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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길을 잃은 지식인 주제로 길을 찾는 차세대 배우들

등록 2014-06-30 19:18

안톤 체호프의 초기작 <플라토노프>(이병훈 연출)
안톤 체호프의 초기작 <플라토노프>(이병훈 연출)
차세대연극인스튜디오서 ‘배우수업’
체호프 작품 ‘플라토노프’ 무대 올려
‘국립극단 실험’ 한국연극 새 동력으로
무대 앞에 책과 술병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다. 찢긴 책들은 기존 가치의 종말을 상징하고, 쓰러진 술병은 보이지 않는 미래전망을 은유한다. 한 시대가 무너지고 있지만 새로운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플라토노프라는 인물은 19세기 말 제정 러시아 시대 방향을 잃은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젊은 시절 고뇌하며 열정적으로 살았지만, 이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에 좌절하고 ‘술과 장미의 나날’로 빠져든다. “플라토노프는 막다른 골목에서 길을 잃고 어디로 갈지 모르고 있답니다”라는 극중 인물의 지적은 적확하다.

지난달 28일 막 오른 안톤 체호프의 초기작 <플라토노프>(사진·이병훈 연출)는 자신의 실패를 합리화하며 여성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다양한 인물을 통해 인간 본성에 접근하는 <플라토노프>는 국내에서는 거의 공연되지 않은 작품으로 ‘차세대연극인스튜디오’를 통해 국립극단 무대에 올랐다.

극중 플라토노프는 실패한 인물이다. 환멸에 빠져있지만 자신의 실패를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네 명의 여자가 이 매력적인 ‘거짓 영웅’을 쳐다본다. 불행은 시작됐다. 얽힌 욕망은 서로를 옥죄고, 마침내 인물들의 혈압은 최대한으로 상승한다. 총성이 울렸다. 한낮의 신기루처럼, 한밤의 낙뢰처럼 플라토노프의 일생도 가뭇없이 사라졌다.

이 작품은 길을 잃은 지식인을 다뤘지만, 출연 배우들은 길을 찾는 사람들이다. 플라토노프 역의 김성환은 땀에 푹 젖은 앞머리와 미간을 찌푸린 피로감을 통해 권태와 환멸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젊은 과부 안나 역의 홍은정은 입꼬리가 올라간 조소와 희번떡이는 눈빛으로 뒤틀린 욕망을 드러냈다. 이들은 모두 ‘차세대연극인스튜디오’를 통해 이 무대에 섰다. 국립극단이 2012년 만든 이 프로그램은 2~3년차 젊은 배우를 16주간 훈련과 함께 실제 공연까지 연결시킨다. 이 프로그램이 곧 한국연극의 새로운 동력으로 자리잡기를 기대하는 이유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재일한국인 홍명화(42)는 “2009년 김성녀의 <벽 속의 요정> 도쿄 공연을 보고 한국에서 배우수업을 받고 싶었다. 사십이 넘은 나이에 이십대와 함께 달리는 것이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신체훈련을 하면 몸이 유연해지고 체력도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6일까지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1688-5966.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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