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개의방’전에서 펼쳐지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퍼포먼스.
세계 화랑 저녁 파티 ‘큰손 모시기’ 북적
VIP 고객 우선 입장 ‘퍼스트 초이스’
일반 공개 땐 작품 3~4차례 교체
‘거래액 2조’ 본전시 설치작 돋보여
세계적 건축가 헤어초크&뫼롱이 설계
‘14개의 방 프로젝트’ 퍼포먼스 진수
VIP 고객 우선 입장 ‘퍼스트 초이스’
일반 공개 땐 작품 3~4차례 교체
‘거래액 2조’ 본전시 설치작 돋보여
세계적 건축가 헤어초크&뫼롱이 설계
‘14개의 방 프로젝트’ 퍼포먼스 진수
지금 못 들어갑니다. 그분들께서 가신 뒤, 오후 3시부터 입장 가능합니다.”
전시장 보안요원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프레스카드 내밀고, 행사를 미리 취재한다는 설명은 통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분들’이었다. 전세계에서 스위스로 명품 보러 날아온 슈퍼리치(백만장자), 정·재계 큰손, 대중문화스타 같은 브이아이피(VIP)들 기분과 기질을 맞춰주는 것. 그들이 마음 편히 관람하고 구매작들을 예약하도록 부추키는 게 전시의 지상목표다.
스위스 바젤의 도심 메세 플라츠 광장의 초대형 전시관에서 34개국 284개 화랑이 작품부스들을 차린 40여년 전통의 국제미술품판매전람회는 일면 냉혹했다. 19~22일(현지시각) 열리는 45회 아트바젤은 17~18일 언론을 상대로 전시 사전 관람(프리뷰)을 했지만, 최상급 컬렉터들이 찾은 17일 오전엔 기자들을 발도 못붙이게 했다. 구매력을 지닌 소수 컬렉터의 감상과 그들만의 정보교환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세계 최대, 작품 수준도 최고라는 아트바젤은 어느 전시보다 가진자의 논리가 노골적으로 작동한다.
아트바젤은 최근 홍콩페어를 창설하면서, 10여년전 시작한 마이애미 페어를 포함해 세계 미술시장 3대 거점을 장악했다. 17일 최고 브이아이피 고객들만이 관람한 전시장 퍼스트초이스(첫번째 선택)에는 역대 최고의 인파와 더불어 미국의 유명투자자이자 딜러인 제프리 다이치 등 유명인사, 거부들이 100억대 넘는 작품예약 행렬을 이뤘다는 설이 돌았다. 17~18일 저녁 바젤 시내 레스토랑과 맥주집 등은 서구 유력 화랑들이 주력 작가를 알리기 위해 여는 파티들로 북새통이 됐다. 국내 화랑계 관계자는 “전화와 대면 접촉으로 유명 고객을 서로 자기네 파티에 데려가려는 뺏기 싸움도 벌어진다”고 전했다. 큰손들이 개막 전에 주로 몰리므로 화랑들은 일반공개 전 홍보와 구매상담에 집중한다. 일반공개 전까지 3~4차례 내걸 작품들이 바뀌기도 한다. 전시장 밖에는 특급고객들을 위해 숙소로 가는 BMW사의 무료자가용이 기다린다. 아트바젤은 참가화랑한테서 특급고객 명단을 추천받아 정보를 종합 관리하며 전시장 이용 때 각종 특혜를 주는 브이아이피카드를 직접 발급해준다. 이런 세심한 서비스는 아트바젤이 막강 영향력을 유지하는 비결 가운데 하나다.
스위스금융그룹 유비에스(UBS)가 후원하는 아트바젤은 보수적 거래시장이면서도 좀더 파격적인 미술 흐름을 반영하며 시대와 시장 사이에서 새 전망을 모색해왔다. 이번 행사에도, 세계적인 건축가 헤어조그&뮈롱이 본전시장 뒤쪽 건물 내부를 새로 설계한 14개의 방 프로젝트를 선보여 퍼포먼스 아트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내부엔 넓은 복도가 있고 그 공간의 양옆에 거울판 문짝이 달린 14개의 방이 나온다. 어느 방이든, 문만 열면 60년대 이래 21세기까지 세계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걸작 퍼포먼스와 지금 시대 최고의 행위예술을 배우들의 재현으로 감상할 수 있다. 두 배우가 서로의 동작을 따라하는 데미안 허스트의 퍼포먼스, 알몸의 여성이 벽에서 튀어나온 의자에 걸터앉은 채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손을 들었다 내렸다 하는 거장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몸작업 등을 볼 수 있다.
언리미티드 전도 원래 소장미술가들을 위해 일부 개방된 난장이었으나, 바젤 쪽은 최근 전시관 전체를 아예 넘겨주며 컬렉터들을 끌어들였다. 날개처럼 떠있는 양혜규씨의 블라인드 설치작업과 파르테논 신전의 신상 모조품에 거꾸로 선 목없는 불상을 접붙인 중국 작가들의 거친 대형 설치작업들이 눈에 띈다. 길이 100m 넘는 거장 칼 앙드레의 철판 조각들을 밟으면서 전시장 뒤쪽으로 가면, 지난해 베르사유에서 전시한 거장 주세페 페노네의 속 파낸 나무통을 이어붙인 대형 설치작업들도 볼 수 있다. 이런 다채로운 사조와 세대간 미술이 난무하는 언리미티드전은 시장 확대를 위해 공인된 비엔날레라고 할 수 있다. 18일 낮 전시장 옆에서 만난 아시아 디렉터 매그너스 렌 프루는 “우린 여행을 잘 한다”고 웃었다. 작품과 화랑들의 수준을 따지는 별도 이사회의 지속적 점검과 현장과의 소통 정보 파악을 위해 운영자들이 쉴 새 없이 돌아다니는 것을 빗댄 말이었다.
거래액 2조원을 쉽게 넘길 것으로 보이는 화랑들 본전시는 조각, 설치 입체작업이 조금씩 도드라져 보였다. 글로벌 시대 문화력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각 지역마다 공사립미술관 건립 흐름이 이어지는 것을 겨냥했다는 분석이 많다. 국내 화랑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앞으로 1000개 넘는 미술관이 생긴다고 하는데, 그 10%의 수요도 미술계가 대기 어려울 것이라고들 한다. 최소 10년간 아트 바젤은 경기상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바젤/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