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줄리어스 시저’
리뷰 l 연극 ‘줄리어스 시저’
시저 암살된 뒤 안토니 ‘극장정치’
시민들 어떻게 선동하는지 보여줘
시저 암살된 뒤 안토니 ‘극장정치’
시민들 어떻게 선동하는지 보여줘
한 편의 ‘극장정치’가 무대에 올랐다. 배우와 관객 모두 이 ‘극장정치’의 주연이다. ‘이미지를 기획하고 조작하는’ 극장정치가 어떻게 대중을 사로잡는지 연극 <줄리어스 시저>(사진·셰익스피어 원작, 김광보 연출)를 따라가 보자. 기원전 44년 3월15일 줄리어스 시저 피살.
“내가 왜 시저에 대항해 일어섰냐고? 시저를 덜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여러분은 시저가 살고 우리 모두가 노예로 살길 원합니까? 시저가 혼자만의 권력을 탐하는 야심가였기에 그를 죽였소.” 브루터스(브루투스·윤상화 분)는 시저의 장례식에서 공화정을 파괴하고 황제가 되려는 야심가 시저를 죽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성적으로 군중에게 설득한다. 대의명분이 잘 녹여진 차분한 명연설. 로마의 ‘민주시민들’은 환호했다. “우리가 승리했다!” “브루터스를 추대합시다!”
하지만 환호는 오래가지 않았다. 브루터스의 연설이 끝나자, 시저의 심복이었던 안토니(박호산 분)가 연단에 오른다. “동포들이여, 나는 시저를 묻으러 온 것이지 그를 칭찬하러 온 게 아니오.” 그는 일단 시저와 정치적 단절을 강조한다. “브루터스는 시저가 야심을 품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브루터스는 고결한 분입니다. 나는 시저에게 세 번이나 왕관을 바쳤지만 시저는 거절했습니다. 이게 야심이란 말입니까? 그러나 브루터스는 시저가 야심을 품었다고 했습니다. 브루터스는 분명 고결한 분이오.” 브루터스를 거듭 고결하다고 칭송하면서, 한편으로 왕관을 거부한 시저가 과연 야심가였냐고 되묻는다. 동요하는 ‘민주시민들’. 이어 안토니는 시저의 거짓 유언장을 공개하면서 ‘시저의 모든 재산을 시민들에게 남겼다’라며 선동의 꼭짓점을 찍는다. “그런 사심 없고 베풀 줄 아는 시저를 죽이다니!” ‘민주시민들’은 얼마나 잽싸게 ‘폭도’로 변하는지. “악랄한 반역자 (브루터스 같은) 놈들 집을 불태워라!”
안토니의 권모술수와 악질적 선동은 오늘날 정치인들이 즐겨 쓰는 ‘극장정치’로 연결된다. 다만 로마시대에는 직접 연설로 호소하던 것에서, 지금은 미디어를 통해 좋은 이미지를 집중 부각하는 것으로 변했을 뿐이다. 대통령의 규제개혁점검회의를 텔레비전을 통해 몇 시간이고 지켜봐야 했던 국민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일. 하지만 본질적 의문은 남는다. 브루터스의 혁명은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나? 기원전 44년 3월15일이란 날짜 위에 1979년 10월26일이 오버랩된다. ‘10·26 궁정동의 총성’은 줄리어스 시저와 같은 절대권력자 박정희의 죽음을 알렸다. 하지만 짧은 ‘서울의 봄’을 남긴 채 민주주의는 다시 후퇴했다.
브루터스는 앙시앵레짐(구체제)의 계승자 안토니를 처단하지 않았다. 구체제와의 단절 실패는 안토니라는 ‘신군부’의 등장으로 이어지고, 안토니의 얼굴 위에 전두환이 오버랩된다. 시저는 죽었으되 시저 체제는 유지되고, 박정희는 죽었으되 박정희 체제는 유지된다. 그러므로 이 연극은 ‘실패한 혁명에 대한 보고서’로 읽힌다.
‘극장정치’를 보여주는 무대는 관객을 불러들이는 구조다. 무대 한복판은 정치를 하는 공간이다. 좌, 우, 안쪽에는 철망이 쳐져 있다. 철망 안에서 대중은 정치를 지켜본다. 관객도 자연스레 연극 속의 대중이 돼, 정치에 참여한다. 관객은 ‘극장정치’에 휘둘리는 우매한 군중인 자신을 돌아본다. 불이 켜졌다. 극장문을 나선 ‘시민K’에게 또 다른 ‘극장정치’가 기다리고 있다. 6월15일까지 명동예술극장. 1644-2003.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명동에술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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