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철교를 먹으로 그린 최대진 작가의 벽화 작품.
서울 스페이스비엠 ‘지구적 산책’
염중호·김수영·최대진 공동기획전
염중호·김수영·최대진 공동기획전
자살한 독일의 천재 비평가 발터 벤야민(1892~1940)은 후대 예술가들에게 매혹의 이름이다. 20세기가 예술품 원작의 아우라(특유의 분위기)를 뺀 복제예술 전성시대가 될 것이란 그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특히 파리는 벤야민이 자기담론을 입증하고 실천하는 근대도시로서 주목했던 곳이다. 1920년대 문화의 대량 복제와 대량 소비가 되풀이되는 이 도시 곳곳을 누비고 산책하면서 ‘아케이드 프로젝트’란 기록을 남긴 그는, 파리를 군중을 기만하는 거울의 도시라고 불렀다. 풍경의 스펙터클과 상품들의 물신성은 한껏 증폭시키고 이면의 계급과 생산관계, 실제 삶 등은 은폐하는 것이 근대도시의 속성임을 궤뚫어보았던 것이다.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작업하는 사진가 염중호씨와 작가 김수영, 최대진씨는 만약 벤야민의 시선으로 서울 같은 초거대도시 공간들을 헤집고 다닌다면 어떤 이미지들이 나올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자기들만이 생각하는 벤야민의 시선을 가정하며 각자 작업한 뒤 같이 전시를 차리기로 했다. 그 결과, 황량한 대도시의 벌거벗은 이미지 조각들이 모아졌다. 서울 동빙고동 스페이스비엠에 마련된 세 작가의 기획전 ‘지구적 산책’은 그 이미지조각들을 담은 전시다.
전시장에는 최대진 작가의 절규 같은 벽화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강철교와 부산 해운대 아이파크 고층 아파트단지를 그린 두 벽화는 매끄러운 근현대 건축물들이 지닌 도시성의 냉혹한 단면들을 목판화의 칼선묘 같이 표현한다. 전반적으로 거칠고 삭막한 정서가 두드러지는데, 불안하게 유동하는 도시의 일상을 반영하려는 의도가 작용했을 터다. 염중호 작가는 콘크리트가 두둑 붙은 타일덩이나 깨진 병 주둥이 등을 던져놓는 독특한 수집벽을 드러낸다. 다 헤진 나무가림막과 앞에 방치된 고물 오토바이, 근현대 양식과 콘크리트 설치물 등이 잡탕으로 뒤섞인 중국 광저우의 건물 풍경 등을 담은 사진들까지 그의 근작들은 도시의 이면에 있는 구슬픈 진실을 포착하고 있다.
김수영 작가는 여의도 63빌딩이나 아파트 등 우리 일상에 친숙한 빌딩건물 정면의 한 단면을 떠서 그 세세한 표면과 격자 등의 평면 구성 등을 꼼꼼하게 재현한다. 타일·벽돌의 질감을 재현하기 위해 몇겹으로 물감을 칠해 재현한 집요한 풍경이다. 15일까지. (02)797-3093.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최 작가의 설치작품 철가방과 건물 외벽을 묘사한 김수영씨의 유화, 도시 뒷골목 풍경을 찍은 염중호씨의 사진이 걸려 있는 전시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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