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과 그의 작품.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예술의전당서 특별전 여는 조영남
화투짝·태극기 팝아트, 여친용갱…
30여년 작업한 80여점 한자리에
“전당서 공연·전시 백남준과 나뿐
진지한 화가 조영남 보여주고파”
화투짝·태극기 팝아트, 여친용갱…
30여년 작업한 80여점 한자리에
“전당서 공연·전시 백남준과 나뿐
진지한 화가 조영남 보여주고파”
“병석의 아버지 대소변을 십여년 받아냈던 요 물건, 이게 내 전시의 핵심이죠.”
작가가 손짓하는 현관 어둔 구석에 황금요강 하나가 빛났다. 녹슨 놋쇠 요강 표면에 금판을 입힌 것이었다. 옆엔 ‘싱거’(SINGER) 상호가 붙은 낡은 재봉틀이 절반쯤 금박으로 덮인 채 놓였다. 작가의 어머니가 이 재봉틀로 생계를 잇고 자신을 키웠다고 했다. ‘세시봉’ 가수이자 화가인 만능연예인 조영남(70)씨는 부모님에 얽힌 추억을 초대전시에 털어놓고 싶다고 말했다. “마르셀 뒤샹이 내놓은 변기보다 훨씬 미학적이지 않아요? 이 요강 모양새도 백자 항아리처럼 멋져요.”
조씨는 4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조영남의 왕따 현대미술’전이란 특별전을 연다. 화투짝이나 태극기, 딱지 등 잡다한 일상사물을 소재로 그가 팝아트 그림을 그려온 것은 세간에 익히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는 성격이 다르다. 1970년대 초반부터 30여년간 몰두해온 그의 팝아트 그림 이력을 한자리에서 정리해 보여준다고 한다. 회화, 콜라주, 조각 등 80여점의 구작과 신작들을 망라해 100평 넘는 전시장에 온전히 모아 보여주는 회고전 얼개다. 웬만한 전문화가도 엄두를 내기 어려운 대형전시를 차린 속내는 뭘까. 30일 서울 청담동 한강변 고급빌라에 있는 조씨의 집을 찾아갔다. 작품 운송 작업을 하고 있던 조씨는 “내가 미술을 왕따시키든, 미술이 나를 왕따시키든, ‘미술 갖고 장난친다’는 일각의 불편한 시선에 쐐기를 박고 싶다”고 했다.
“원래 무얼 계획하고 일하지 않아요. 이 전시도 우연히 놀이하듯 이뤄진 겁니다. 4월2일이 제 칠순 생일이었어요. 축하 잔치를 하는데, 공연계 지인들이 즐겁게 회고전 해볼 때가 됐다고 하더군요. 연예인에게 까탈스런 예술의전당에서 하자는 거예요. 되겠느냐 싶었는데 전당에서 해주겠다는 거예요. 미술을 취미 삼는 연예인이 아니라 그동안 쌓아온 미술경력을 인정받은 거죠. ”
조씨는 예술의전당에서 공연과 전시를 동시에 한 최초의 연예인이라고 자랑했다. “전당 콘서트홀과 오페라홀에서 노래 공연까지 했으니…. 생전 친구였던 비디오 거장 백남준이 음악공연과 전시를 같이 했었죠. 아마 그 이후엔 내가 처음이 아닌가 싶어요. 인생과 예술을 놀이하듯 즐긴다는 측면에서 백남준과 나는 통하는 구석이 많죠.”
화투짝으로 대표되는 ‘조영남표’ 팝아트는 작가 나름의 철학적 역사적 맥락을 깔고 있다. “일제 강점기 그렇게 당했는데, 일본 그림이 그려진 화투를 미친 듯이 좋아한다는 모순성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밀고나가야겠다고 생각했죠. 첨엔 화투 그린다고 괄시받았지만, 지금은 화투 연작과 태극기 대작들이 시장에서 호당 오십만원 이상 거래되고 있어요.”
이번 전시도 태극기와 화투짝으로 대변되는 팝아트 작품 세계를 풀어놓게 되지만, 그와 고락을 같이했던 가족, 지인들의 기억을 담은 작품들도 많이 전시할 생각이다. 거실에 널브러진 작업들 중에는 평소 친했던 개그맨, 아나운서, 기자 등 ‘여친’들 얼굴과 진시황릉의 병마용갱 병사갑옷들을 접붙인 ‘여친용갱’이 눈길을 끌었다. 수년 전 잇따라 타계한 작가 김점선, 장영희 서강대 영문과 교수, ‘행복전도사’ 최윤희씨와 생일파티를 한 사진을 콜라주한 작업에선 죽음에 대한 성찰도 엿보였다. 2010년 뇌졸중 증세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던 그가 이제 노년에 들어 인생의 희로애락을 정리해보고 싶다는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젊은 여친들과 수다떠는 게 제일 재밌는 건 확실한데…밤낮 그럴 순 없지요. 그림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계속 그릴 것 같아요. 전시에서 이 사람 작업 장난이 아니구나하는 느낌을 주고 싶어요. 놀이하듯 구상했지만, 진지한 화가 조영남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거죠.”
한강이 창밖에 화폭처럼 펼쳐지는 거실엔 전시장에 옮길 작품들로 가득했다. 그가 작품 운송을 지시하러 간 사이 안쪽 침실에 가보았다. 침상 베개 위에는 ‘항상 영광’이라고 쓴 오광 화투짝 그림이 놓여 있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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