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휠체어를 탄 8년차 배우 황철호는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라고 어눌하지만 또박또박 대사를 전달했다. 다빈나오 제공
장애인극단 ‘다빈나오’
어린왕자 각색한 ‘아름다운 사막’
8년차 인기배우 뇌병변 황철호씨
‘소년’ 맡아 느린 대사 또박또박
‘여우’는 시각장애 ‘장미’는 뇌병변
불편한 몸짓에 몇배 버거운 연습
김제민 연출 “느림의 진정성 표출”
어린왕자 각색한 ‘아름다운 사막’
8년차 인기배우 뇌병변 황철호씨
‘소년’ 맡아 느린 대사 또박또박
‘여우’는 시각장애 ‘장미’는 뇌병변
불편한 몸짓에 몇배 버거운 연습
김제민 연출 “느림의 진정성 표출”
‘소년’은 어눌하다. ‘소년’은 입에 잔뜩 힘을 모은다. “양, 한 마리만, 그려, 줘!” 어린왕자를 연기하는 소년 역의 황철호(33)는 전동휠체어를 탄 뇌병변 장애인이다. 2006년 배우를 시작한 뒤 피나는 노력 끝에 요즘은 발음이 꽤 좋아졌다. “연극을 하기 전에는 말하려면 침이 줄줄 새 창피했었어요.” 주연인 황철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느니만큼, 대사를 외우는 데 특히 신경을 썼다. “24시간 곱하기 3일, 즉 72시간 꼬박 대사 연습을 했어요.” 곱상한 외모의 황철호는 공연 때마다 고정팬들이 몰고다니는 인기배우다.
장애인극단 ‘다빈나오’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각색한 <아름다운 사막>(김제민 연출)을 27일부터 29일까지 대학로 서완소극장 무대에 올린다. 다빈나오는 이 작품을 통해 “사막같이 메마른 세상에서 샘처럼 믿음과 희망을 얘기”할 생각이다. ‘모든 이가 다 빛난다’는 뜻과 ‘다 빈 마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오라’는 뜻으로 2004년 창단한 다빈나오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을 받아 연극 <할 수 있는 가(家)>, 뮤지컬 <더 러브> 등을 공연해왔다.
<아름다운 사막>에는 황철호와 함께 장미와 지리학자 역의 원영숙(37·뇌병변), 술꾼과 여우 역의 박정화(37·시각장애), 왕과 등지기 역의 김성민(37·지체장애) 등 모두 4명의 다빈나오 배우가 참여한다. 박정화와 원영숙은 황철호와 마찬가지로 배우 경력 6~7년이고 김성민만 이번이 첫 출연이다.
원영숙은 춤을 잘 추는데다 지난해에는 장고 같은 타악기까지 섭렵한 다재다능한 배우다. 하지만 손발이 자기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때는 마음이 상한다. 박정화는 발음도 좋고 움직임에 거침이 없다. 하지만 시각장애라 ‘감’에 의존하다 보니, 속으로는 힘들다. 뮤지컬 주연을 맡을 정도로 노래 실력이 뛰어나다. 특히 한번 음을 들으면 바로 피아노로 칠 수 있는 절대음감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몸이 부자연스러우니 연습 과정은 비장애극단보다 몇 배나 버겁다. 장애로 인해 기억력이 떨어지면서 대사를 외우는 데 애를 먹는 단원도 있다. 자꾸 까먹으니 본인도 매우 속상해한다. 그렇지만 모두들 잘 이겨낸다. 김지원 다빈나오 대표는 “대사를 외울 때 띄어읽기 같은 부분을 많이 힘들어해요. 그래도, 본인들이 적극적으로 노력하면서 잘 해내고 있어요”라고 흐뭇해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연출가동인 ‘혜화동 1번지’ 5기 동인인 김제민은 다빈나오 극단의 연출 제안을 받고 흔쾌히 맡았다. 그는 지난해 피아노 건반의 아름다움을 예술가의 삶과 연결한 음악극 <노베첸토>와 올해 스크린을 활용한 미디어 아트 연극 <꼭두각시놀음 조종자편> 등으로 주목을 받았다. 김제민 연출은 “연습 때 특별히 힘든 점은 없었습니다. 미리 걱정했던 것과 달리 배우들이 대사와 장면들을 숙지했고, 공감도 수월하게 됐어요. 다만 그런 걸 구현하는 속도가 좀 느렸지요.” 하지만 그는 느림을 다빈나오 배우들의 장점으로 꼽았다. “삶의 속도가 다르다 보니까, 이 극단 배우들은 지나가는 풍경들을 세세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태도나 진정성으로 볼 때 이 작품이 다빈나오 배우들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아름다운 사막>에서는 배우들이 연기를 펼치는 동시에 사막과 별, 비행기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등을 직접 그린다. 그리고 이 그림을 무대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보여준다. ‘미디어 드로잉’이라 불리는 이런 작업을 통해, 드라마-배우-이미지(미디어 드로잉)가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를 이룬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장애와 비장애를 떠나 사람 관계의 의미를 찾고자 떠나는 여행이다. 이 여행에서 ‘소년’ 황철호는 길동무들에게 얘기한다.
“사막은 아름다워.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여우가 말했어.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라고.”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다빈나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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