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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시대 따라 바뀌어온 ‘천의 얼굴’…‘바보 햄릿’은 어떨까

등록 2014-06-12 19:21수정 2014-06-13 15:39

1951년 국립극단이 올린 <햄릿>에서 주연을 맡은 고김동원 선생. 연합뉴스
1951년 국립극단이 올린 <햄릿>에서 주연을 맡은 고김동원 선생. 연합뉴스
[문화‘랑’] 한국의 ‘햄릿’ 변천사
세계 어디에선가는 꼭 날마다 무대에 오른다는 셰익스피어의 <햄릿>. 1980년대 군부독재와 맞서는 기국서 연출의 햄릿, 사회성과 신화적 요소를 결합한 이윤택의 햄릿에 이어 이번엔 노무현을 만나는 <바보 햄릿>으로 다시 태어난다.
“햄릿은 연극인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다. 햄릿을 해봐야 연극이란 무엇인지 답이 딱 나온다. 극작가들도 햄릿을 다시 고쳐 써봐야 한다. 햄릿도 안 해 봤으면 연극을 논하지 말라, 뭐 그런 정도다.”(이윤택)

세계 어디에선가는 꼭 날마다 무대에 오른다는 셰익스피어 원작의 <햄릿>. 이번엔 노무현을 만나는 <바보 햄릿>으로 다시 태어난다. 등장인물을 단순화한 2인극 햄릿 <두 병사 이야기>도 공연중이다. 햄릿은 시대에 따라 ‘주제에 의한 변주’를 거듭해왔다. 1980년대에는 군부독재와 맞섰던 기국서 연출의 사회극 <햄릿> 연작이 대세였다면, 90년대에는 사회성에 신화성과 심리극적인 요소를 종합한 이윤택 연출의 <햄릿>이 이름을 날렸다. 이들 외에도 김정옥, 김명곤, 양정웅, 박근형 등 쟁쟁한 연출가들이 자신만의 햄릿을 선보였다.

올해로 탄생 450년을 맞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400년이 지나도록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는 이유는 뭘까. 독살당한 왕, ‘죽느냐 사느냐’라는 실존 앞에 선 왕자, 그리고 부당한 권력에 맞선 지식인이라는 사회적 코드?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햄릿>이 무궁무진한 ‘상상력의 젖줄’이 된 데에는 유령과 장례가 등장하는 신화적이고 정신분석학적인 요소도 크게 작용했다. 오늘도 극작가·연출가들은 머리를 싸맨다. “마르지 않는 창작의 샘, 햄릿의 우물에 두레박을 던져라!”

어디든 통하는 유령과 장례
사람마다 다양한 표현 가능
마르지 않는 상상력의 샘
“햄릿을 해봐야 연극을 안다”

1980년대 ‘저항의 햄릿’서
1990년대 ‘냉소의 햄릿’으로
토종 살풀이굿으로 변신도
이번엔 ‘바보’ 노무현 선왕
꿈속에 등장해 현실 고발

5·18과 노무현을 만나는 ‘사회·정치극 햄릿’

김경익 극작·연출의 <바보 햄릿>(6월25일~7월20일 대학로 아름다운극장)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은 선왕으로 등장한다. 3류 잡지사 기자 종철은 밤늦게 데스크로부터 부당하게 기사 수정 지시를 받는다. 간신히 잠든 그는 꿈속에서 정신병원에 갇히고, 또 꿈속에서 노무현이 나타나 “나를 잊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노무현에 대한 찬사도 비난도 자제한다. 지난 9일 <한겨레>와 만난 김경익은 “지식인들은 현실에서 부당한 요구를 받으면서도 알게 모르게 체제에 순응하게 된다. 지식인들이 ‘나를 기억해 달라’는 노무현의 유언을 ‘나를 버리고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 당신의 길을 가라’는 얘기로 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왜 제목에 ‘바보’를 넣었을까? “우직하게 세상 속에서 자기 역할을 해내는 게 중요하다. 결국 세상은 그런 바보가 바꾸는 것 아닌가?”

1996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한판 살풀이굿으로 호평받은 이윤택 연출의 <햄릿>. <한겨레> 자료사진
1996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한판 살풀이굿으로 호평받은 이윤택 연출의 <햄릿>. <한겨레> 자료사진
1981~2012년 기국서 연출의 <햄릿> 연작 가운데 2012년 작 <햄릿6: 삼양동 국화 옆에서>. 1980년대 저항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담아낸 데 이어 2012년 작에서 폭력용역들에게 두들겨 맞는 햄릿. 남산예술센터 제공
1981~2012년 기국서 연출의 <햄릿> 연작 가운데 2012년 작 <햄릿6: 삼양동 국화 옆에서>. 1980년대 저항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담아낸 데 이어 2012년 작에서 폭력용역들에게 두들겨 맞는 햄릿. 남산예술센터 제공
그 자신이 ‘대표적인 햄릿 배우’였던 김경익 연출에게 햄릿은 뭘까. “가장 매력적인 점은 부당한 권력과 맞서는 지식인의 힘이다. 그런 점이 오래된 텍스트임에도 동시대적 문화자산으로 끝없는 변용이 가능한 것이다.” 그는 ‘죽느냐 사느냐’를 ‘의식이 살아 있는 존재냐, 의식이 죽어 있는 존재냐’로 이해한다.

부당한 힘에 맞서는 지식인을 형상화한 햄릿의 변주에서 기국서를 빼놓을 수 없다. 기국서의 <햄릿> 연작(1981~1990)은 햄릿을 5·18과 군부독재에 대입해 강력한 저항의식을 보여준 작품이다. 심지어 군복, 군홧발, 총들이 직접 무대에 등장했다. 하지만 10년 뒤 기국서의 <햄릿>(4~5편)은 정치적 냉소주의와 마주한다. 김옥란 연극평론가는 ‘5·18 서사로서의 <햄릿>과 기국서의 연극사적 위치’라는 글에서 “1980년대의 기국서는 정치성과 결합된 실험극이자 전위극으로 자리했지만, 1990년대 기국서의 정치성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탈정치성’과 함께 무장해제당했다”고 썼다. 표면상 군부독재는 사라졌지만 실질적 민주화를 가져오지 못한 당시 사회의 정치적 무기력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얘기다.

기국서는 2012년 〈햄릿6: 삼양동 국화 옆에서>를 다시 무대에 올렸다. 여기서 햄릿은 해고 노동자로 다시 동시대성을 획득한다.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파업, 성폭행 희생자로 고뇌하는 2012년 이 땅 젊은이들의 초상을 햄릿에 담아낸 것이다. 그는 11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연극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무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어떻게 소통시킬 것인지, 이 시대의 사회·정치적 이슈를 어떻게 햄릿을 통해 연극에 반영할 것인지는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2014년 노무현을 만나는 햄릿을 형상화한 <바보 햄릿> 포스터. 극단 진일보 제공
2014년 노무현을 만나는 햄릿을 형상화한 <바보 햄릿> 포스터. 극단 진일보 제공
‘다양한 변주’의 힘은 동시대성과 ‘극중극’ 형식

이윤택 연출의 1996년작 <햄릿>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한판 살풀이굿으로 호평을 받았다. 기국서의 사회성에 신화적이고 정신분석학적 요소를 더했다는 평가였다.

김동욱 성균관대 교수는 논문을 통해 “돋보이는 부분은 햄릿이 선왕과 조우하는 장면을 ‘접신’으로 처리한 점”이라며 “극중극 속에 유령의 증언을 삽입하여 복수의 의지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켰다고 평가했다. 김옥란 평론가는 작가론을 통해 “이윤택은 혼돈의 세상 속 ‘난세를 짐질 운명’으로 태어난 젊은 햄릿의 운명을 스스로에게 덧씌운다. 이것이 바로 이윤택을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동시대 연극인으로 느끼게 하는 이유”라고 평가했다.

2010년 <햄릿과 마주보다>라는 전문서를 엮어낸 이윤택은 지난 10일 <한겨레>와 만나 “햄릿이 긴 생명력을 가지는 것은 극중극 형식을 통해 문화적 방식으로 현실을 까발린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햄릿은 연극 속에서 광대극을 통해 은폐된 현실의 문제를 고발한다. 바로 까발리기 힘드니까, 문화적이고 상징적으로 고발하는 것이다.”

그는 햄릿이 나라마다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까닭도 설명했다. “햄릿은 귀신극이고 광대극이고 제의 연극이다. 귀신과 광대, 장례 없는 나라는 없으니까 모든 나라에서 자기 스타일대로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햄릿이 세계적이면서도 민족적인 연극이 될 수 있는 이유다.”

햄릿은 1951년 피란지 대구에서 국립극단이 ‘영원한 햄릿’ 고 김동원 선생을 주역으로 번역본 작품으로 공연했다. 1970년대에는 안민수 각색·연출의 <하멸태자>가 무대에 올랐는데, 햄릿을 ‘하멸이란 이름의 태자’로 바꿔 한국 전통양식으로 수용한 작품이었다. 이후 기국서, 이윤택 등 수많은 연출가를 거쳤다. 분명한 점은 아직 무대에 오르지 않은 <햄릿>들이 극작가와 연출가들의 머릿속에 가득하다는 점이다. 햄릿이란 깊은 우물에서 길어올린 두레박에는 또 어떤 햄릿의 분신들이 담겨 있을까.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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