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스페이스 오뉴월 제공
작가는 2년여 전부터 줄곧 절하는 남자만 그리고 있다. 그의 전시장 또한 한 남자가 절하는 그림들로만 온통 채워졌다. 구도나 색감 등에서 미세한 차이가 날 뿐 거의 같은 배경과 ‘포즈’로 절하는 남자의 뒷모습이 화폭에 거듭 나온다.
서울 성북동의 전시공간 스페이스 오뉴월(070-4401-6741)과 청주 우민아트센터(043-222-0357)에서 ‘관계의 감각’이란 제목으로 전시중인 문영민 작가는 한국인의 일상 행위에 시선을 내리쏟는다. 특히 제사 등의 제례를 뜯어보고 낯설게 재현하는 데 대한 관심이 유난스러워 보인다. 전시장에 내걸린 절하는 남자의 연작들은 모두 단 한 장의 사진을 본보기 삼아 그린 것들인데, 제각기 조금씩 다른 회화적 방식으로 재현되어 있다. 그림 속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배경도 생략돼 제사인지, 다른 행사인지도 알 수 없다. 양복을 입은 남자의 구부린 등과 굽힌 다리, 바닥을 짚은 손 등 뒷모습만 보일 뿐이다.
문 작가의 연작들은 절하는 행위 자체에 대한 낯선 재현이면서, 같은 그림 도상의 반복을 통해 이 행위의 의미를 새롭게 묻고 있다. 절이라는 애도를 담은 행위가 한국인의 일상에서 되풀이된다는 것은 곧 기억과 성찰의 무의식적 행위가 아니겠느냐는 의미를 회화를 통해 에둘러 이야기하는 셈이다.
천주교 집안에서 자란 작가는 “유년시절 뇌리에 인상깊게 각인된 건 독특한 제사 예절이었다”고 말한다. 연도라는 기이한 천주교 기도문을 읊는 행위와 엄숙하게 절하는 순간 그 침묵의 연장된 순간들이 어린 나이에도 특별하게 인식되었다는 고백이다. 이미 작가는 2009년 서울 통의동 팩토리의 개인전 ‘간격’에서 천주교 기도문 ‘연도’의 문구를 짜깁기한 수채화 이미지와 기도문 발성을 접붙인 사운드 작업을 선보이면서 천주교와 전통제례가 만나는 혼성문화적 성격을 고찰한 바 있다. 이번 전시까지 포함하면 그는 제사에 얽힌 개인적 기억 속에서 작품의 상상력과 영감을 핍진하게 끌어내고 있는 셈이다. 절 의례를 단순 전통 차원이 아니라 보편적인 개념적 맥락에서 성찰하고 새 의미를 끄집어내려는 발상이 신선하다. 오뉴월은 27일까지, 우민아트센터는 8월16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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