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무 테아트로 제공.
신작 ‘꿈을 삼켰을 때’ 연출 맡아
대사 없이 몸짓 언어만으로 표현
“한국 연극판 정극 설 자리 잃은듯”
대사 없이 몸짓 언어만으로 표현
“한국 연극판 정극 설 자리 잃은듯”
원피스를 입은 로사가 플라멩코를 춘다. 구두굽으로 바닥을 쿵쿵 찍는다. 로사의 연인 파블로가 벌벌 떤다. 지금 로사는 파블로를 쾅쾅 짓밟는 셈이다. 파블로는 뭉크의 <절규>처럼 귀를 막는다. 이 장면은 로사가 파블로에게 결별을 알리는 대목이다. 어, 그런데 대사가 한마디도 없다. 그런데 연극이란다. 신체연극 <꿈을 삼켰을 때>의 한 장면이다.
스페인극단 ‘무 테아트로’가 이달 초 서울에서 올린 이 연극은 강은경(43·사진)이 쓰고 연출했다.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씨어터송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2002년 스페인에 가기 전, 한국에서 <신기루>, <원더풀 초밥> 등을 쓴 작가였다. 결혼과 함께 스페인으로 건너가 극단을 만들었다. 그러다 이번에 신작 신체연극을 들고 12년 만에 한국에 왔다. <꿈을 삼켰을 때>는 대사로 이루어진 연극 문법으로 보면 매우 낯설다. 신체연극은 사실주의 연극에서는 볼 수 없는 현대무용, 마임, 애크러배틱 등을 몸이라는 언어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강은경은 “줄거리를 생각하지 말고 오감으로 느껴라. 어린애들이 상당히 좋아했다. 느낌에만 집중하니까”라고 했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1기생이다. “황지우, 김윤철, 김광림 선생님한테 배웠다. 졸업 뒤 한예종 출신이 모여 ‘극단 동시대’를 만들었다. 바로 옆 학과인 연기과 동기생으로는 이선균, 오만석, 문정희 등이 있다. 이제 너무 유명해서 만날 수도 없지만.”
강은경은 학생 때 굿판을 보러 갔다가 인류학을 공부하는 스페인인 안토니오를 만났다. 안토니오와 결혼해 지금 그가 교수로 있는 지중해의 미항 말라가에서 산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강은경은 늘 연극에 목말랐다. 2005년 그는 말라가연극학교 연출과에 등록한다. “작가는 자기 언어로 글을 쓰는데, 스페인에선 힘들었다. 무대감독, 조명, 조연출을 해봤기 때문에 연출을 선택했다. 작가는 혼자 하지만 연출은 함께 하니까,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이번 작품의 배우 엘레나, 시몬, 마리아도 모두 학교에서 만났다.”
강은경은 2009년 스페인에서 <바리공주>(Princesa Bari)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서양 작품은 대개 권선징악으로 끝난다. 그런데 자기를 버린 사람을 용서할 뿐 아니라, 살리기 위해 여행까지 나선 부분이 어필했다.” 말라가에 이어 세비야, 마드리드에서 무대에 올렸고 지금까지 장기 레퍼토리로 공연하고 있다.
강은경에게 12년 만에 본 한국 연극판은 굉장히 힘들어 보였다. “뮤지컬, 코믹극 같은 상업연극으로 몰리다 보니 정극은 설 자리를 잃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상대적 박탈감이 큰 것 같다. 그런데 스페인도 마찬가지다. <맘마 미아> 같은 뮤지컬이 올라가면 관객이 꽉꽉 찬다. 꼭 유명 연예인을 낀다. 이런 건 한국과 똑같다. 스페인에서도 배우들은 무척 힘들다.”
<꿈을 삼켰을 때>는 파블로의 하루를 카메라처럼 쫓아간다. 그는 늘 멀리 떠나려 가방을 싼다. 그는 생일날 회사에 지각해 해고된다. 단짝 친구는 그를 버리고 배를 타러 떠난다. 연인 로사는 헤어지자고 한다. 마지막으로 치매에 걸린 어머니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간다. 어머니는 한눈에 그를 알아본다. 소통불능의 세상에 단 하나 소통의 끈. 떠나려고만 했던 파블로에게 ‘머물러야 할 이유’가 생겼다. 8월3일까지. 070-8843-0088.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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