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흐르는 물은 인생·음악·재즈 같아요”

등록 2014-08-04 19:41수정 2014-08-04 21:18

론 브랜튼. 사진 뮤지컬파크 제공
론 브랜튼. 사진 뮤지컬파크 제공
재즈 피아니스트 론 브랜튼 첫 앨범

나만의 음악·남다른 연주자 찾아
‘4대 원소’ 앨범 계획…물로 시작
우면산 홍수·세월호 눈물·물댄 논
“어디나 있는 소리가 음악이 된다”
피아노 기량보다는 음악 조화 살려
그날은 마침 비가 내렸다. 론 브랜튼(사진)은 “물소리, 빗소리를 좋아해 비만 오면 바깥으로 나간다”고 했다. 지난달 24일 한겨레신문사를 찾은 그의 손에는 비에 젖은 우산이 들려 있었다.

론 브랜튼은 미국 출신 재즈 피아니스트다. 한국 여성과 결혼해 1998년부터 이 땅에 머물고 있다. 2000년부터 매년 성탄절 즈음 ‘재즈 크리스마스!’ 공연을 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많은 무대에 섰지만, 그는 좀처럼 앨범을 내지 않았다. 2001년 소프라노 김원정과 공동 발매한 <비트윈 더 노츠>, 2002년 발표한 재즈 동요집 <낮에 나온 반달>, 2003년 음악 친구와 공동 발매한 <쇼 유어 러브>가 있지만, 정작 자신의 이름을 따로 내건 정규 음반 발매는 계속 미뤄왔다.

그랬던 그가 최근 첫 정규 앨범 <물>을 발표했다. 그는 “남들과 다른 나만의 음악을 찾느라, 또 ‘바로 이 사람이다’ 하는 연주자들을 찾느라 앨범을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세상을 이루는 4대 원소인 땅, 바람, 불, 물을 주제로 앨범을 낼 계획을 세웠어요. 그중 물을 가장 먼저 골랐습니다.”

왜 물일까? “삶을 생각할 때마다 끊임없이 흐르면서 계속해서 다른 방식으로 재탄생을 거듭하는 무언가를 떠올렸어요. 그건 바로 물입니다. 연속적으로 변하고 순환하는 물은 인생과 같고 음악, 재즈와도 같아요. 물을 첫 주제로 삼은 건 그래서입니다.”

그는 이 땅에서 실제로 겪은 구체적 물에서 영감을 받아 곡을 만들었다. 예컨대 첫 곡 ‘망할 홍수’는 2011년 7월 우면산 산사태를 부른 지독한 폭우를 떠올리며 만든 곡이다. “산사태가 벌어지기 일주일 전 우면산 인근 예술의전당에서 커피를 마셨어요. 당시 개인적으로 힘든 상황이었죠. 2008년 아버지를 잃고, 친한 친구와의 관계도 끊겼어요. 그 분노를 음악으로 쏟아낸 게 이 곡입니다.”

아버지에 이어 지난해 어머니와 할머니도 잇따라 떠나보냈다. 그는 “앨범을 준비하는 동안 너무 많은 걸 잃었다”며 “결과적으로 이 앨범은 상실의 음악이 됐다”고 했다. 특히 마지막 곡 ‘눈물’은 세월호 참사로 어린 자녀를 잃은 어머니들께 바치는 곡이다. “세월호 참사 이전에 만든 곡이지만, 녹음하기 직전 배가 침몰했어요. 녹음하는 내내 가슴이 너무 아파서 이 곡을 바치기로 했습니다.”

그렇다고 분노, 슬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처가가 있는 전남 강진의 5월 물 댄 논을 보고 만든 ‘물의 들판’,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강진 백련사 만경루에서 열린 산사음악회에서 폭우를 뚫고 연주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만든 ‘산사의 비’, 농부가 입은 재래식 우비에 리드미컬하게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음악으로 형상화한 ‘도롱이’ 등도 담겼다.

‘그리고 난 다음’은 특별한 순간의 느낌을 담은 곡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 엄청난 홍수, 결별, 고뇌, 우울…. 이 모든 것이 다 지나가고 난 뒤 어느날 밤 도봉산에 가서 막걸리를 마시고 걷는데, 계곡물 소리가 들려왔어요.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고, 저는 전율을 느꼈어요. 일생에 단 한번만 지날 수 있는 문을 통과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요즘도 잘 때 물소리를 틀어놓곤 한답니다.”

그는 “소리는 어디에나 있고, 그런 소리들이 음악이 된다”며 “보통 산책을 하며 음악적 사색을 하고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야생의 벌판에 정원을 만드는 일과 같다”는 말도 했다. 그는 음악가이자 시인, 철학가인 듯 보였다.

<물>은 피아니스트의 앨범이지만, 정작 피아노 연주는 크게 돋보이지 않는다. 기타, 색소폰 등 여러 악기들이 조화를 이루면서도 각기 색깔을 뽐낸다. “피아노 기량을 내세우기보다 음악가로서 전체적 조화를 살리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앨범 녹음에는 리처드 로(색소폰), 라이언 맥길리커디(베이스), 조신일(기타), 김정균(퍼커션), 신동진(드럼)이 함께했다.

론 브랜튼은 밴드 멤버들과 함께 오는 23일 저녁 8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앨범 발매 기념 공연 ‘서머 나이트 재즈’를 연다. “재즈는 연주할 때마다 변하는 생명체입니다. 공연 때는 분명 앨범 녹음 때보다 더 성숙해져 있을 겁니다. 그게 바로 재즈입니다.” (02)888-0650.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뮤지컬파크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