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드라큘라’의 한 장면.
리뷰 l 뮤지컬 ‘드라큘라’
고음에만 집중한 음악 단조로워
김준수 연기력·발성 여전히 논란
고음에만 집중한 음악 단조로워
김준수 연기력·발성 여전히 논란
스타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과 아이돌 김준수(사진 오른쪽), 그리고 원미솔 음악감독 등 <지킬 앤 하이드>의 스태프들이 뭉쳐 야심차게 만든 뮤지컬 <드라큘라>의 막이 올랐다.
하지만 올여름 최고 기대작이었던 이 작품은 ‘빛 좋은 개살구’를 떠올리게 한다. 과도하게 힘을 준 무대장치가 작품 전체를 짓누르고, 시종일관 고음만 반복되는 넘버는 귀에 꽂히지 않는다. 무엇보다 개연성 약한 스토리는 왜 이 작품이 2004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연이은 공연에도 흥행에 실패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1897)는 ‘흡혈귀’ 이야기의 원형으로,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변형을 거듭해왔다. 잘 알려진 만큼 얼마나 새로운 상상력과 해석을 덧붙이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뮤지컬 <드라큘라>는 음산함과 괴기스러움이 아닌 영원한 사랑에 빠진 드라큘라의 순애보에 초점을 맞춘다. 브로드웨이 원작에서 스릴러를 걷어내고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러브 스토리’에 기댄 안정적 전개를 택한 것이다.
1막은 원작과 궤를 같이한다. 수백년 전 죽은 드라큘라의 연인 엘리자베스를 닮은 미나, 미나를 얻기 위해 폭주하는 드라큘라, 미나를 지키려는 약혼자 조나단과 드라큘라를 없애려는 반헬싱까지. 문제는 허술한 2막이다. 드라큘라 사냥에 동참했던 미나는 갑자기 드라큘라에게 “당신이 내 운명”이라며 사랑을 고백한다. “함께 영생불사하자”던 드라큘라는 “나와 같은 어둠 속에 살게 할 순 없다”고 그런 미나를 밀어낸다. 긴장이 최고조에 달해야 할 클라이맥스에서 어리둥절해진다.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결말에 객석에서는 “이게 끝이야?”라는 웅성거림이 이어졌다.
뮤지컬 <드라큘라>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무대장치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했다는 ‘4중 회전 무대’는 첫 시작부터 객석을 압도한다. 무대가 회전할 때마다 드라큘라가 사는 고딕양식의 성, 음산한 공동묘지, 기괴한 정신병동 등 웅장한 세트가 펼쳐진다. 하지만 너무 과도한 무대 전환이 오히려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한다. 이야기 전개를 위해 무대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 무대장치에 이야기가 짓눌리고 끌려간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그나마 붉고 푸른 조명과 여러개의 핀 조명 등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분위기 연출은 합격점을 줄 만하다.
프랭크 와일드혼이 새롭게 손봤다는 음악도 기대에 못 미친다. 기승전결에 따라 강약과 고저를 조절해야 함에도 등장인물 모두의 가창력 경쟁이라도 하듯 대부분의 넘버가 고음에만 집중한다. 170분 동안 단조로운 패턴이 반복되니 귀는 피곤하고 정작 입에 맴도는 대표 넘버는 없다.
붉은 머리와 록스타 같은 옷차림 등 김준수의 드라큘라 스타일은 매력적이지만, 그의 연기력과 발성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최고의 음향시설을 갖춘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인데도 가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몰입을 방해한다. 긴장과 이완 없이 모든 넘버를 울부짖듯 부르는 ‘감정의 과잉’ 역시 거슬린다. 많지 않은 대사 연기도 전작 <디셈버> 때만큼 어색하다. 그나마 조정은(미나·왼쪽), 조강현(조나단) 등이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다.
<드라큘라>는 올해 공연된 작품들 중 표값(R석 14만원, S석 12만원)이 가장 비싸다. 낮 공연 관객을 위한 ‘마티네 할인’도 없다. 장애인·국가유공자 할인율도 50%가 아닌 30%다. 공연 관계자들은 이 역시 ‘김준수의 힘’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드라큘라>엔 그를 보러 온 외국인 관객을 위한, 그 흔한 자막 서비스조차 없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오디뮤지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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