을 뮤지컬로 만들면서 성재준 연출은 무려 5년이나 투자해 각본을 다듬고 최고의 스태프들을 모았다. 그리고 무대 위에 올리기 전 잠재적 관객들에게 ‘사전 검증’을 받는 방법을 택했다. 성 연출은 “주요 스태프들이 모여 충분한 각색과 음악 작업을 한 뒤 관객들이 참여하는 워크숍과 페스티벌에서 미리 관객들의 의견을 수렴해 검증과 수정 작업을 거쳤다”고 말했다. 창작 뮤지컬들이 무대 위에 작품을 올리고 관객의 반응에 따라 여러 차례 손을 보는 것과 달리 그 작업을 미리 거친 셈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각 회사 제공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각 회사 제공
원작을 아예 다른 등장인물의 시선으로 ‘뒤집는 방식’으로 재해석해 ‘낯설게 하기’에 성공한 작품도 있다. 16일 개막하는 뮤지컬 <오필리어>는 원작인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그의 여자친구인 오필리어의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21세기형 오필리어’를 내세운 만큼 대사 역시 현대적으로 변형된 부분이 많다. 오필리어가 햄릿을 “오빠”, 아버지 폴로니어스를 “아빠”라고 부르는 식이다. 여기에 연출인 김명곤씨의 장기인 ‘국악적 요소’도 가미된다. 다소 클래식한 아리아 형식의 곡(넘버)들이 흐르는 가운데 한국 전통악기인 북, 징, 박 등으로 장단을 맞춘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을 뮤지컬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인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는 “1차 콘텐츠를 2차 콘텐츠로 옮기려면 관객들의 ‘기시감’을 극복해야 하기에 훨씬 더 탁월한 상상력과 창의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긴 문학작품을 2~3시간 정도의 무대예술로 변형하려면 엄청난 압축과 함축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며 “그래서 최근에는 영화나 드라마 등 이미 ‘압축’된 2차 콘텐츠를 다시 3차 콘텐츠로 옮기는 멀티유즈 현상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선희, 손준현 기자 duck@hani.co.kr

▷인터뷰 뮤지컬 ‘오필리어’ 연출 김명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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