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을호 건축가 ‘소재로 꽃을 피우다’ 전 화제
예술가의 혈통은 감출 수 없다? 국내외에서 왕성하게 활동중인 건축가 서을호씨가 최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부직포 직물을 소재삼아 설치·전시한 공간디자인 작품 ‘네 개의 주거지들(4Habitats)’이 화제다. 부인 김경은씨와 함께 구상해 만든 이 디자인 공간은 유명한 미술가인 그의 형 서도호씨의 설치작업을 빼어닮은 외형에, 맥락도 서로 잘 어울린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미술판을 조금 아는 이들이라면, 서구미술계에서 설치작업으로 두각을 드러낸 형 서도호씨의 ‘집 속의 집’ ‘떠있는 집’ 모티브와 이번 작품에서 서 건축가가 공간을 꾸리는 감각이 밀접하게 통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형제의 부친이 한국화단의 원로대가인 산정 서세옥씨라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예술가의 감수성은 가족들 사이에서 유전자처럼 공유되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도 들법하다.
물론, 작품의 소재나 세부 틀거지는 다르다. ‘네개의 주거지들’은 사람 모양으로 재단된 부직포 40장을 블라인드처럼 겹치게 한 뒤 공중에 매달아 독특한 얼개의 4가지 건축적 공간이 드러나도록 꾸민 작업이다. 여러 모양으로 잘라진 부직포들을 겹치게 하면서 방과 회랑 복도 같은 공간들을 만들어내고, 그 사이를 관객이 자유롭게 걸으면서 내부를 느껴볼 수 있도록 했다. 겹쳐진 부직포들을 따로 분리해 다른 얼개를 구성할 수도 있다. 각기 다른 모양으로 통로와 공간이 트인 부직포 작품 속 공간을 걸으면, 부직포의 독특한 재질을 눈여겨보면서 색다른 공간을 느끼게 된다.
㈜코오롱과 서씨가 대표로 있는 건축사무소 서아키텍스가 협업해 일상의 소재들을 예술로 승화시킨 체험형 전시로, 앞서 4월 중국 베이징의 798예술특구에서 먼저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2일 2부가 개막하는 바로 옆 디자인박물관의 간송문화전과 함께 볼만한 전시로 맞춤하다. 작품 재료인 부직포의 가공, 제작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도 전시장 한쪽에서 상영중이다. 7월6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코오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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