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백남준이 연출한 위성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서 생중계했던 다양한 퍼포먼스 영상들. 사진·도판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문화재단 제공
[문화‘랑’] 백남준 특별한 전시회 2제
1984년 벽두 백남준의 위성쇼는 미디어기술의 혁명적 소통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30년이 흘러 세상은 조지 오웰의 예언처럼 통제가
일상화되는 음울한 시대를 맞았지만, 예술가들은 여전히 백남준이 소망했던 평화와 소통을 꿈꾼다.
1984년 벽두 백남준의 위성쇼는 미디어기술의 혁명적 소통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30년이 흘러 세상은 조지 오웰의 예언처럼 통제가
일상화되는 음울한 시대를 맞았지만, 예술가들은 여전히 백남준이 소망했던 평화와 소통을 꿈꾼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봉주르 무슈 오웰!” “안녕하세요 오웰씨!”
검은 화면 속에서 튀어나온 붉은 입술이 실룩거리며 영어와 프랑스어, 한국어로 인사말을 건넸다. “21세기는 1984년부터 시작이다!”라는 거장 백남준(1931~2006)의 선언이 전대미문의 위성예술쇼 생방송으로 실현된 첫 순간은 코믹하게 시작됐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방영 30돌
소통과 평화의 정신 다시 화두
백남준아트센터의 16팀 작품
매스미디어에 대한 성찰 담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
‘라인란트의 백남준’ 활동 조명 예술의 전지구적 소통을 실현한 사건 1984년 1월1일 새해 벽두에 미국과 프랑스, 한국, 독일 등지의 시청자 2500만명을 찾아간 위성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세계 문화판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일깨운 사건이었다. 백남준이 진두지휘한 이 위성쇼는 미국 방송사 데블유엔이티(WNET)의 뉴욕 스튜디오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사이를 위성연결하면서 존 케이지, 머스 커닝햄, 요제프 보이스, 앨런 긴즈버그, 이브 몽탕, 샬럿 무어먼 등 당대 손꼽히는 예술인들의 퍼포먼스들을 화면 속에 다기한 이미지로 녹여냈다. 브레이크 댄스, 우주요들송, 뮤직비디오가 백남준이 즉흥적으로 연출한 배경 화면 속에서 뒤엉키며 명멸했다. 그의 쇼는 1948년 미디어로 인민을 통제하는 전체주의 국가의 미래상을 담은 소설 <1984>를 발표한 영국 작가 조지 오웰(1903~1950)에게 “당신 예측은 너무 앞서 나갔다”고 전하는 삐딱한 오마주였다. 동시에 첨단 미디어기술이 평화와 소통의 미래를 가져오리라는 거장의 소망을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삼라만상의 예술요지경을 영상에 쓸어 담겠다는 백남준의 야심은 적중했다. 쇼의 시청률은 2~7%대로 양호했고, 미디어가 지닌 전지구적 소통의 잠재력을 보여줬다는 서구 언론의 호평이 이어졌다. 고급·대중예술, 뉴욕·파리의 시공간이 분할된 스크린 속에 함께 등장하고, 이런 영상들이 콜라주된 쇼가 라이브 중계됐다는 사실은 기술을 업은 예술이 전지구적 차원으로 순식간에 전파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전두환 정권의 폭압이 한창이던 한국에서도 언론들은 ‘첨단과학과 예술의 만남’이라며 대서특필했다. 생소한 좌파작가 오웰의 <1984>는 스테디셀러가 됐다. 총천연색 잡탕 이미지들이 출렁거리는 티브이 화면은 사상적 맥락이 거세된 채 백남준 미술의 대명사로 자리를 굳혔다. 미술인들 사이에서는 “한국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당시 소장평론가였던 유홍준씨는 “백남준과 한국인 일반 사이에는 시각적· 감각적 차이가 너무 크다. 그러므로 더욱 경이롭겠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본다”는 견해를 언론에 내놓기도 했다. 30년이 흐른 2014년, 쇼의 주인공이던 백남준과, 함께 참여했던 요제프 보이스, 샬럿 무어먼 등 당대 대가들은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백남준이 꿈꾸었던 삼라만상을 담아내는 예술, 소통과 평화를 갈망하는 정신은 여전히 전세계 후대 작가들의 화두가 되고 있다. 미술 변방에서 부러운 눈길로 쇼를 지켜봤던 한국도 세계 미술계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이제 나름의 위상을 확보했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방영 30돌을 맞아 국내에 차려진 두개의 특별한 전시회가 그의 업적과 사상을 다시 추억하게 한다. 7월20일은 그의 탄생일이기도 하다. 백남준의 유산들은 어떻게 기억되며 계승되고 있을까.
‘빅 브러더’에 대한 저항은 계속된다
백남준은 30년 전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서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베냐민이 언급했던 영상미디어 같은 복제예술의 혁명적 소통 가능성을 급진적으로 실천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래 구글·아마존 같은 온라인 공룡매체들의 전횡과 전세계 빅데이터를 통제하는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 파문 등 오웰이 예언한 ‘빅 브러더’ 미디어 통제 사회의 공포는 엄존하고 있다. 국내 최대의 백남준 컬렉션인 경기도 용인의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17일 막을 올린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전은 이런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백남준이 오웰에게 던진 30년 전 인사가 갖는 복잡한 층위를 성찰하는 전시틀을 짰다.
전시장에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성취해낸 미디어아트의 글로벌 네트워킹을 긍정적 소통과 평화의 에너지로 지속시킬 가능성을 묻는 16팀의 작품들이 모였다. 오웰이 <1984>의 잿빛 통제사회를 묘사하며 역설적으로 강조한 휴머니즘과, 매스미디어를 통한 ‘자유의 증대’가 ‘강한 자의 승리’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백남준의 비판의식을 같이 함축한 전시라고 미술관 쪽은 설명한다.
우선 주목되는 작품이 체코 출신 대가 하룬 파로키의 영상작업이다. 도시 감시카메라와 각종 시설 감독용 카메라의 영상을 엮어 1920년대 고전 영화인 지가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를 다른 맥락으로 패러디한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작가 모나 하툼의 영상물 <너무나 말하고 싶다>는 불연속적인 이미지와 전화선으로 연속된 소리를 전달하는 ‘슬로우 스캔’ 기술을 활용한 작업으로 미디어 통제에 대한 특유의 저항적 태도를 보여준다. 미국 작가 질 마지드는 영국 리버풀의 감시카메라에 담긴 자신의 영상을 편집해 공권력과 감시시스템의 경험을 사적인 무용담처럼 뒤튼다. 이상향을 꿈꾸며 만든 도시의 건물, 공원 등의 풍경에 <1984> 등에서 따온 구절들을 함께 엮고 멸종동물, 감시시스템을 상징하는 드로잉을 같이 배치한 송상희 작가의 디스토피아적 작업도 주목된다. 후대 작가들의 근작들 외에 30년 전 위성쇼의 뉴욕과 파리, 국내 방송 버전을 정리한 영상물과 당시 방송 큐시트, 백남준이 일부러 연출한 방송 사고의 이미지 등도 볼 수 있다. 11월16일까지. (031)201-8571.
백남준의 독일 시절 작업들을 엿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국내엔 낯선 백남준의 독일 시절 작업 자료들을 선보이고 있다. 백남준문화재단과 손잡고 9일부터 시작한 아카이브전 ‘나의 예술적 고향: 라인란트의 백남준’은 60~70년대 전위미술의 메카였던 독일 라인란트에서의 활동상을 기획자 김순주씨의 수집 자료들을 통해 집중조명한 기획전이다.
뒤셀도르프 국립미술아카데미 교수 시절 벌였던 독특한 퍼포먼스 사진과 동영상, 신문·잡지·도록, 보이스 같은 대가들과 오고 간 편지 등이 나왔다. 작업 단짝이었던 샬럿 무어먼이 알몸으로 첼로 연주를 하는 유명한 퍼포먼스 ‘오페라 섹스트로니크’를 1968년 뒤셀도르프에서 공연한 사진은 국내 처음 공개되는 것이라고 한다. 아카데미 학생이 누드모델이 되어 피아노 위에 앉아 있고 그 아래서 백남준이 건반을 치는 퍼포먼스 영상도 눈에 솔깃하다. 재단 쪽은<굿모닝 미스터 오웰> 쇼의 장면 분석과 당시 국내외 언론 기사 등을 담은 자료집 <굿모닝 미스터 오웰 1984+30>과 독일 작가 빌리 블뢰스의 만화 <전자 예술의 전사 백남준> 번역본도 펴냈다. 9월30일까지. (02)732-072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소통과 평화의 정신 다시 화두
백남준아트센터의 16팀 작품
매스미디어에 대한 성찰 담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
‘라인란트의 백남준’ 활동 조명 예술의 전지구적 소통을 실현한 사건 1984년 1월1일 새해 벽두에 미국과 프랑스, 한국, 독일 등지의 시청자 2500만명을 찾아간 위성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세계 문화판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일깨운 사건이었다. 백남준이 진두지휘한 이 위성쇼는 미국 방송사 데블유엔이티(WNET)의 뉴욕 스튜디오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사이를 위성연결하면서 존 케이지, 머스 커닝햄, 요제프 보이스, 앨런 긴즈버그, 이브 몽탕, 샬럿 무어먼 등 당대 손꼽히는 예술인들의 퍼포먼스들을 화면 속에 다기한 이미지로 녹여냈다. 브레이크 댄스, 우주요들송, 뮤직비디오가 백남준이 즉흥적으로 연출한 배경 화면 속에서 뒤엉키며 명멸했다. 그의 쇼는 1948년 미디어로 인민을 통제하는 전체주의 국가의 미래상을 담은 소설 <1984>를 발표한 영국 작가 조지 오웰(1903~1950)에게 “당신 예측은 너무 앞서 나갔다”고 전하는 삐딱한 오마주였다. 동시에 첨단 미디어기술이 평화와 소통의 미래를 가져오리라는 거장의 소망을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삼라만상의 예술요지경을 영상에 쓸어 담겠다는 백남준의 야심은 적중했다. 쇼의 시청률은 2~7%대로 양호했고, 미디어가 지닌 전지구적 소통의 잠재력을 보여줬다는 서구 언론의 호평이 이어졌다. 고급·대중예술, 뉴욕·파리의 시공간이 분할된 스크린 속에 함께 등장하고, 이런 영상들이 콜라주된 쇼가 라이브 중계됐다는 사실은 기술을 업은 예술이 전지구적 차원으로 순식간에 전파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전두환 정권의 폭압이 한창이던 한국에서도 언론들은 ‘첨단과학과 예술의 만남’이라며 대서특필했다. 생소한 좌파작가 오웰의 <1984>는 스테디셀러가 됐다. 총천연색 잡탕 이미지들이 출렁거리는 티브이 화면은 사상적 맥락이 거세된 채 백남준 미술의 대명사로 자리를 굳혔다. 미술인들 사이에서는 “한국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당시 소장평론가였던 유홍준씨는 “백남준과 한국인 일반 사이에는 시각적· 감각적 차이가 너무 크다. 그러므로 더욱 경이롭겠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본다”는 견해를 언론에 내놓기도 했다. 30년이 흐른 2014년, 쇼의 주인공이던 백남준과, 함께 참여했던 요제프 보이스, 샬럿 무어먼 등 당대 대가들은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백남준이 꿈꾸었던 삼라만상을 담아내는 예술, 소통과 평화를 갈망하는 정신은 여전히 전세계 후대 작가들의 화두가 되고 있다. 미술 변방에서 부러운 눈길로 쇼를 지켜봤던 한국도 세계 미술계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이제 나름의 위상을 확보했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방영 30돌을 맞아 국내에 차려진 두개의 특별한 전시회가 그의 업적과 사상을 다시 추억하게 한다. 7월20일은 그의 탄생일이기도 하다. 백남준의 유산들은 어떻게 기억되며 계승되고 있을까.
백남준아트센터의 특별전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 전시장 모습. 사진·도판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문화재단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백남준 아카이브 전시장. 사진·도판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문화재단 제공
백남준과 벌인 퍼포먼스에서 알몸으로 연주하고 있는 샬럿 무어먼. 1968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도판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문화재단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