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작가
김종구 작가의 ‘쇳가루 산수화’전
작가는 몸으로 조각을 한다고 강조한다. 일일이 통쇠를 갈며, 갈아낸 쇳가루를 몸이 내키는대로 흩뿌리며 글씨쓰고 추상화 같은 이미지를 거대한 화폭에 빚어낸다. 이화여대 미대교수로 재직중인 김종구(51) 작가의 작품들은 육중하고 경직된 이미지 탓에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조각 장르의 현실에 대한 절규처럼 읽히기도 한다.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이 2014년 ‘오늘의 작가’로 뽑은 그의 개인전은 조각과 그림의 경계를 줄타기하는 한 소장 조각가의 고뇌와 열정을 함축한다. ‘형태를 잃어버렸어요 - 쇳가루 산수화’란 제목대로 작가는 형태의 관성에 빠진 조각에서 담론과 창작의 전망을 찾는 암중모색을 근작들로 보여준다. 전시장 1층에 있는 네폭의 대작들은 이런 고민의 과정을 집약한다. 쇳가루로 6000여자의 글씨를 빽빽히 채우거나, 접착제를 바른 화폭에 쇳가루를 계속 흘리며 중첩시켜 시커먼 단색조의 추상 이미지 효과를 낸 가로 9m80㎝, 세로 2m70㎝ 크기의 대형 화폭 4개가 서로 마주보며 내걸렸다. 글씨와 얼룩 같은 흔적은 우리의 시각적 상식으로는 단박에 눈으로 들어오는 덜 무거운 회화적 이미지들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화폭에 묻은 쇳가루 무게가 무려 200kg이 넘으며, 이들이 우둘투둘한 입체감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들은 공간에서 형태를 창작하는 조각의 본령을 벗어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작가는 일일이 통쇠를 갈며 뿌리는 육체적 고행을 통해 가벼운 운필 같은 회화성을 발산하는 모순된 작업을 하는 셈이다. 2, 3층에서 보이는 쇳가루 산수화의 방과 세계 곳곳에서의 쇳가루 작업과정을 담은 영상들도 기본적으로 이런 맥락을 깔고 있다.
“쇠를 깎을 때 어떻게 내 몸을 먼저 쓸까를 생각한다”는 작가는 공장에서 주물 뜨고 작품의 기본 꼴을 만드는 조각계의 관행과는 다른 ‘태도의 문제’를 중시해왔다. 90년대 영국 유학시절 배설한 인분을 쌓아놓고 합성수지를 씌워 탑으로 만든 초기 작업부터 줄곧 몸과 조각의 개념적 관계에 천착해왔다고 했다. 97년 영국 현지 전시 때 자코메티풍의 홀쭉한 인체상을 전시하다가 작품을 도난당하고 쇳가루만 남은 것을 본 뒤 ‘몸을 써서 갈아내고 표현하기’에 심취하게 됐다는 내력도 이채롭다. 그는 조만간 아프가니스탄 같은 전란의 현장에서 폐탱크를 갈아 쇳가루로 만드는 필생의 작업에 착수할 참이다. 31일까지. (02)3217-6484.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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